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의 수수료 수입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자동화기기 이용이나 송금 수수료 수입이 반 토막 난 은행도 있다.
금융당국이 '소비자 보호'를 명목으로 일제히 내렸던 수수료를 현실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여론의 눈치 때문에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우리·신한·하나·기업·외환 등 6개 주요 은행의 수수료 수입은 올해 1분기 1조434억원, 연간으로 따지면 4조1천736억원이다.
2011년 이들 은행의 수수료 수입은 4조9천470억원이었다. 3년 만에 수수료 수입이 7천734억원(15.6%) 줄어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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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료 수입 감소분은 국민은행(8천775억원), 하나은행(6천552억원) 등 대형 시중은행의 지난해 1년치 순이익과 맞먹는다.
특히 수수료 가운데 창구 송금이나 CD·ATM 같은 자동화기기 이용 등 대(對)고객 업무의 수수료 수입이 많게는 50% 가까이 줄기도 했다.
외환은행의 경우 자동화기기·송금 관련 수수료 수입이 2010년 256억원에서 올해 138억원(연간 기준)으로 46.3% 감소했다.
우리은행과 하나은행도 같은 기간에 자동화기기·송금 수수료 수입이 각각 25.4%와 22.2% 줄었다.
대고객 수수료는 금융 소비자에 직접적 부담을 준다는 이유로 지난 2011년 금융당국의 주도 아래 은행들이 일제히 절반 가까이 내리거나 일부 무료로 전환했다.
당시 '월가 점령 시위'로 거세진 금융권 비난 여론을 잠재우려고 내놓은 조치였다. 공정거래법을 의식해 은행 자율에 맡겼지만, 사실상 당국이 내렸다.
비용(인건비, 설치·유지비, 임차료 등)은 고려하지 않고 여론에 떠밀려 수수료를 내린 결과, 은행들은 해당 서비스에서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김우진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자동화기기 수수료 적정성 연구' 보고서에서 수수료 인하 직후인 2012년 은행들이 ATM 운영으로 844억원 손실을 봤다고 밝혔다.
이는 ATM 한 대당 평균 166만원의 손실로, 임차료가 비싼 수도권의 ATM은 대당 수백만원의 손실로 추정된다고 김 연구위원은 지적했다.
수수료 수입 감소가 해당 서비스의 위축으로 이어지면 고객 불편이 가중된다. 금리 등 다른 측면의 불이익으로 돌아갈 가능성도 있다.
은행들은 운영할수록 적자인 CD·ATM을 줄이는 추세다. 2009년 전국에 3만2천902개인 6개 은행의 CD·ATM은 지난 3월 말 2만6천110개로 6천792개(20.6%) 줄었다.
금융당국도 은행들이 예대 마진에만 치우친 경영에서 수수료 등 비이자이익을 늘려야 한다고 보고 수수료 현실화를 추진했지만, 현재로서는 잠정 중단된 상태다.
'은행 서비스는 공짜'라는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여론의 눈치를 봐야 하는 금융당국으로서도 수수료 인상이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인 셈이다.
권우영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은행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인식이 강화되는 요즘 상황에서 대고객 수수료 인상은 곤란해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투자 자문이나 컨설팅 등 자문서비스 부문의 서비스 역량을 높여 선진국처럼 수수료를 주고 서비스를 받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