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기술의 발달로 사람의 의식이 네트워크에 직접 연결된다는 영화적 소재는 더이상 특별한 것이 아니다. 걸작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1995)를 비롯해 실사 영화 '코드명 J'(1995), '매트릭스'(1999), '아바타'(2009), '인셉션'(2010) 등으로 그 모습이 꾸준히 재현돼 온 까닭이다.
이들 영화는 정신이 몸을 벗어나서도 활동할 수 있다는 전제 아래, 현실과는 다른 인류의 생활상을 보여 줌으로써 관객들에게 색다른 간접 체험을 안겨 줬다. 조니 뎁 주연의 '트랜센던스(Transcendence) 역시 인간의 뇌가 업로드 된 슈퍼컴퓨터를 다뤘다는 점에서 앞서 언급한 영화들과 같은 선상에 놓였다고 볼 수 있겠다.
다만 트랜센던스는 기존 영화에서 봐 온 인류와 기계의 이분법적인 대립 구도를 약간 비트는 데서 차별점을 얻어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진보를 꺼리는 오만한 기득권자로서 인류의 민낯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천재 과학자 윌(조니 뎁)은 인류가 수억 년에 걸쳐 쌓아 온 지적 능력을 초월한데다, 자각능력까지 갖춘 슈퍼컴퓨터 트랜센던스의 완성을 목전에 두고 있다. 하지만 윌은 '과학 기술의 발전은 곧 인류 멸망'이라고 주장하는 반과학단체 리프트(RIFT)의 공격으로 목숨을 잃는다.
상실감에 젖어 있던 그의 연인 에블린(레베카 홀)은 윌의 뇌를 트랜센던스에 업로드하는 데 성공하고, 초월적인 힘을 얻은 윌은 온라인에 접속해 자신의 영향력을 전 세계로 넓혀가기 시작한다.
트랜센던스의 이야기를 이끄는 인물 구도는 크게 세 축으로 나뉜다.
먼저 슈퍼컴퓨터에 업로드된 윌과 그의 도움으로 건강한 신체를 갖게 된 사회적 약자들이 한 축이다. 윌은 네트워크상의 무궁무진한 정보를 활용해 믿기 어려운 과학적 성과를 얻어내는데, 이를 통해 자신의 입지를 넓혀가고 결국에는 다른 사람의 의식까지 제어하기에 이른다. 윌은 스스로를 '진화한 인류'로 규정한다.
두 번째 축은 인공지능 연구소장 조세프(모건 프리먼)와 FBI 요원 도널드(킬리언 머피), 그리고 반과학단체 리프트다. 이들은 각각 주류 과학계, 공권력, 테러조직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겠다. 과학계와 공권력이 윌의 세력 확장을 막고자 손을 잡는 것은 그렇다 쳐도, 극단적으로 대립하던 테러단체까지 합세한다는 설정은 흥미롭다. 위기 의식을 느낀 기득권 세력이 자신들의 입지를 지키고자 윌을 '인류의 적'으로 점찍은 결과이리라.
영화 '트랜센던스'의 한 장면
마지막이 앞의 두 축 사이에서 갈등하는 윌의 연인 에블린과 동료 맥스(폴 베타니)다. 에블린은 자신이 되살려낸 윌이 끊임없이 영향력을 확장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슈퍼컴퓨터에 옮겨진 것이 과연 윌일까'라는 의문을 키워간다. 에블린을 도와 윌을 부활시킨 맥스의 경우 '저것은 윌이 아니'라고 확신하면서도 윌을 없애는 데 선뜻 나서지 못한다.
이들 세 축이 얽히고설킨 끝에 도달하게 되는 이 영화의 결론은 앞서 영화 매트릭스를 통해서도 소개됐던 개념인 '시뮬라크르(Simulacre)'의 또 다른 표현으로 다가온다. 소위 원본과 복제를 뚜렷이 구분하던 근대적 사고를 뛰어넘어, '원본과 구분할 수 없는 복제' '원본조차도 뛰어넘는 복제'로 현실 세계를 설명하는 시뮬라크르는 현대 사회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중요한 개념이다.
원본과 구분되지 않는 복제라는 말에서 기존 질서가 헝클어진다는 부정적인 뉘앙스를 받을 수도 있겠으나, 과거 소수 권력자만이 누리던 특권(원본)을 복제해 그 수혜 범위를 대폭 확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시뮬라크르는 혁명적인 개념이 된다.
한 편의 영화는 여러 개로 복제돼 전 세계 곳곳에서 상영됨으로써 다수의 관객들이 이를 향유할 수 있는데, 우리는 이들 상영본 가운데 어느 것을 원본이라고 부르지 않는 이치와도 같다.
영화 트랜센던스에서 몸은 죽었지만 의식이 네트워크에 옮겨짐으로써 어느 곳에나 존재할 수 있게 된 윌. 극중 그의 행보는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근대적 사고방식이 부른 빈곤, 차별, 환경오염 등의 한계를 뛰어넘어 인류의 의식을 한 단계 진화시키자는 제안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