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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쿠니에 아버지 이름 있는 한 우리 가족은 아직 식민지"



아시아/호주

    "야스쿠니에 아버지 이름 있는 한 우리 가족은 아직 식민지"

    • 2014-07-09 22:06

    야스쿠니에 합사된 한국인 징병피해자 유족 2명 도쿄법원서 증언

     

    "재판장님, 이 늙은이의 한을 풀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야스쿠니(靖國) 신사 합사 취소 소송 공판이 진행된 9일 오후 도쿄 지요다(千代田)구의 도쿄지법 103호 법정. 일본의 침략전쟁이 짓밟은 두 가정의 기막힌 사연이 100여 방청객들의 가슴을 울렸다.

    원고 자격으로 증언대에 선 남영주(75)씨는 일본어 통역을 옆에 둔 채 떨리는 목소리로 가족사를 증언했다.

    8대 종손의 외아들인 남씨의 오빠 고(故) 남대현씨는 1942년 일제에 징병됐다가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자식 잃은 슬픔에 남매의 어머니는 식음을 전폐한 채 시름시름 앓다 해방 이듬해인 1946년 세상을 떠났다고 남씨는 밝혔다. 뿐만 아니라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도 모두 대현씨의 소식을 듣지 못한 채 차례차례 사망했다.

    남씨는 "우리 집에서 오빠는 희망이었고 행복 그 자체였다"며 "오빠를 그리워하다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메인다"며 울먹였다.

    오빠의 생사라도 확인하기 위해 10여년 전부터 태평양전쟁 피해자 단체에서 활동해온 남씨는 2003년, 오빠가 1944년 8월10일 파푸아뉴기니에서 총에 맞아 사망한 사실을 확인했다. '혹시나'했던 오빠의 사망을 확인한 것보다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오빠가 '침략전쟁 미화'의 상징인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된 사실이었다고 남씨는 밝혔다.

    그는 "2012년 오빠가 세상을 떠난 파푸아뉴기니에 찾아갔을 때 오빠의 이름을 꼭 야스쿠니 신사에서 빼내고야 말겠다고 마음 속으로 다짐했다"며 "그리고 이역 땅에 찾아주는 이 없이 묻혀 있는 오빠의 유골을 꼭 찾아서, 한을 품고 돌아가신 부모님의 산소 앞에 비석이라도 하나 세우고 싶다"고 말했다. 방청석에서도 흐느끼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뒤이어 증언석에 선 박남순(71)씨가 "얼굴도 알지 못하는 아버지 이름을 야스쿠니 신사에서 빼달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그리고 자식의 도리를 다하고자 오늘 이 자리에 섰다"고 말하자 방청석은 숙연해졌다.

    그는 부친이 1942년 11월22일 태평양제도로 끌려갔다면서 "어머니가 나를 임신한지 9개월이 됐을 때 아버지를 일본에 빼앗겼다"고 말했다. 또 아버지가 전쟁터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뒤 할머니는 '아들을 기다린다'며 평생 대문을 닫지 않은 채 잠을 잤다고 말했다.

    박씨는 이어 "우리 집안은 기독교 집안으로,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서는 기독교 방식으로 추모를 드려왔다"고 소개한 뒤 "그런데 우리 집안의 종교와 다른 야스쿠니 신사에 마음대로 합사를 해 놓았다니 정말 사람으로서는 해서는 안 될 짓"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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