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상원 전 정보사령관. 연합뉴스'12·3 비상계엄' 배후 기획자로 지목된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육사 41기)이 현역 군인들에게 지시를 내리며 계엄 모의 조직까지 만든 정황이 드러난 가운데, 그는 진급 등을 미끼 삼아 군(軍) 조직에서 불안한 처지에 놓인 이들을 포섭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불명예 전역해 역술가로 변신한 민간인 노 전 사령관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육사 38기)의 '비선'으로 활동하며 정보사령부(정보사), 국방부 조사본부, 최전방 기갑부대 지휘관까지 내란 계획에 끌어들였다는 의혹을 받는다. 노 전 사령관과 '뒷손'을 잡았다는 이들은 하나 같이 조직 내 입지가 위태롭거나 굳건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군 안팎에서 나와 내란으로 '인생 역전'을 꿈꿨던 것 아니냐는 물음표도 커지고 있다.
'기밀유출 사건' 겪은 정보사 인사들… 위기 탈출 위해 '내란'?
26일 CBS노컷뉴스의 취재 결과를 종합하면, 노 전 사령관이 주도한 계엄 대비 불법 사모임 '수사 2단'의 핵심 멤버이자 계엄 이틀 전 열린 '1차 햄버거 회동'의 참석자로 파악된 문상호 정보사령관(육사 50기), 정성욱 정보사 대령(육사 48기) 등은 조직에서 최근 위기를 겪은 현역 군 간부들이었다.
정 대령은 햄버거 회동 직전까진 '비밀요원(블랙요원) 명단 유출 사건'과 관련해 직무에서 배제된 상태였다. 정보사 블랙요원 명단이 유출된 이 사건의 여파로 정 대령은 3개월 동안 직무에서 배제됐다가 올해 10월 31일 복귀했다. 노 전 사령관은 이런 정 대령에게 접촉해 진급 가능성을 언급하며 계엄 관련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병주 의원실 등에 접수된 제보에 따르면, 정 대령은 지난달 노 전 사령관에게서 부정선거 관련 유튜브 자료를 정리하라는 요청을 받았다. 당시 노 전 사령관은 정 대령의 전역 시점을 물으며 '김봉규가 먼저 여단장하고 다음에 네가 하면 되겠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정 대령은 "상급자인 문상호 사령관, 노 전 사령관, (정보사 소속) 김봉규 대령 등과 함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 명단 확보, 실무적인 인원 편성, 출근 직원 통제 방법 등 내란 실행 준비 단계에 해당하는 구체적 행동계획을 협의·준비했다"고 최근 실토하며 대국민 사과 입장을 내놨다.
문상호 정보사령관. 연합뉴스문 사령관 역시 지난 7~8월 정보사에서 발생한 블랙요원 명단 유출 사건과 하극상 논란으로 경질 가능성이 거론된 인물이다. 당시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명단 유출 사건과 관련해 "전반적인 혁신, 후속 조치를 강하게 하겠다"고 밝히며 문제 해결을 약속했다.
이후 국방부는 정보사 혁신 방안을 논의하는 회의를 열었고, 문 사령관 경질안이 장관에 보고됐지만 신 장관이 대통령실 안보실장으로 가고 후임으로 김용현 전 장관이 오면서 흐지부지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 2단' 단장·부단장 지목된 장군들, '노상원·김용현' 라인 탔나
계엄 당일인 3일 낮 노 전 사령관의 경기 안산 점집 근처 패스트푸드 가게에서는 '2차 햄버거 회동'이 열렸는데, 이 자리에는 구삼회 육군 2기갑여단장(육사 50기)도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수사 2단의 단장으로 거론되는 구 여단장 역시 조직 내에서 우여곡절을 겪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노 전 사령관과 근무 인연이 있는 구 여단장은 과거 육군지상작전사령부(지작사) 작전처장을 지내며 2022년 12월 북한 무인기 영공 침범 사건 당시 대응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다. 사건 당시 무인기는 오전 10시 19분 육군 1군단의 국지방공레이더에 처음 포착됐다. 이 사실은 지작사를 거쳐 1시간 17분 뒤인 11시 36분쯤 합동참모본부에 보고됐다. 이러는 사이 10시 50분쯤 무인기는 용산 대통령실 기준 반경 2해리(3.7km)로 설정된 P73 비행금지구역의 외곽 끝을 침범했다.
수도방위사령부 제55경비단장과 제1경비단장, 지작사 지휘통제실장·작전과장을 거쳐 작전처장을 역임한 그의 이력으로 볼 때, 2022년 무인기 침범 사건 이후 '승진 코스'로 여겨지지 않는 제2기갑여단장으로 자리를 옮겼다는 게 군 내부 평가다. 구 여단장은 최근 수사기관에 노 전 사령관이 진급을 거론하며 전화를 해왔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2차 햄버거 회동에는 국방부 방정환 혁신기획관(육사 51기)도 자리했는데, 그는 수사 2단 부단장으로 거론되고 있다. 방 기획관 역시 노 전 사령관의 도움으로 국방부에서 점차 요직에 오르며 계엄 모의에 가담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방 기획관은 올해 국방부의 전작권전환TF장, 정책기획차장 등을 거쳐 혁신기획관이 됐다. 방 기획관은 계엄 당일 밤에는 구 여단장, 문 사령관, 김 대령 등과 함께 경기 판교 정보사 100여단 사무실에서 대기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내란' 중심에 선 불명예 전역자들…그들의 '한단지몽(邯鄲之夢)'
현역 군인들을 내란에 가담시킨 배후 인물로 알려진 노 전 사령관과 김용군 전 국방부 조사본부 수사본부장(학군 24기)은 불명예 전역한 전과자 신분의 민간인이었다.
노 전 사령관은 2018년 육군정보학교장 시절 교육생 신분의 부하 직원을 강제 추행한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고 불명예 전역했다. 그는 1심 육군본부 보통군사법원에서 1년 6개월형을 선고받아 복역하던 중 2심 고등군사법원에서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 받아 풀려났다.
'계엄모의' 수첩 발견된 노상원 전 사령관 점집. 연합뉴스김용군 전 본부장도 2012년 대선 당시 국군사이버사령부의 정치 댓글 공작사건을 축소·은폐한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고 불명예 전역한 인물이다. 김 전 본부장도 '2차 햄버거 회동'에 참석해 계엄 계획에 관여한 혐의를 받는다.
윤석열 대통령은 내란사태 직후 대국민 담화에서 야권의 탄핵소추안 남발, 민생예산 삭감, 부정선거 의혹 등을 거론하며 비상계엄 선포를 헌법상 고유 권한으로 강조했다. 아울러 '고도의 정치적 통치행위'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계엄 모의에 연루된 군 인사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그들로선 계엄이 권력을 쥐기 위한 사적 수단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비상계엄 특별수사단(경찰 특수단)은 '수사 2단'의 주요 임무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서버 확보였다고 보고, 해당 사조직의 핵심으로 파악된 군 인사들에게 소환 통보를 하며 관련 수사를 확대하는 기류다. 국방부로부터 수사 2단의 실체를 뒷받침하는 인사 발령 문건까지 확보한 경찰 특수단은 전날 구 여단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한편 경찰 특수단은 이미 구속된 문 사령관의 공범으로 정보사 소속 김봉규 대령, 정성욱 대령, 고동희 대령을 특정하고 사건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이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