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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뽑은 2014년 올해의 인물 중에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뽑혔다.
개인 조현아 전 부사장뿐만 아니라, 국적 항공사인 대한항공과 아버지인 조양호 회장에게는 불명예다.
딸인 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으로 가장 고심을 많이 하고 있는 사람이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일 것으로 예상된다.
막내인 조현민(31) 전무의 “복수하겠다”는 문제 메시지가 공개돼 또다시 여론의 뭇매를 맞는 것을 보면서 참담한 심정일 것이다.
조 전무는 “언니가 검찰에 출석하는 날 댓글을 보다가 분이 치밀어 잠시 복수심이 있었다”며 “후회하고 있으며 치기어린 짓이었다”고 사과했다.
과묵하기로 유명한 조양호 회장은 믿었던 딸들이 한심하기도 할 것이고, 국민 여론과 검찰이 야속하기도 할 것이다.
아직 돌도 지나지 않은 외손자가 엄마인 조 전 부사장 없이 지낸다는 것을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져 내릴 것이다.
손자를 볼 때마다 보통 할아버지 모습 그대로 눈물을 흘릴 것이다. 그런데 조 회장은 그런 감상에 젖을 시간이 없고 그럴 상황도 아니다.
유가가 50달러 선으로 급락하고 꾸준한 여객 수요로 인해 대한항공사의 실적이 개선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땅콩 회항’ 사건은 대한항공 이미지와 조 회장의 리더십에 큰 상처를 남긴 것만은 분명하다.
수습의 책임이 조 회장의 손에 달렸다. 언론과 국민은 그의 수습책을 지켜보고 있다.
국민과 함께 할 수밖에 없는 기업인 대한항공의 책임자로서, 딸들의 안하무인격인 처신으로 인해 국민에게 상처를 준 데 대한 책임을 지는 모습을 일차적으로 보여야 한다.
‘땅콩 회항’ 사건이 한참 진행 중일 당시의 사과가 불을 끄기 위한 사과였다면, 이제 진정으로 해야 할 용서의 사과는 국적 항공사인 대한항공을 거듭나게 하겠다는 다짐과 새출발을 의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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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함께 대한항공의 기업, 조직 문화를 상명하달식이 아닌 일정 부분 수평적으로 쇄신해야 하고 권한을 이양해야 한다.
항공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한항공과 조양호 회장에겐 ‘안 된다’고 말하는 참모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NO', ‘안 됩니다’란 비단 정치 권력에서만 금과옥조 같은 고언이 아니라 재계, 재벌 총수들에게도 ‘명약’이랄 수 있다.
족벌경영체계의 가장 큰 폐단인 오너의 독단적 경영 형태가 조 전 부사장의 구속까지 가지 않아도 될 사안을 심화시킨 가장 큰 원인이었다면, 그런 폐단부터 고쳐 자율성과 창조성을 심어줘야 한다.
특히 한국뿐만 아니라 대한항공을 이용했거나 이용할 전 세계인들을 상대로 체질 개선에 대한 미래의 모습을 보여줄 필요성이 있다.
또 ‘땅콩 회항’ 사건으로 대한항공 임직원들의 사기가 크게 떨어졌다. 상무, 전무급 이상 임원들은 ‘땅콩 회항’ 사건을 수습하고자 정계와 관계, 언론계를 상대로 읍소한 사실을 조 회장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대한항공 임원들이 이번처럼 위기의식을 느끼고 정.관.언을 상대로 ‘전면전’을 수행한 예는 거의 없었다.
그런 임직원들의 사기 진작도 그의 몫이다. 무엇보다 국민의 상처받고 닫힌 마음을 녹일 필요성이 절실하다.
대국민 사과와 이미지 개선, 임직원 사기 진작, 새로운 대책 등이 대한항공 ‘회심’의 충분조건이라면 두 딸과 아들의 처리는 필요조건이랄 수 있다.
조현민 전무까지 퇴진하라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인터넷상에는 조현민 전무가 보복하겠다면, 국민이 대한항공을 보복하겠다는 댓글이 회자되고 있다.
첫 실타래를 잘못 푸는 바람에 ‘땅콩 회항’ 사건이 수습 불가능하게 커진 것을 교훈으로 여긴다면 국민의 악화된 감정은 그냥 놔두고선 곤란하다.
‘언젠가 달라지겠지’라는 안이한 판단을 한다면 시나브로 골병드는 형국을 맞을지도 모른다.
조양회 회장은 지난해 봄 인사 때 큰 딸과 아들만을 부사장으로 승진시킨 것은 패착 중의 패착이었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두 딸과 조원태 대한항공 경영전략 및 영업부문 총괄부사장을 아예 경영 일선에서 빼는 결단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조양호 회장에겐 결단의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조 회장이 결단을 하지 않고 어물쩍 넘어가면 그 어떤 일(사고 등)이 일어나 뒤통수를 칠지 모른다.
세상사란 그런 경우가 허다하다는 걸 조 회장도 경험으로 알 것이다. 아버지인 조중훈 전 회장의 뜻이 무엇일까를 곱씹어 보면 금방 답이 나온다.
3세 경영 시대를 맞이할 수밖에 없는 대한항공을 위해서라도, 수감 중인 조현아 전 부사장의 장래를 위해서라도, 아들딸을 번듯하게 키우기 위해서라도 지금은 채찍을 들 때지, 당근을 제시할 때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