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배너 닫기

노컷뉴스

[사설] 아시안게임을 정치색으로 물들게 한 인공기 철거

칼럼

    [사설] 아시안게임을 정치색으로 물들게 한 인공기 철거

    • 2014-09-11 14:52
    지난 2010년 제16회 광저우 아시안게임 당시 선수촌에 걸린 참가국 국기 사이로 태극기와 인공기가 보이고 있다.(자료사진)

     

    인천 아시안게임이 열리는 경기장 주변에 45개 참가국들의 국기가 걸렸다가 다시 철거되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이번 아시안게임에 참가하는 북한의 인공기가 고양종합운동장 앞 도로에 게시된 것을 일부 보수매체를 비롯한 보수단체들이 항의하자 대회 조직위원회가 인공기 뿐 아니라 아예 다른 참가국들의 국기까지 다 철거해버린 것이다. 이로써 모든 경기장 주변에는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기와 대회 엠블럼 기만 걸리고 대회 참가국들의 국기는 아예 볼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이것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다. OCA 규정에 따르면 '모든 경기장 및 그 부근, 본부 호텔, 선수촌과 메인 프레스센터, 공항 등에는 참가 회원국들의 국기가 게양되어야 한다'고 돼있다. 규정이 아니더라도 국제대회 참가국들을 똑같이 대우하고 거리에 이들 나라들의 국기를 게양하는 것은 상식이다. 지난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과 2003년 대구 유니버시아드 때도 거리에 인공기가 걸렸었다.

    남북이 갈려 여전히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거리에 버젓이 인공기가 걸리는 것이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또 잇따른 미사일 발사로 군사적 긴장을 유발하는 북한을 바라보는 시선이 좋을 리 없다. 하지만 아시안게임은 45억 아시아인들의 기량을 겨루는 체육행사이고, 북한도 그 일원으로 참가하게 됐을 뿐이다. 이런 행사에 정치적인 이유로 참가국들의 국기를 뗀 것은 국제적인 망신이고, 대북관계에서의 편협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인공기 문제는 북한의 응원단 파견 협의 과정에서도 논란이 됐었다. 북한이 끝내 응원단 파견을 철회한 것은 체재비 문제 등 여러 복합적인 이유가 있지만 우리 측이 먼저 대형 인공기를 사용한 응원에 우려를 나타내 북측을 자극한 것도 배경으로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이번 인공기 철거가 단순히 대회 조직위 차원이라기보다 정부의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통일부 당국자도 인공기 훼손 등 안전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2002 부산 아시안게임에 참가했던 북한 응원단(자료사진)

     

    인공기 훼손이 그렇게 걱정돼 철거했다면 북한이 메달을 따 경기장에서 인공기가 올라가고 북한의 국가가 연주될 때 문제가 발생하면 그때는 어떻게 할 텐가? 큰 틀에서 남북관계를 생각하기 보다는 보수단체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문제는 정부의 의지다. 남북관계 개선은 말로 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문제에서부터 신뢰를 쌓아가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통일 대박론과 드레스덴 선언, 지난달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남북 대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이명박 정부 이후 오랫동안 경색된 남북 경색의 물꼬를 풀어보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그리고 이번 인천 아시안게임은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불신을 더욱 증폭시키는 꼴이 되고 말았다.

    오늘(11일) 북한 선수단 1진이 들어오고, 인천 아시안게임은 이제 8일 앞으로 다가왔다. 대회 조직위가 내세운 3가지 목표 가운데 하나가 소통과 화합, 배려이다. 이념과 종교, 민족의 갈등을 녹이는 평화의 제전으로 만들겠다는 것인데 시작도 하기 전부터 인공기 문제로 그 목표가 빗나가고 말았다.

    이 시각 주요뉴스


    실시간 랭킹 뉴스

    노컷영상

    노컷포토

    오늘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