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3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김정훈 위원장(왼쪽)을 비롯한 조합원들이 26일 오후 서울 세종로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민주주의 말살, 전교조 탄압저지, 9.26 수도권 교사 총력 투쟁 선포식'에서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황진환 기자/자료사진)
경제대국 대한민국의 성장 신화 이면에 자리 잡은 부끄러운 모습이 공개됐다, 국제노동조합총연맹(ITUC)이 세계 139개국의 노동 관련 97개 항목을 조사한 결과 한국의 노동자 권리지수는 최하위인 5등급을 기록했다. 5등급은 '노동권이 지켜질 보장이 없는 나라'를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노동법이 있기는 하지만 노동자들이 그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한국과 같이 꼴찌 등급으로 분류된 나라는 우리가 한 수 아래라고 생각했던 중국과 인도, 나이지리아, 방글라데시, 라오스,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이 포함돼있다. 우리가 경쟁상대로 여기는 아시아권 국가 가운데 일본이나 대만은 3등급으로 한국보다 두 단계나 앞서있다.
한국의 노동자 권리가 꼴찌인 이유도 구체적으로 거론했다. 정부의 공무원 노조 설립 신고 반려와 전국교직원노조의 법외 노조 결정, 철도파업 노조원에 대한 대량 해고 등을 들었다.
실제로 전국공무원노조는 지난 2009년 이후 수차례 노조 설립 신고를 냈지만 합법노조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고, 전교조도 해직자의 조합원 자격 인정 문제로 법외노조 통보를 받고 정부와 법적 다툼을 벌이고 있다.
민간 기업에서도 노조와 노동자의 권리는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아예 척결 대상인 곳도 있다. 대표적인 게 세계 초일류 기업 반열에 올라선 삼성이다. 수십 년 전의 창업자 유지를 받든다는 삼성의 무노조 원칙은 세상이 변해도 여전히 그대로다. 노조라는 단어는 금기시 되고, 조합원은 회사에서 견뎌내기 힘들다. 몇 년 전 삼성 에버랜드에서 직원 4명이 노조설립 신고를 낸 것이 화제가 될 정도다. 노조 파괴 전략을 담은 '2012년 S그룹 노사전략'이란 문건이 공개돼 파문이 일기도 했다. 비록 삼성의 협력사이긴 하지만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조합원 2명이 최근 잇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에서도 노조 활동 제약과 저임금, 열악한 환경에 처한 비정규직 노조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한국은 세계 7대 경제대국이다. 동시에 한국은 OECD 국가 가운데 노동시간이 가장 길고, 저임금 노동자 비중이 가장 많은 국가로 꼽힌다. 삶의 만족도도 하위권이다. 속도전을 펼친 경제 성장의 내면에는 정당한 권리조차 포기한 채 땀을 흘린 노동자의 공이 적지 않다.
하지만 정부와 기업이 노조와 조합원을 바라보는 시각은 여전히 과거형이다. 상생과 협력의 파트너가 아니라 통제와 고용의 시혜 대상으로 여기는 풍토가 가시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노동자 권리가 꼴찌라는 불명예는 바로 여기에서 기인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