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위기로 세계 석유시장을 둘러싼 불안감이 갈수록 짙어지고 있다.
이라크가 그간 세계 원유 증산을 주도하면서 국제유가 안정의 '안전판'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이라크 원유 생산에 차질이 빚어지면 타격이 한층 크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라크 위기가 격화하면 국제유가가 급등하고 원유를 전량 수입하는 우리나라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도 상대적으로 심각할 것으로 보인다.
16일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올해 1∼5월 이라크의 원유 생산량은 하루 평균 332만 배럴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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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이라크전이 발발한 지난 2003년의 2.5배이며, 지난해보다 7.7% 늘어난 것이다.
이에 따라 세계 원유 생산량에서 이라크의 비중은 2003년 1.9%에서 2011년 3.6%, 2012년 3.9%, 2013년 4.1%, 올해 1∼5월 4.4%로 뚜렷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이라크전으로 원유 생산이 격감한 이후 이라크 정부는 전후 복구 재원 마련을 위해 원유 증산을 국가 최우선 과제로 삼아 총력을 기울여 왔다.
그 결과 2003년 이후 이라크 원유 생산량은 2005년, 2010년을 제외하고는 매년 증가를 거듭해왔다.
최근 몇 년간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 대부분은 유가 유지를 위해 생산량을 줄였다.
반면 당장 사정이 급한 이라크만 증산에 박차를 가한 결과 국제 석유시장에서 이라크의 비중이 커진 것이다.
실제로 올해 1∼5월 세계 원유 생산량이 지난해보다 하루 66만 배럴 증가한 가운데 이 중 24만 배럴, 36.1%가 이라크의 생산 증가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충재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 몇 년간 석유 생산량이 가장 많이 늘어난 미국의 석유가 수출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라크가 세계 석유시장 안정에 크게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 연구원은 "따라서 이라크 위기가 더욱 심각해지고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등 인접국으로 사태가 확산할 경우 세계 석유시장에 큰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물론 당장 이라크 원유 생산에 큰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문제의 과격 수니파 무장단체 '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ISIL)는 이라크 북부를 중심으로 급속히 세를 넓히고 있다.
반면 이라크의 주요 유전과 정유시설·수출항 등은 수니파가 미약한 남부에 주로 몰려 있어서 이곳이 ISIL의 손에 넘어가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IEA는 지난 13일(현지시간) 월례 보고서에서 이라크 사태에 대해 "현재로서는 사태가 더 퍼지지 않는 한 이라크산 석유 증산이 당장 위험해질 가능성은 작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수도 바그다드에서 북쪽으로 약 100㎞ 지점까지 파죽지세로 남하한 ISIL이 바그다드까지 공격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마이클 루이스 도이체방크 애널리스트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ISIL이 바그다드를 향해 남쪽으로 진격할 수 있다면 이라크의 불안을 키우고 정유공장과 유전의 원활한 가동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하이투자증권의 박상현 투자전략팀장·이승준 연구원은 "이라크는 OPEC 내 사우디 다음의 제2위 원유 생산국으로 OPEC 생산량의 약 11%를 차지한다"며 "이라크 내전이 격화될 경우 원유 생산이 차질을 빚고 국제 유가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이로 인해 유가가 추가 상승해 배럴당 110달러 이상에서 움직일 경우 세계 경제와 금융시장에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며 특히 원유를 전량 수입하는 한국의 경우 부정적 영향이 상대적으로 클 수 있다"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