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궁내청이 중일전쟁, 태평양침략전쟁 등 쇼와(昭和)의 격동기에 일본 군주로 군림했던 히로히토(裕仁·1901∼1989) 일왕의 생애를 기록한 '쇼와천황실록'을 완성, 9일 공개했다.
총 61권, 1만2천여 페이지의 쇼와실록은 24년간의 편찬 작업을 거쳐 완성된 것으로,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쇼와일왕의 측근 일지 등 국내외에서 수집된 3천152건의 자료를 토대로 쓰여졌다.
이 때문에 쇼와실록 공개를 앞두고 새로운 사실의 발견에 기대가 모아졌으나, 태평양전쟁 개전과 종전 관여 등과 관련해 '쇼와사(史)'를 다시 써야 할 만큼의 새 사실은 드러나지 않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라고 요미우리(讀賣)신문은 전했다.
특히 궁내청 직원 112명이 참여한 이번 쇼와실록 편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풀리지 않은 쇼와사의 수수께끼도 적지 않아 앞으로 실록 편찬에 사용된 원 사료의 공개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대표적인 예로 쇼와일왕은 1945년 9월27일 맥아더 연합군 최고사령관과의 회담에서 '전쟁의 전 책임을 내가 지겠다'고 발언한 것으로 맥아더 회고록에는 나와 있으나, 쇼와실록에는 이러한 언급이 빠진 외무성 공식기록(2002년 공개) 전문을 싣고 맥아더 회고록의 관련 부분도 같이 실어 전쟁책임 문제의 양론을 병기하는 데 그쳤다고 요미우리는 분석했다.
실록은 이와 함께 1978년 태평양전쟁 A급 전범들이 야스쿠니(靖國)신사에 합사된 이후 쇼와일왕이 야스쿠니참배를 중단한 이유가 항간에 알려진대로 A급 전범 합사에 대한 불쾌감 때문인지와, 미국에 오키나와(沖繩) 장기 군사점령을 희망했는지 등에 대해서도 명확히 언급하지 않았다.
한편 산케이(産經)신문은 실록 분석 결과 쇼와일왕은 히로시마(廣島)에 원폭이 투하된 3일 후인 1945년 8월9일 구 소련군이 만주를 침공했다는 정보를 접한 직후 '종전'을 결단했다고 보도했다.
또 아사히(朝日)신문 등에 따르면 쇼와일왕은 2차대전 항복 직전인 45년 7월30일부터 8월2일 사이에도 전쟁 승리를 기원하는 제문(祭文)을 신사 3곳에 잇따라 보낸 것으로 나타났다.
1901년 다이쇼(大正)일왕의 장남으로 태어난 쇼와일왕은 25세때 즉위, '살아있는 신'(現人神)으로 떠받들어졌다가 교수형에 처해진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등 A급 전범들과는 달리 전후 '인간선언'과 함께 '상징천황'으로 여생을 보내다 1989년 8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역대 일왕 중에서는 재위기간이 최장인 62년이었으며 가장 장수했다.
이번에 공개된 실록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당시 암이 발병한 사실을 당사자인 쇼와일왕에게 알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