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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급 환자 요행에 맡기는 게 KTX식 응급조치?

보건/의료

    위급 환자 요행에 맡기는 게 KTX식 응급조치?

    "비전문가 승무원 조치는 상황 악화" vs "승객 중 의사 없으면 내버려 두나"

    자료사진

     

    오는 4월 1일로 도입 10주년을 맞는 KTX 열차 운행에 있어 응급환자 조치가 아주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 28일 낮 12시, 서울역에서 부산행 KTX 열차를 탄 정 모(33) 씨 눈에 바로 앞좌석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괴로워하는 30대 남성이 들어왔다.

    김 모(36) 씨로 밝혀진 이 남성은 열차가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경련을 일으키며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지경이 됐다.

    깜짝 놀란 정 씨는 직접 승무원을 인터폰으로 불러 "승객 중에 환자가 있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승객 중에 의사 없으면 어쩌려고… 구급품은 주지 않고 상부 보고만 바빠"

    그러나 응급조치를 취할 줄 알았던 정 씨의 예상과 달리 승무원은 의식을 잃어가는 김 씨에게 "의사 불러드릴까요"라고 물은 뒤 곧 "승객 중에 의사를 찾는다"고 방송했다.

    다행히 열차 승객 중 의사 2명이 뛰어와 김 씨를 살폈지만, 그새 김 씨는 의사들의 질문에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할 만큼 급속히 증상이 악화되고 있었다.

    게다가 좁은 KTX 객차에는 김 씨를 제대로 누일 곳조차 마땅치 않아 의사와 승객들이 직접 김 씨를 객차를 잇는 복도로 옮긴 뒤 응급조치를 시작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승무원들이 보인 태도였다.

    정 씨는 "의사들이 산소호흡기든 뭐든 좋으니 구급품을 달라고 부탁했지만, 승무원은 그저 옆에 서서 상부에 보고하기에만 바빴다"고 주장했다.

    또 "당시 열차가 서울을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광명역에라도 열차를 세우자'고 요구했고 승무원이 '곧 멈추겠다'고 답했지만, 열차는 10여 분을 더 달려 원래 정차할 예정이던 천안아산역에서야 멈춰 섰다"고 말했다.

    ◈"열차 안 치료보다 이송이 우선… 전문가 찾은 승무원 대응이 정석"

    이에 대해 코레일 관계자는 "승객들로서는 불안할 수 있다는 점은 이해하지만, 승무원은 정석대로 대응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동 수단인 열차에서 환자를 진료하기보다는 서둘러 가까운 역에 내려주는 게 우선이라는 얘기다.

    이 관계자는 "호흡곤란 증상 등을 보이는 승객에게 비전문가인 승무원이 섣불리 조치했다가 오히려 상황이 더 나빠질 수 있다"며 "승무원이 승객 중 의사가 있는지 확인하는 것은 정석을 따른 대응법"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놀란 승객들은 미처 몰랐겠지만, 당시 승무원이 심장 제세동기를 준비한 것으로 보고됐다"며 "평소 소화제 등 간단한 상비약은 갖추고 있기 때문에 간단한 찰과상이라면 승무원이 직접 돌봤을 것"이라고 말했다.

    광명역에서 차를 세우지 않은 이유에 관해서는 "승객들 사이에서 정차 요구가 나왔을 때에는 이미 광명역에 너무 가까웠다"며 "급격히 속도를 줄이면 더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어쩔 수 없이 다음 역까지 운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역에 내려주면 그만? 요행에 맡기는 게 KTX식 응급조치?

    하지만 사고를 목격한 승객들의 불안은 가시지 않는다.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 할 응급조치가 너무 허술하다는 것이다.

    더구나 '가장 가까운 역까지 옮기는 게 우선'이라는 코레일의 해명은 뒤집어 말하면 '적어도 역에 내릴 때까지는 승무원이 응급조치를 취할 책임이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정 씨는 "환자를 복도에 눕힐 때도, 승강장에 내릴 때도 승객들이 도왔다"며 "승무원이 나서서 승객들을 안심시키고 의사들을 성실히 도왔어야 할 것 아닌가"라고 따졌다.

    또 "만약 승객 중에 의사가 없다면 승무원들은 그저 지켜볼 뿐 아무런 방법이 없다는 말로 들린다"며 "KTX의 응급환자 대응이 우연히 승객 중에 의사가 있기를 바라는 요행에 맡겨진다는 건 이해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설사 승객 중에 의사가 있더라도 진료와 조치에 필요한 의료 장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점도 문제다.

    열차 안에는 응급환자 이동을 위한 기본 도구인 들것조차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사상 최장기 철도 파업 등 갖은 논란과 갈등에도 '경영 효율화'를 내세우며 수서발 KTX를 밀어붙이고 있는 코레일.

    경영 효율화보다 훨씬 중요한 건 '승객 안전'이다.

    한편, 호흡곤란 증세를 보이다 실신했던 김 씨는 열차가 천안아산역에 정차한 후 순천향병원으로 긴급 이송돼 진료를 받은 뒤 다행히 증세가 호전돼 퇴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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