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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함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그물이죠"



인물

    “잠수함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그물이죠"

    • 2008-02-21 11:09

    [배한성의 아주특별한 인터뷰] 잠수함, 그 하고 싶은 이야기들 - 안병구 장보고함 초대 함장

    잠수함

     

    “자네는 무얼 배우고 왔나?” 미국 해군에 유학을 다녀온 한 장교에게 사령관이 물었습니다.

    “네, 잠수함을 배우고 왔습니다!” 바로 이 대답이 그의 운명이 됐습니다.

    대우조선해양 안병구 상무. 그는 척박했던 한국 해군의 잠수함 역사를 쓴 장본인으로, 70년대 잠수함 관련 책 하나 제대로 없었던 현실에서 잠수함 관련 자료를 모으고 잠수함 연구에 몰두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해군 최초 잠수함인 ‘장보고함’ 함장이 됐습니다.

    독일로부터 잠수함을 인수해 올 당시 독일 조선소 측이 숨기는 부품의 하자를 발견할 정도로 그는 ‘지독한 사람’이었고, 또한 태평양 한가운데서 맹장염에 걸린 부하의 목숨을 살린 ‘따뜻한 군인’이기도 했습니다.

    한국 잠수함 역사의 살아있는 증인, 대우조선해양 안병구 상무의 35년 잠수함 인생을 19일 CBS 배한성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FM 98.1Mhz, 연출 김우호 PD)에서 만나봤습니다.

    ◇ 대잠전술을 배우기 위해 미국 유학, 오히려 잠수함에 관심갖게 돼

    ▶ <잠수함, 그=""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라는 책을 내셨는데요. 특별한 동기가 있으신가요?

    네. 잠수함을 처음에 시작한 사람이다 보니 이야기가 많은데, 이것을 남겨두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쓰게 되었어요. 제가 글재주도 별로 없는데, 이것은 후배들을 위해서 어떤 일이 있었고, 그 때 무슨 생각을 했었고, 어려운 점은 어떤 것이 있었는지 남겨두어야 할 것 같아서요. 제가 2005년도에 전역했는데, 드문드문 기억나는 대로 쓰다 보니까 부피가 꽤 되더라고요.

    그래서 이것을 어떻게 할까 하다가 그냥 책으로 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 생각에는 그 책에 여러 가지 정보가 있으니까 나중에 다른 사람들이 한국 잠수함에 대해서 알고자 할 때 그 책을 펴보면 뭔가 도움이 될 것 같고, 그것을 덧붙여서 연구할 수도 있는 것이고요. 그런 동기로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 우리나라 잠수함의 역사에 대한 자료나 사료는 많지 않은 것 같은데요?

    많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 잠수함의 역사에 대해 쓴 책은 아마 제가 쓴 책이 거의 처음일 겁니다.

    ▶ 경력이 상당히 화려하신데요. 잠수함과의 인연은 몇 년 정도 되는 건가요?

    안병구

     

    제가 중위였던 1976년에 잠수함과 처음 인연을 맺었습니다.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중위 때 제가 미국 유학을 갔어요. 그 때 잠수함을 잡는 전술인 ‘대잠전술’을 배우러 유학을 가게 되었어요. 그런데 잠수함을 잡는 전술을 배우러 갔는데 이상하게 잠수함에 더 흥미가 생겨서, 잠수함을 잡는 전술을 제쳐놓고 잠수함 공부를 더 많이 한 것이 인연이 되었죠.

    그 뒤로 해군 장교 생활을 30년 하는 동안 계속 저를 그쪽으로 가게 한 방향이 되었죠. 그 뒤에 대위, 소령, 중령을 거치면서 잠수함과의 인연이 거의 끊어질 뻔 하다가 중령 말기쯤인 1983년에 우리 해군에서 잠수함을 갖으려고 많은 노력을 했어요. 그래서 시기적으로 저와 잘 맞았던 것 같아요. 그전까지는 우리나라에서 잠수함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었어요.

    그런데 제가 미국에서 공부하고 한국에 들어와서 전입신고를 할 때, 전입신고를 받은 사령관님 덕에 잠수함 공부를 하게 되었죠. 그 당시에는 잠수함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었는데, 그 사령관님이 책임자가 되셔서, 부하에게 옛날에 “중위, 대위 때 내가 잠수함 공부를 시킨 안 모씨가 있는데, 걔가 지금 어디 있는지 한번 찾아봐.”라고 하시면서 저를 찾으셨어요.

    그 분이 투 스타로 해군본부에서 잠수함 사업을 총괄하는 책임을 맡고 계셨거든요. 그 때 저는 인천에서 고속정을 타고 있었어요. 그 때만 해도 간첩선이 많았으니까 간첩선을 잡으러 다니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본부에서 오라는 거예요. 갑자기 오라고 하니까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가서 들어가보니 옛날 중위 때 잠수함 잡는 전술 교육을 받고 돌아와서 신고를 받고 저를 잠수함 교육을 시켰던 분이 바로 그 분, 이종수 제독이셨어요. [BestNocut_R]

    그 때는 공부의 차원이 아니고 잠수함을 들여와야 하는 사업의 차원이었는데, 그 때 제게 ‘우리가 무슨 잠수함을 가져야 하는가’에 대해 제출하라는 숙제를 내주셨어요.

    그림을 그려내라는 것인데, 영어로 ‘TLR(Top Level Requirement)이라고 하는데요. 배를 만들게 되면 먼저 그림을 그려야돼요. 크기는 얼마인지, 인원은 얼마나 타는지, 무기는 어떤 것을 가져야 하는지, 수심 몇 m까지 들어갈 수 있어야 하는지, 바다에서의 작전가능한 기간은 얼마나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그림을 그려서 내라는 거예요. 우리 해군이 가져야 할 잠수함을 만들어 내라는 겁니다.

    ▶ 처음에는 참 황당하고 막막하셨겠어요?

    네. 그 때 제가 소령 때였는데, 정말 막막하고 잠이 안 오더라고요. 일개 소령이 군의 잠수함을 그려내려니 전문가도 아닌데 참 겁나더라고요.

    ▶ 그래서 보고서를 어떻게 만들어서 제출하셨나요?

    있는 지식, 없는 지식을 다 해서 해봐도 잘 안되더라고요. 일단 초벌 그림은 그렸는데, 영 자신이 없는 거예요. 해군에서 수십년 동안 써야 할 잠수함을 만드는 일이라 신중할 수 밖에 없었죠. 그래서 제가 “세계의 잠수함을 건조하는 조선소들을 불러서 좀 확인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달라.”고 해서 2개월의 시간을 더 받았어요.

    그래서 프랑스, 독일, 이태리, 네덜란드의 조선소에 텔렉스를 보냈더니, 바로 하루만에 답이 오더라고요. 텔렉스의 문구도 제가 직접 만들어서 보냈는데요. ‘우리는 귀사의 제품에 대해서 흥미가 있습니다. 서울에 오셔서 귀사의 제품에 대해서 발표를 해주실 수 있습니까?’ 하는 내용을 영어로 써서 보냈더니, 바로 답이 오는 거예요. 거기서 답이 나왔죠.

    각 나라별로 이틀씩 해군본부에 들어와서 토론을 하고 물어보고 질문을 하고, 그렇게 한 2~3주가 지나니까 제가 처음에 초벌로 그린 그림과 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비교해 가면서 앞으로의 전망까지 그려지게 되니까 조금씩 자신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그것을 5개월 만에 완성했어요.

    ▶ 1990년대 후반, 동해안에 북한 잠수함이 좌초된 사건이 있었는데요. 잠수함은 발견하기가 어렵다면서요?

    잠수함은 일단 물속에 들어가면 발견하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그 때 강릉지구에 잠수함이 들어왔다가 우리에게 발견된 것은 그들이 작전을 잘못했기 때문인데요. 우리 바다에 침투해서 착저(바다밑에 가라앉아 있는 것)를 하는데, 착저하는 위치를 잘못 잡아서 물이 빠졌을 때 발견된 것이거든요. 한마디로 작전실패한 거죠.

    ◇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바닷속, 소리 탐지하며 이동

    ▶ 지금은 몇 m까지 내려갈 수 있나요?

    잠수함이 물 속 몇 m까지 들어갈 수 있냐고 물어보는 것은 묻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잠수함에게는 아주 기밀사항이거든요. 그것을 알려주는 것은 잠수함에게 공격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이예요. 그래서 정확히 말씀드릴 수는 없고, 수백m까지 들어갈 수 있습니다.

    ▶ 깊이 들어가면 ‘찌지직’소리가 난다고 하는데, 겁나지는 않나요?

    물속은 10m 내려가면 기압이 1기압이 올라갑니다. 그래서 100m를 내려가면 10기압이 올라가고, 200m를 내려가면 20기압이 올라갑니다. 20기압이 올라가면 선체가 찌끄러져요. 그 때 선체의 강철로 된 프레임이 찌그러지면서 나는 소리가 ‘찌지직’하고 나는 겁니다.

    ▶ 다시 부상을 하게 되면 원상복구가 되는 건가요?

    네. 원상복구될 때는 또 ‘뻑’하는 소리가 나요. 150m 정도 내려가면 배가 ‘찌지직’하다가, 50m 정도까지 올라오면 갑자기 ‘뻑’하는 소리가 나요. 그 때는 아주 속이 시원해지는 것 같아요.(웃음)

    ▶ 그러면 잠수함에 쓰이는 쇠 자체가 특수한 재료인가요?

    네. 보통 배 만드는 강철이 아니고, ‘고장력강’이라고 철판을 쓰고, 철판 안에 사람의 갈비뼈같이 프레임을 만들어서 3cm간격으로 촘촘하게 세워요. 그리고 그 밖에 두꺼운 고장력강을 다시 입히죠. 그것이 선체가 되어서 찌그러졌다가 다시 펴지고 하는 거죠. 그런데 수압이라고 하는 것은 대단히 무서운 겁니다.

    ▶ 그런 높은 수압에 있는 동안 신체에는 아무 이상이 없는 건가요?

    잠수함 내부에 있는 동안은 아무런 이상이 없습니다. 그 안에는 대기 중의 압력을 유지하고 있으니까요.

    ▶ 크기에 따라 다르기도 하겠지만, 보통 잠수함에는 몇 명 정도가 타나요?

    현재 우리나라 잠수함은 32명에서 40명까지 탑니다. 1천2백톤급인데요. 미국과 같은 큰 잠수함들은 1백명 타는 잠수함도 있고요. 일반 배로 1천2백톤급이면 보통 1백명은 타는데, 잠수함은 같은 급이면 보통 배의 승조원 수보다 항상 3분의 1정도 밖에 안돼요. 공간도 그렇고, 한 사람에게 두 가지 일을 시키니까 인원을 대폭 줄여서 쓰게 되니까요.

    ▶ 잠수함에서 본 바다 속은 어떨까 궁금한데요. 햇빛이 수심 30m 정도 밖에는 비치지 않는다고 하던데, 50m쯤 들어가면 어떻게 되나요?

    깜깜하죠. 맑은 청정해역에서 아주 맑은 날 햇빛이 도달할 수 있는 수심은 30m가 최고입니다. 30m 이상만 들어가면 햇빛이 안 들기 때문에 깜깜해요. 깜깜하기 때문에 앞을 보면서 다닐 수는 없으니까 소리를 듣고 다니게 되는 거죠.

    ▶ 어떤 소리가 들리나요?

    일단은 바다위에 떠다니는 모든 소리, 즉, 배 소리, 어선 소리, 군함 소리들이 다 들립니다. 물속에서는 소리가 더 잘 들립니다. 공기중에서보다 더 잘 들립니다. 그 밖의 모든 이동하는 것의 소리가 다 들립니다.

    ▶ 어떻게 그렇게 소리를 잘 들으시나요?

    음향을 분석하는 장비도 있고, 자꾸 듣다보면 어느 정도 구분이 갑니다. 그런데 요즘에 제일 무서운 것이 뭔가하면, 소리가 안 나는 것이 제일 무서운데 그것이 바로 ‘어망’입니다. 어망은 고기를 잡으려고 항상 쳐놓고 있으니까 소리가 안 나거든요. 그런데 잠수함이 가끔 걸려요.

    ▶ 어망에 걸리면 꼼짝도 못하나요?

    꼼짝달싹 못하는데, 그러면 어망이 손상되거나, 잠수함 외부에 달린 것이 부러지거나 하기도 하죠. 또 만일 진짜로 잠수함이 어망에 걸려서 못가게 되면 물밖으로 나가서 그걸 끊어야 돼요. 그러니까 소리없는 어망이 무섭죠.

    ▶ 암초도 무서울 것 같은데요.

    암초는 걱정없습니다. 암초는 바다 밑에 있는 것인데, 바다 밑에 있는 것은 다 알 수 있습니다. 마치 무엇과 같은가 하면, 비행기를 타고 갈 때 산맥을 보는 것과 같은 겁니다. 바다 속에 있는 해저 지형을 다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큰 걱정은 없습니다.

    ▶ 앞을 볼 수 있도록 큰 창을 달고 헤드라이트를 달 수 없는 건가요?

    헤드라이트를 비춘다고 해도 공기중에서 비추는 것만큼 그렇게 멀리 볼 수는 없습니다. 아주 가까운 몇 m 정도밖에는 볼 수 없습니다.

    ▶ 잠수함이 수면 위로 올라올 때가 가장 위험하다고요?

    함장이 제일 싫어하는 심도가 물 속 50m에서 수면까지예요. 왜 위험한가 하면, 그 구간에는 제일 겁나는 어망이 많거든요. 어망처럼 소리 안 나는 물체가 존재하는 구간이 바로 거기죠.

    그리고 또 하나 겁나는 것은 배인데요. 배도 물밑에 잠기는 부분이 있는데, 큰 배는 좀 더 많이 잠기고, 작은 배는 조금 잠기는데, 그 잠기는 부분이 50m 이내에 있어요. 현재까지 있는 배중에서 수면에서 밑으로 내려가는 부분이 30m를 넘어가는 것은 없어요.

    그러니까 선체의 높이가 20m 이상 되는 잠수함이 그 아래에 있다면 그 사이에서 부딪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수심 50m에서 수면까지의 심도가 가장 위험한 거죠. 오히려 50m 이하로 내려가면 아무 것도 없어서 편하게 다닐 수 있어요. 그래서 50m를 우리는 ‘안전심도’라고 합니다.

    ▶ 소리나는 어망이 필요하겠는데요.

    네. 요새는 정말 그렇게 해야 합니다. 요즘은 어망뿐만 아니라 바닷속에서 기름을 빼내는 시추선도 많이 있는데, 그런 인조물체는 소리가 나는 시그널을 보내게 해야지, 그렇게 안하다가는 잘못하면 부딪쳐요. 그런 것들이 법으로 정해져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50m 이내의 그물에 소리가 나도록 하는 장치를 달아야 한다는 법이 없어서, 그렇게 되면 잠수함은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웃음)

    ◇ 우리나라 첫 잠수함 인수하기 전, 중대 결함 발견하고 시정 요구하기도

    ▶ 바다가 어떻게 보면 고향같고, 그래서 ‘피안의 바다’, ‘어머니와 같다’는 문학적인 표현도 하셨는데요.

    바다 위를 항해하면서 다닌다는 것은 참 힘든 일입니다. 일단 파도도 심하고, 선박들과 부딪칠 염려도 있습니다. 바다 위는 차선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자기가 가고 싶은 대로 가장 직선코스로 다니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어선이나 상선을 피해 가면서 항해를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죠. 그런데 잠수함을 타고 수심 50m 이상만 들어가면 그런 이동 물체가 없어요. 소리만 안 나는 한 정말 편하죠.

    위험물이 없으니까 ‘피안의 바다’라고 표현했는데, 처음에는 물속에 들어간다는 것이 겁이 났었죠. 그런데 항해하다 보니까 물속에 들어가는 것이 그렇게 편하더라고요. 항해하는 사람으로서는 물속같이 편한 곳이 없어요. 물속에 들어가면 마음이 참 차분해져요.

    왜 그런가 생각을 해보면, 저는 물을 어머니의 몸속으로 비유할 수 있는데요. 우리가 맨 처음에 자란 곳이 물속이잖아요. 처음에 잉태한 곳이 물속이고, 10개월이 지나면서 물 밖으로 나오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제가 바다는 어머니와 같다고 표현한 겁니다.

    ▶ 독일에서 잠수함 인수교육을 받은 것이 1990년도 인가요?

    1990년도에 가서 1992년도에 왔으니까, 약 2년 동안 교육을 받았죠.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제가 잠수함을 그린 이후에 그 잠수함을 어떻게 획득하느냐에 대해서 많은 논쟁이 있었죠.

    ▶ ‘획득’이라는 표현은 어떤 의미인가요?

    ‘획득’이라는 것은, 잠수함을 우리가 갖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 잠수함을 우리가 어떻게 갖느냐, 우리가 만들 것인가 아니면 밖에서 사올 것인가 하는 문제로 논쟁이 반년 가까이 벌어졌죠.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우리 손으로 만들어서 시작을 해야한다는 의견이었고, 저는 우리가 개발하는 것은 시간이 걸리니까 일단 빨리 가기 위해서는 외국에 잠수함을 하나 주문해서 만들고, 그 만드는 동안 가서 배워서 그 다음부터 우리나라에서 만드는 것이 확실하다고 본다고 얘기했죠.

    그래서 결국은 그 방법으로 갔어요. 그래서 1번함을 독일에서 만드는 동안 저같은 운영요원들은 가서 교육을 받고, 우리나라에서 잠수함을 건조할 조선소 인원들을 보내서 기술을 익히고요. 그 뒤로 2번함부터는 한국에서 만들었죠. 우리나라가 잠수함은 처음이니까 가서 배울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래서 2년 동안 꼬박 거기서 교육받고 훈련하고 그랬죠.

    ▶ 그래도 새로운 일을 하시니까 신나셨겠어요.

    그렇죠. 그 때 정말 가슴이 뿌듯했죠.

    ▶ 교육받으시면서 제일 힘든 것은 어떤 것이었나요?

    배한성

     

    교육을 받는 동안은 좋았어요. 오히려 잠수함을 받고난 뒤에 힘들었죠. 잠수함을 받고나서 그 배로 훈련을 하는데, 잘 모르는 노르웨이 바다에 가서 훈련을 하는데, 생전 처음 보는 바다라서 많이 힘들었죠.

    물론 우리나라 바다나 유럽 바다나 똑같지만, 그래도 바닷속을 훤히 알고 있는 것과 생전 처음 가보는 것과는 또 다르잖아요. 우리가 훈련을 받는 곳은 노르웨이 남쪽의 발틱해였는데, 그곳은 바다가 낮아서 수심이 40m밖에 안돼요. 그래서 더 깊은 노르웨이쪽으로 가야해요.

    한 400m되는 수심에서 훈련을 했는데, 훈련자체도 처음이니까 힘들지만, 우선 저는 함장이니까 정말 옥동자같은 우리 잠수함 첫 배가 사고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 독일 조선소에서 잠수함을 인수하기 전에 결함을 발견하셨다고요?

    그런 경우가 많죠. 잠수함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사람이 숨을 쉴 수 있는 공기가 계속 유지되는 것인데요. 사람들이 탈수록 시간이 지나면서 탄산가스가 많아지거든요. 사람이 숨을 쉬기 위해서는 산소가 17~19%가 유지 되어야 원활한 호흡을 할 수 있어요.

    그리고 탄산가스는 1%이하가 되어야지 그 이상이 되면 어지러워요. 그래서 산소가 17~19%가 되도록, 탄산가스가 1% 이하가 되도록 조절해주는 공기정화장치가 잠수함에서는 제일 중요한데, 그 장비가 우리가 계약할 때 보니까 2차 대전 때 쓰던 것이었어요. 그것을 우리는 처음에 몰랐어요.

    그런데 우리가 교육을 받으면서 주효했던 것이 실습 때 독일 잠수함을 타 볼 기회가 있었어요. 독일 잠수함을 타보니까 공기가 중요한 것은 아는데, 공기정화장치가 우리 것과 다르더라고요. 그래서 우리 것과는 왜 다른지 조사를 해보니까 우리 것은 2차 대전 때 쓰던 것이라는 거예요. 독일 것은 70년대의 것으로 바꿨는데, 우리나라 잠수함은 2차 대전 때 쓰던 것을 계속 쓴다는 거예요. 그 때 정신이 바짝 들었죠.

    ▶ 이산화탄소를 많이 마시면 치아가 빠진다면서요?

    네. 독일에 있는 동안 그 곳의 조선소 직원 한 명이 이야기 하는데 이산화탄소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생각하면 안된다고 하면서 틀니를 빼서 보여주더라고요.

    젊은 사람이 틀니를 빼는 것을 보고 제가 깜짝 놀랐는데, 자기가 이산화탄소가 많이 나오는 밀폐된 공간에 갇혀서 죽을 뻔 했다고 하더라고요. 거기서 구사일생으로 살았는데, 그 사고 후유증으로 자꾸만 치아가 뽑히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병원에 가서 물어보니까 ‘이산화탄소 장기간 과다 호흡’이라고 해서 틀니를 하게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일에 충격을 받고, 그 뒤부터 공기 정화장치 교체운동을 벌인 것이죠.

    그런데 힘들었던 점이, 처음에 우리가 계약을 할 때 기존의 것으로 잘 모르는 상태에서 계약을 했는데, 그 쪽에서는 안된다고 하면서 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탄산이 1%이하로 유지가 안 된다는 문제점을 찾아내서 증명을 했죠.

    증명을 하는데 제가 조금 역할을 한 것이, 독일도 기존의 것이 성능이 안 좋아서 1970년대에 교체를 했다는 것을 조사해서 우리도 테스트를 해서 독일 사람들에게 증명을 했어요. 세 번을 실험했는데, 세 번 다 1% 이하로 유지가 안 되는 거예요.

    ▶ 그랬더니 독일측에서 인정하던가요?

    인정했죠. 그래서 결국은 그 장치를 바꾸게 되었죠. 그 때 바꾸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2차대전 때 쓰던 공기정화장치를 쓸 뻔 했죠. 보통 우리가 독일 사람들이 정확하고 틀림없어서 지독하다고 하잖아요. 그 지독한 사람들이 우리보고 지독하다고 했으니까요.(웃음)

    ◇ 하루 빨리 잠수함을 수출하는 나라가 되는 것이 소망

    ▶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보니 고향이 충청도이신가봐요.

    네. 충청남도 당진, 서해대교 지나서 있는 바닷가가 제 고향입니다. 서해대교 지나면 송악이라는 곳이 있는데, 그 옆에 ‘한진’이라는 부두가 있어요. 거기서 통통배를 타고 인천 월미도로 온 사람입니다. 학교는 인천에서 다녔죠.

    ▶ 부모님도 바다와 관련된 일을 하셨나요?

    아니요. 부모님은 전형적인 농부이셨는데요. 저희 가족이 6남2녀였어요. 그런데 어머님이 이렇게 시골에서 지내면 안 되겠다 생각하셔서 제 바로 위의 형님을 공부시켜야겠다고 데리고 인천으로 오신 것이 계기가 되었는데, 그 뒤로 저도 인천에 와서 공부를 하게 되었죠.

    ▶ 형님이 해군 참모총장까지 지내셨다니, 대단하네요.

    네. 형님이 해군 20대 참모총장을 지낸 안병태 제독인데요. 시골에 계속 있었다면 아마 지금 농사짓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부모님이 좀 남다르게 생각하셔서 6형제 중에서 그래도 공부를 좀 할만한 아들로 저희 형님을 꼽으셨어요.

    그래서 형님만 데리고 무작정 인천으로 가신 거예요. 그리고 우리는 시골에 있었고요. 그러다가 가만 보니까 저도 형에게 가야겠더라고요. 그래서 7살 때인가 혼자 한진에서 통통배를 타고 인천으로 갔어요. 인천 어딘지도 모르고 무작정 형님댁으로 찾아가서 그 때부터 인천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웃음)

    저희 부모님이 자식을 위해서 그런 결심을 하신 것이 1950년대인데, 지나고 보니까 정말 감사하죠. 그 덕분에 저희 집안에는 별이 다섯 개입니다. 우리 형님이 네 개를 달고 나오셨고, 저는 하나밖에 못 달고 나왔어요. 해군은 지금 현재 제독이 약 40여명 밖에 안돼요. 소수인원이기 때문에 그 안에 들기가 참 힘들죠.

    ▶ 부모님은 지금도 건강하신가요?

    아니요. 돌아가신지 오래 되었죠. 고향에서는 아들 데리고 공부시키러 나가더니 별 만들었다고 소문난 집안이죠. 생전에 저희 형님과 저를 고향에 데리고 가시면 많이 뻐기고 뿌듯해 하셨죠.(웃음)

    ▶ 지금 자제분들은 어떠신가요?

    아들 둘인데요.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구하기 위해서 대기상태인데, 저희 아들 둘 다 해군을 나왔습니다. 우리 형님네 아들들도 해군을 나왔고요. 또 동생들도 전부다 해병 출신이고요. 형제들이 해군에 있다보니까 어떻게 그렇게 되더라고요. 해군집안이 되었습니다.

    ss

     

    ▶ 우리나라의 잠수함 건조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요?

    아시다시피 조선업은 우리나라가 세계최고죠. 세계 10대 조선소 중에서 일곱 개가 우리나라에 있으니까요. 그리고 전체 연간 조선 수주량의 40%를 우리나라가 하니까, 말할 것도 없는 세계 1등 조선국인데요. 현재 잠수함을 수출하는 나라는 4~5개국 정도 밖에 안돼요.

    잠수함이라고 하면 조선기술의 정수라고 하는데, 옛날에는 약 11개국이 잠수함을 만들어서 수출했어요. 그런데 요즘에는 조선업이 외국에서는 다 사양산업이 되어서 잠수함을 수출하던 나라도 다 수입을 해요. 그래서 지금은 잠수함을 수출하는 나라가 4~5개국 정도밖에 안돼요.

    우리나라의 잠수함 건조기술은 15년 정도 밖에 안 되지만 잠수함을 수출하는 5개국 안에 들어가는 상태죠. 잠수함 건조기술도 세계의 톱클래스에 올라와 있는 상태입니다. 지금 제가 대우조선에서 하는 일이 잠수함을 포함한 해군함정을 수출하는 파트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 우리나라에서 러시아의 K급 잠수함을 인수할 뻔한 사연도 이 책에 있던데, 어떤 내용인가요?

    1996년도의 일인데요. 아시다시피 우리나라가 북방정책이었잖아요. 러시아와의 외교관계를 공고히 하려는 때였는데요. 그러다가 우리나라가 러시아에 차관을 주었어요. 14억7천만달러인가 더 받을 것이 있었는데, 그 때가 러시아가 막 무너져 갈 때였는데, 돈이 없으니까 돈 대신에 무기를 가져가라고 하게 되었는데, 그 중에 잠수함이 있었던 거죠.

    그런데 우리나라는 독일형 잠수함을 진행하고 있던 상태였는데 그 잠수함을 가져가라고 하니까, 우리나라에서는 돈도 못 받게 되었으니 잠수함을 그냥 가져다가 쓰면 되지 않겠느냐고 해서 우리 해군에서 가져다 쓰는 것을 한 번 검토해 보라고 했었어요.

    그 때 참모총장이 바로 제 형님이셨어요. 그래서 형님이 고민이 생긴 거죠. 우리는 독일 잠수함을 만들어서 잘 가고 있는데, 갑자기 러시아 잠수함을 가져오라고 하니 걱정이 많았죠.

    다행히 동생인 제가 잠수함을 타고 있으니까 저한테 한 번 알아보라고 하셔서 제가 러시아에 갔죠. 가서 보니까 너무 아니올시다였어요. 한마디로 한 세대 이전의 것이었어요. 장비나 이런 것들이 완전히 아날로그였어요.

    그런데 그때만 해도 서방세계에는 킬로급 잠수함이 굉장한 잠수함으로 소문이 나있었거든요. 미국의 해군도 두려워 할 정도의 굉장한 잠수함으로 소문이 나있었는데, 막상 가서 보니까 영 아니더라고요.

    제가 잠수함 교육을 받고 선진 잠수함에서 지낸 덕에 그것을 알 수 있었죠. 그래서 왠만하면 우리나라도 빨리 잠수함 부대를 키우자는 생각에서 갔었는데, 안되겠어서 갔다온 뒤에 절대 안된다고 했죠.

    ▶ 잠수함에서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그것도 걱정일 것 같은데요. 부하가 맹장염으로 고통받은 경우도 있었다고요?

    보통 바다 위를 다니는 수상함에서 환자가 생기면 배 안에 다 조치인원도 있고, 기기도 있어서 수술도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잠수함은 좀 달라요. 잠수함은 인원이 한정되어 있어서 긴급조치를 할 수 있는 의무요원이 단 한 명이고, 수술을 할 수 있는 곳도 없거든요.

    우리나라 근해의 바닷속에 있다가 환자가 생기면 얼른 올라와서 육지로 후송하면 간단히 해결되는데, 제가 경험한 것은 잠수함 부대장 할 때 하와이로 훈련보냈던 배가 중간에 태평양 바닷속에서 맹장염이 생긴 거예요. 거기에서는 방법이 없는 거예요.

    하와이를 가려고 해도 열흘이 걸리고, 우리나라로 돌아오는 것은 시간이 더 걸리고요. 그래서 할 수 없이 미국 해군에 SOS 요청을 했죠. 그 때 미 해군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그 부하는 태평양 바닷속에서 죽었죠. 그 때 미 해군의 지원을 받아서 하와이로 후송해서 복막염으로 터지기 직전에 수술을 하게 되었죠.

    ▶ 바다에서 마시는 커피가 그렇게 맛있습니까?

    잠수함 ‘함교’라고 하는데요. 잠수함 함교는 그냥 ‘노천함교’라고 해서 비오면 비를 맞고 바람불면 바람맞는 함교인데, 그런 함교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를 가져다 줘서 마시면 얼마나 맛있겠어요?

    그래서 저는 그 맛을 못 잊어서 이 책에도 썼는데, 그것은 마치 등산하다가 추운 산 속에서 김이 모락모락나는 커피를 마시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요?(웃음)

    ▶ 앞으로의 계획과 소망은 어떤 것이 있으신가요?

    저는 전역한 뒤에도 계속 잠수함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는데요. 잠수함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나라들이 좀 있습니다. 그런 나라들이 잠수함을 어떻게 가져야 되고, 무엇부터 시작해야 되고 하는 것을 잘 모르거든요. 저는 잠수함을 그리는 것에서부터 시작했던 경험이 있어서 그런 나라들에게 많이 자문을 하고 있죠.

    저는 기왕 잠수함을 시작했으니 잠수함을 수출하는 일을 한 번 했으면 참 좋겠습니다. 그것이 작은 소망입니다.

    (표준 FM 98.1MHz 월~토 오후 4시 5분, 정리=김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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