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몰 중인 세월호(전남도청 제공)
위도 사람들은 지금 TV 앞에 모여 앉아있다.
"몇 명 죽었데? 얼마나 실종됐는데?"
얼핏 화난 듯 혹은 답답한 듯 쇳소리 같은 목소리가 수화기 건너편에서 쩌렁쩌렁 울렸다.
1993년 10월 10일 전북 부안군 위도면 인근 바다에서 침몰돼 292명의 목숨을 앗아간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
당시 동생을 잃은 신명(58) 씨는 지금 유족들의 모임인 '서해훼리호보존회' 회장을 맡고 있다.
"어쩌다 또 이런 사고가 났는지 진짜 마음이 아파요. 사고 나면 다 내 일 같고, 내 형제 일 같으니까"
진도 해상에서 발생한 여객선 침몰 사고는 위도 사람들에게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신 씨의 남동생(당시 26)은 추석 명절 때 찾지 못했던 고향에 뒤늦게 방문했다 돌아가는 길에 변을 당했다. 이 일 때문에 몸져누웠던 아버지는 얼마 뒤 숨을 거뒀다.
서해훼리호 참사 뒤 한동안 마을의 제삿날이 대부분 겹쳤던 위도 사람들은 트라우마를 안고 있고 진도에서 발생한 세월호 사고는 아픈 상처를 건들고 있다.
"다들 TV만 보고 있어요. 너무 안타까우니까 말도 잘 안 해요."
그나마 지금은 당시 상처를 입은 대부분 사람이 위도를 떠났다.
"섬에서 더 이상 살면 뭐하냐고 아프기만 한데, 그러면서 고향을 떠나 이제 섬에 유족은 몇 명 남지 않았어요."
당시 서해훼리호 사고로 숨진 위도 주민은 46명. 유족은 대부분 섬을 등졌다고 신 씨는 말했다.
"우리는 그때 정원을 넘겨 너무 많은 사람을 배에 태워 사고가 났거든요. 이번에는 안개가 짙었다면서요. 그러면 운항을 하지 말았어야죠."
신 씨는 원망이 짙게 섞인 목소리로 '안전운항'을 강조했다.
"모든 사람을 다 구했으면 좋겠어요."
힘줘 말하던 신 씨는 그리고 "우리도 모든 시신을 다 찾아냈거든요. 마지막 시신까지 다 찾아내야 합니다"라고 덧붙였다.
울고불고 발만 동동 구르던 아픈 시간의 기억들을 안고 위도 사람들은 매년 10월 10일만 되면 위령탑 앞에 모여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위령제를 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