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군부가 쿠데타 반대 여론을 잠재우고 민심을 끌어안으려고 대중 인기 정책을 잇따라 내놓기 시작했다.
군정 당국인 국민평화질서회의(NCPO)는 11일 국가방송통신위원회(NBTC)에 월드컵 전 경기를 무료로 방송해 모든 국민이 부담없이 즐기는 방안을 모색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NCPO는 자체 기금으로 경기 중계권자에게 보상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경기를 무료로 방송키로 했다. 그러나 이 방안은 기금 운용 규정 위반 논란을 불러일으킬 전망이다.
태국에는 축구 애호가들이 많으며, 월드컵 경기 때는 도박 열풍이 부는 등 전국이 축구 열기로 홍역을 치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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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PO의 월드컵 무료 방송 지시는 군부가 지난달 22일 쿠데타를 일으키고 나서 보이는 포퓰리스트(대중인기영합적) 성향을 다시한번 나타냈다.
NCPO가 정권 장악 후 가장 먼저 한 사업은 잉락 친나왓 전 총리 정부의 밀린 쌀 수매대금 지급이었다.
군부는 잉락 정부의 쌀 수매 사업에 참여했다가 쌀값을 지급받지 못한 농민 8만여 명에게 수매대금 550억바트(약 1조 7천억 원)를 지급하기 시작했다. 쌀값 지급은 신속히 진행돼 이달 말이면 완료될 예정이다.
또 경유, 액화석유가스(LPG) 등 연료에 대해 가격 상한제 및 동결제를 실시했으며, 205개 소비자 생필품은 오는 11월까지 6개월 동안 가격을 동결해달라고 기업들에 협조를 요청했다. 이는 모든 관련 기업들이 협력을 선언함으로써 사실상의 강제 조치 효과를 낳았다.
군부는 중소기업 대출 지급보증과 농민 저리 주택자금 융자 방안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금융권에는 중소기업과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대출금 회수를 무리하게 집행하지 말라고 지시했으며, 고리 대금업자들에게는 단속을 경고했다.
이와 함께 NCPO는 지난해 말부터 계속된 시위 사태로 경제가 큰 타격을 받고, 이 때문에 국민 불만이 높은 점을 고려해 잇따라 경기부양책을 내놓았다.
군정은 경제 활성화를 위해 올해 배정된 예산을 조속한 시일에 최대한 많은 규모를 집행하고, 경기 부양 효과가 높은 도로, 철도 등 인프라 건설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군부는 이 정책들이 국민에게 행복을 돌려주려는 것이라고 밝히고, 국민이 행복을 체감할 수 있게 하겠다며 길거리 무료 공연, 무료 진료, 공짜 음식 배급 등의 전시성 행사를 열기도 했다.
쿠데타 주역인 프라윳 찬-오차 육군참모총장은 국민을 기쁘게 하겠다며 쿠데타를 옹호하고 정당화하는 노래를 직접 작사해 TV, 라디오 등으로 보급했으며, 이 노래는 유튜브에서 조회 수 20만 건을 넘기도 했다.
NCPO의 포퓰리스트 행보는 기득권층을 중심으로 퍼져 있는 군부 지지도를 확대하고, 경제 심리를 호전시키는 효과를 낳고 있다.
군부와 대립해왔던 탁신 친나왓 전 총리를 지지하는 최대 세력이었던 농민 중 일부는 군부가 쌀값을 지급하자 눈물을 흘리며 환호하기도 했다.
또 소비자 심리는 지난달 정국 및 경제 안정에 대한 기대감으로 1년 2개월 만에 처음으로 상승세로 돌아섰다.
태국중앙은행(BOT)은 올해 1·4분기(1∼3월)에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던 경제가 3·4분기(7∼9월)에는 군정의 경기부양책에 힘입어 뚜렷한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군부의 인기 영합 행보에 대해 과거 친탁신 정부의 인기 정책을 연상시킨다고 지적했다.
친탁신 정권들은 고가 쌀 수매, 저가 의료보험, 저리 융자, 최저임금 인상 등 저소득층 소득 및 복지 증대 정책을 폈으며, 이에 따른 저소득층 지지표는 선거 때마다 친탁신 진영의 승리로 이어졌다.
군부, 관료, 왕실, 기업가, 중산층 등 기득권층은 이에 대해 친탁신 진영이 국민 세금으로 저소득층으로부터 '매표'하고 있다고 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