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다운 20대의 대부분을 도망자로 살아 온 여성이 검찰의 끈질긴 수사 끝에 9년여에 걸친 도주행각의 막을 내렸다.
황모(32·여) 씨의 삶이 꼬인 것은 20대 초반이던 2004년 경.
당시 전북 전주의 한 법무사 사무실에서 일하던 황 씨는 내연남과 공모해 사무실 공금 7200만 원을 횡령했다가 그해 10월 말 고소를 당했다.
경찰조사를 받은 뒤 황 씨의 선택은 이후 10년 이상의 삶의 궤적을 바꿔놓았다.
황 씨는 내연남과 함께 도주를 택했다. 내연남은 도주 한 달여 만에 붙잡혀 징역 1년 형을 받았다. 하지만 황 씨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긴 도주행각을 이어갔다.
검찰도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황 씨를 찾을 수 없었던 전주지검은 공소시효 만료를 보름 앞 둔 2012년 3월 궐석재판을 신청했고, 법원은 그 해 12월 황 씨에 대해 징역 1년을 확정했다.
이후 검찰은 본격적인 검거 활동에 나섰다. 출소한 내연남의 행적을 쫓고, 명절에 황 씨 부모 집 주변에 잠복하는가 하면, 인터넷 포탈 등 접속기록을 뒤지고 황 씨 가족의 통화내역까지 분석했지만 허사였다.
그러던 중 황 씨의 나이를 감안한 검찰의 착안이 주효했다. 산부인과 진료를 받을 나이라는 생각에 국민건강보험공단을 통해 진료내역을 뒤졌고 결국 서울의 한 산부인과에서 황 씨의 진료기록을 발견했다.
이를 통해 검찰은 황 씨가 개통한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하지만 또 하나의 벽이 가로막았다. 황 씨의 통화내역 중 부모와 친구는 물론 고향인 전북으로 발신한 내역이 단 한 건도 없었던 것.
황 씨의 주거지를 찾지 못해 막막하던 검찰은 통화내역 분석 끝에 중국음식점과 치킨집 전화번호를 발견했고 이를 통해 황 씨가 은신하던 오피스텔을 찾아냈다. 도주 9년 5개월 만인 지난 13일 황 씨는 붙잡혔고, 이날 바로 전주교도소에 수감됐다.
붙잡히지 않으려고 아무 연고 없는 서울로 무작정 상경하고, 행여 꼬리를 잡힐까봐 가족을 비롯한 지인과는 전화 한 통 하지 않았다. 검문이 비교적 적은 밤중에 일을 하려다보니 노래방 도우미로 살 수밖에 없었다는 게 황 씨가 털어놓은 도주생활의 전반이었다.
검찰은 "실형을 선고받기 전에 도주해 처벌하지 못하는 '자유형 미집행자'가 매년 늘고 있다"며 "실형 선고가 예상되는 피고인은 수사과정부터 보다 적극적으로 신병을 확보하는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