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연합(EU)이 러시아에 추가 제재를 단행하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크림 독립 승인' 선언으로 대응하면서 서방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크림자치공화국의 독립을 둘러싼 대립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과 EU는 17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크림공화국의 '불법적인' 독립 선언에 대한 책임을 물어 러시아와 크림자치공을 상대로 강도를 높인 2차 제재를 부과했다.
이에 대해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귀속을 희망하는 주민투표 결과가 나오자 바로 크림공화국의 독립국 지위를 인정하고 18일 의회 연설을 통해 크림 사태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로 하는 등 정면 대응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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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림공화국도 의회가 러시아에 귀속하겠다는 의지와 함께 중앙은행 신설을 결의하는 등 우선 독립국의 모양을 갖추기 위한 작업을 착착 진행해 나가고 있다.
◇ EU·미국, 러시아 제재 강도 높여
EU 외무장관들은 브뤼셀에서 회의를 열고 러시아인 13명과 우크라이나 크림공화국 인사 8명 등 모두 21명에 대해 EU 내 자산동결과 여행금지 등의 추가 제재를 단행했다.
이번 제재 리스트에는 러시아의 정치인과 군부인사, 그리고 크림 공화국 정치인이 포함됐으나 러시아 정부의 고위관리는 들어 있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EU는 또 20∼21일 열리는 정상회의에서 러시아 고위 인사에 대해 추가 제재를 부과할 가능성이 있다고 EU 소식통들은 전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러시아 인사 등 모두 11명에 대해 자산 동결과 여행 금지 등의 조처를 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번 제재는 냉전 이후 가장 광범위한 것으로 블라디슬라프 수르코프 전 총리와 세르게이 글라지예프 고문, 드미트리 로고진 부총리 등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참모나 보좌진 등 측근들이 대상이다.
백악관은 "이번 조치가 크림의 러시아 귀속을 위한 불법 주민투표를 지원하는 행위를 포함해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영토보전권을 위반하는 러시아 정부에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프랑스도 러시아를 압박하는 차원에서 18일로 예정됐던 국방장관과 외무장관의 모스크바 방문을 연기했다고 로이터통신이 러시아 외무부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 푸틴, 크림 독립 인정 '맞불'
러시아는 미국과 EU의 제재에 맞서 크림공화국의 독립 선포를 인정하고 귀속 절차를 구체적으로 논의할 방침임을 밝혔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크림의 독립주권국가 지위를 인정하는 대통령령에 서명했다고 크렘린 공보실이 밝혔다. 푸틴은 대통령령에서 "크림의 주민투표 결과를 고려해 크림 공화국을 독립주권국가로 인정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의 크림 독립 인정이 곧바로 크림의 러시아 귀속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크림의 러시아 귀속을 위해선 먼저 러시아 하원과 상원 승인, 그리고 뒤이은 대통령 서명 등의 절차가 진행돼야 한다.
푸틴은 18일 의회 국정연설을 통해 크림 사태 등에 대한 견해를 밝힐 예정이다.
러시아 의회도 18일 오전 크림공화국 투표 결과 지지 성명을 낸다.
러시아의 세르게이 샤탈로프 재무차관은 "(크림공화국의 전환기에는) 특별 세금 체제를 도입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며 일정기간 조세 혜택을 부여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반면 우크라이나는 크림공화국 투표 결과와 독립선언을 '웃음거리'라고 평가절하하고 크림반도에 파견된 군대를 현지에 계속 머무르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 의회는 또한 러시아의 크림반도 점령에 대비해 4만명의 예비군을 동원하는 대통령령을 승인했다.
◇크림, 우크라 자산 국유화 등 독립 절차 진행
크림자치공화국 의회는 이날 우크라이나로부터 독립해 러시아에 귀속할 것을 결의하면서 공화국 내 우크라이나 정부 재산을 공화국 소유로 전환하고, 러시아 통화인 루블화를 제2 공식 화폐로 지정했다.
블라디미르 콘스탄티노프 크림 의회 의장은 또한 국유화의 일환으로 크림 반도 내에 있는 우크라이나군을 해산하겠다고 말했다.
의회는 유엔 등 국제사회가 이번 주민투표 결과를 공인해 줄 것을 촉구하면서 의원 대표단을 러시아 모스크바로 보내 러시아 귀속과 관련한 향후 방침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자체 중앙은행 신설도 결의됐다. 루스탐 테미르갈리예프 크림 정부 제1부총리는 새 중앙은행이 추후 러시아 중앙은행의 지역 본부로 운영되며 며칠 안에 러시아로부터 재정 안정화 자금 3천만달러를 지원받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U·美 해결능력 '시험대'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EU의 문제 해결 능력이 시험대에 올랐다고 영국 BBC 방송이 분석했다. 또 우크라이나의 분열이 임박했는데도 EU의 대응은 여전히 경고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유럽의 제재에 러시아가 보복으로 맞서면 당장 유럽 수요의 25%를 차지하는 러시아의 천연가스 공급 중단 사태도 가능하고, 러시아 경제가 글로벌 금융시스템과 깊숙이 연결돼 유럽 경제에 타격이 된다는 점 등에서 EU는 쉽게 해법을 찾지 못하는 실정이다.
또 6천여 개 기업이 러시아와 무역관계를 유지하는 독일이 러시아 경제 제재 확대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우크라이나 해법을 둘러싼 고민이 깊어지면서 EU의 우크라이나 포용 전략이 성급했다는 자성론도 나오고 있다. EU 관료들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의 역사적 관계에 대한 성찰 없이 무리하게 우크라이나 편입을 추진해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비판이다.
대(對) 러시아 제재의 실효성에도 의문이 제기됐다.
금융·경제 전문 사이트인 마켓워치는 17일 미국과 EU가 이번 제재로 크림사태와 관련해 상당한 불쾌감을 느끼고 있다는 '정치적 메시지'는 보내지만 경제적 영향은 거의 없어 러시아에 실질적인 압력으로 작용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