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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재준을 정조준하라"…檢과 朴이 사는 길

정치 일반

    "남재준을 정조준하라"…檢과 朴이 사는 길

    靑-檢-국정원 '봉합 시나리오' 실효성 의문…민심-당심 살펴야

    청와대(자료사진/황진환 기자)

     

    "청와대는 남재준을 결국 버릴 것이다. 그렇지만 이 카드는 처음부터 바로 쓰지 않고 아껴뒀다가 국가정보원의 간첩사건 증거조작 사건을 정리하는 막판에 쓸 것이다".

    검찰 수사와 여권의 동향에 정통한 한 인사가 한 말이다.

    여권은 서울시 간첩사건의 국정원 협력자 자살과 유서가 공개된 지난 직후인 지난 8일과 9일 잇따라 회의를 열어 이번 사건에 대한 대략적인 방향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와 국정원, 검찰이 어떤 순서에 따라 이번 사건을 수습하느냐에 대한 가닥을 정했다는 것이다. 이른바 '삼박자 론(論)'이다.

    일박자는 국정원이 움직인다는 것. 국정원이 일요일이던 지난 9일 밤 9시쯤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해 사과한다"고 발표한 것도 삼박자론 수순으로 해석된다.

    이박자는 청와대가 나선다. 박근혜 대통령은 10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국정원 문제에 대한 유감을 표명하고 "수사 결과가 드러나면 반드시 바로잡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른바 '선(先) 진상규명 후(後) 처벌론'을 제시한 건데, 사건 해결의 가이드라인이 대통령의 입을 통해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삼박자의 종지부는 검찰이 찍는다. 대통령의 유감 표명 6시간 만에 국정원을 압수수색하며 수사의 고삐를 바짝 당기는 태도를 보인 것도 이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국민으로 하여금 국정원과 대통령, 검찰이 이번 사건을 철저하게 수사하는 것으로 믿게 하려는 여권의 '심모원려'가 작용한 셈이다.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국가정보원 등 국가기관의 정치적 중립성 강화를 위한 제도개선특별위원회(국정원 개혁특위)에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이 출석한 첫 전체회의가 열리고 있다. 윤창원기자

     

    하지만 남재준 원장을 해임시키라는 여론이 비등한 상황에서 이러한 여권의 의도가 제대로 먹혀들지는 미지수다.

    검찰이 대대적인 국정원 수사를 한다고 나섰지만 관련자들이 입을 닫아버리며 '꼬리자르기'를 할 경우, 수사의 성과는 증거 조작에 관여한 국정원의 실무 책임자 몇 명을 사법처리하는 선에서 유야무야될 수 있다.

    여권은 신통치 않은 수사 결과를 정치적 고려로 매듭지으려 할 것이다. 이번 사건의 지휘 책임을 남재준 원장에게 지우고 사퇴시키는 것, 즉 남 원장의 명예를 지켜주며 여론과 야당의 반발을 무마하려 시도할 공산이 크다.

    현재까지 상황으로 볼 때 여권이 의도한 '해결 시나리오'는 이런 수순을 밟게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관련자들만 사법처리, 이른바 '깃털'만 뽑고 '몸통'은 건드리지도 못한 수사 결과를 내놓는다면 이번 사건의 덤터기는 검찰이 쓰게 될 것이다.

    '특수수사통'이라는 믿음을 주고 있는 김진태 검찰총장에 대해서도 "별 수 없구나. 검찰은 영원한 권력의 시녀"라는 여론의 뭇매가 가해질 것이다.

    따라서 검찰도 살고, 정권도 사는 길은 수사 칼날이 남재준 원장을 정면으로 겨냥하는 길밖에는 없다.

    익명을 요구한 여권 관계자는 "대통령과 대통령을 둘러싼 군 출신, 강경 보수파들이 남 원장을 지키려 할지라도 검찰의 칼끝이 핵심을 찔러야만 한다"며 "결국 그게 대통령을, 지방선거를 목전에 두고 있는 여당을 도와주는 길"이라고 단언했다.

    검찰 수사의 핵심은 남재준 원장이 알았느냐의 여부에 맞춰져 있으나, 대공 수사 실무자들이 남재준 원장을 보호하고 나선다면 수사는 용두사미에 그칠 개연성이 크다.

    이와 관련해 공안 사건을 담당했던 한 관계자는 "남재준 원장이 대통령의 신임을 받으면서 버티는 마당에 상명하복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국정원 관련자들이 남 원장의 이름을 불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며 "이번 수사는 꼬리자르기로 끝날 것으로 본다"고 내다봤다.

    11일 오전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 앞에서 열린 ‘국정원 간첩사건 증거의혹 규탄! 남재준 국정원장 사퇴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한 서울지역 대학생들이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황진환기자

     

    서울 중앙지검장을 마친 한 변호사는 "공안 업무는 120% 잘해봤자 본전"이라며 "국정원의 힘을 그대로 두고 수사를 하는데 성과가 날 것인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남재준 원장이 공정한 검찰 수사를 위해, 또는 대통령과 여권의 국정운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라도 이쯤에서 자진 용퇴하거나 경질하는 게 도리일 수 있다.

    야당이 연일 십자포화를 쏘고 있는 것과 별개로 이재오, 김용태 의원 등 일부이긴 하지만 여당 의원들도 남재준 원장의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11일자 아침 보수 신문의 아침 사설 제목도 남 원장의 해임을 요구하고 있다. "남재준 국정원장 문책해 국정원 개혁하라"(동아), "남 원장 책임지는 자세 보여야 한다"(중앙), "남재준 원장 책임 묻지 않고는 국정원 개혁 불가능하다"(한국)는 식의 사설들이 뒤덮었다.

    설령 남재준 원장이 대공수사팀에서 저지른 증거조작을 몰랐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정보 책임자인 그의 무능을 백일하에 드러내는 것에 다름 아니다.

    국정원 조직을 장악하지 못했음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격이어서, 이 또한 즉각 사퇴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사안이다.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청와대는 남재준 원장을 감싼다고 할지라도, 여당인 새누리당은 선거와 악화되고 있는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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