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속사정이 궁금하다. 뉴스의 행간을 속 시원히 짚어 줍니다. [Why뉴스]는 CBS 라디오 <박재홍의 뉴스쇼="">를 통해 들을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박재홍의>
■ 방송 : 권영철의 Why뉴스
■ 채널 : 표준 FM 98.1 (07:30~09:00)
■ 진행 : 박재홍 앵커
■ 대담 : 권영철 CBS 선임기자
12일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기자회견에서 기업인 가석방 문제를 언급했다. 기자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이지만 박 대통령이 기업인의 가석방 문제를 공식 언급하기는 처음이다.
그렇지만 박 대통령이 기업인에 대해 대통령의 권한인 특별사면 대신 가석방을 법무부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선을 그으면서, 가석방을 하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하지 않겠다는 것인지를 두고 분석과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그래서 오늘 [Why뉴스]에서는 "朴 대통령은 왜 기업인 사면 법무부에 떠넘기나?" 라는 주제로 그 속사정을 알아보고자 한다.
▶ 기업인 사면 문제를 법무부에 떠넘겼다는 거냐?= 그렇다. 어제 박근혜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기업인 가석방 문제와 관련해서는 기업인이라고 해서 특혜를 받는 것도 안 되겠지만 기업인이라 해 역차별 받아서도 안 된다.
가석방 문제나 이런 건 국민의 법 감정, 형평성 이런걸 종합적으로 감안해 법무부가 알아서 판단하면 될 것이다" 라고 밝혔다.
질문하는 기자가 가석방으로 한정을 짓기는 했지만 대통령이 기업인의 사면문제는 언급하지 않은 채 "국민의 법 감정과 형평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법무부가 판단하면 될 것"이라고 밝힌 것이다.
이제 기업인의 가석방 문제는 황교안 법무부 장관에게 그 공이 넘어갔다. 청와대는 관계없는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검찰의 한 고위관계자는 "정부 여당에서 기업인의 사면에 대해 분위기를 조성했는데 매몰차게 거절하기 어려우니까 법무부로 떠넘긴 것으로 보인다"라고 풀이했다.
▶ 기업인 가석방을 하겠다는 것이냐? 안 하겠다는 것이냐?
황교안 법무부 장관 (사진=윤창원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이 공을 법무부에 넘겼으니까 법무부가 판단한 일이 된 것이다. 그래서 말을 그대로 해석하면 가석방을 할지 말지는 유동적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다만 박 대통령의 언급에서 몇 가지 유의할 점이 있다.
첫 번째는 기업인이라고 해서 특혜도 안 되지만 역차별을 받아서도 안 된다고 밝힌 점이다. 두 번째는 '국민의 법 감정과 형평성을 종합적으로 감안' 한다는 얘기다. 세 번째는 '법무부가 판단하면 될 것' 이라는 언급이다.
이 세 가지 사항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면 기업인 가석방은 부정적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그 이유는 첫 번째 대통령의 고유권한인 사면 대신에 가석방을 언급했다는 점이다. 사면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지만 가석방은 법무부 장관이 최종 결정권자이다. 법률상 형기의 1/3을 채우면 가석방 심사대상이 되지만 현실적으로 형기의 85% 이상을 채워야 가석방 심사가 이뤄질 정도로 엄격하다. 반면 특별사면은 2009년 삼성 이건희 회장의 사면에서 보듯이 형기의 몇 달을 채우지 않아도 가능하다.
두 번째는 사면이나 가석방의 원칙을 언급했다는 부분이다. 박 대통령은 기업인이라고 '역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도 '국민의 법 감정과 형평성을 종합적으로 감안'하라는 점을 강조했다. 국민의 법 감정과 형평성을 감안하면 기업인의 사면은 불가능하다. 여론조사기관의 사면에 대해 설문조사 결과 부정적인 의견이 70% 선이었다.
세 번째는 '법무부가 판단하면 될 것' 이라는 박근혜 대통령 특유의 유체이탈식 화법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법무부가 알아서 판단하라는 건 '가석방을 하지 말라는 원칙적인 언급'이라는 해석이 우세하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최경환 부총리가 바람을 잡았고 재계에서도 요구하고 있으니 매몰차게 안 된다고 하기보다는 법무부에 떠넘기는 모양새로 비켜가려 한다는 것이다.
청와대에서 근무한 한 중견법조인은 "박근혜 대통령의 화법으로 미루어 볼 때 '논란이 일 결정은 하지 말라는 취지'로 읽힌다"라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역차별'이라는 단어에 주목하면서 가석방이 될 수도 있다고 전망하지만 박 대통령의 스타일로 미뤄볼 때 가석방은 어렵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 대통령이 왜 법무부에 떠넘긴 것이냐?= 이런 표현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정치적인 계산'이 작동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쪽도 아니고 저쪽도 아니고 애매한 유체이탈식 화법으로 쟁점을 비켜나갔다는 얘기다.
사면을 선택하지 않은 건 정치적인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것이고, 가석방으로 떠넘긴 건 법무부가 알아서 하되 대통령에게 부담이 가는 일은 없도록 하라 이런 식인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신년기자회견에서 경제라는 단어를 42차례나 언급할 정도로 경제회복의 골든타임을 강조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대통령의 권한인 사면으로 기업인들을 풀어줘도 나름 명분을 세울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법무부로 떠 넘겼다.
또 법무부장관의 권한인 가석방으로 넘기더라도 기업인들이라고해서 특혜도 안 되지만 역차별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만 강조했다면 '역차별'에 방점을 둬서 가석방이 이뤄지겠구나 여겼겠지만 박 대통령은 여기에 "국민의 법 감정과 형평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법무부가 판단하면 될 것"이라며 일종의 가이드라인까지 제시했다.
결국은 책임도 지지 않고 비판도 받지 않고 그렇다고 재계와 척을 지지도 않겠다는 결과물이라는 얘기다.
박 대통령이 차라리 기업인에 대한 사면은 대통령의 권한이니까 법과 절차에 따라 판단할 일이라고 하거나 기업인에 대한 특사는 대통령 공약사항이고 법치주의 확립을 위해서 불가능하다고 했으면 될 일을 애매한 유체이탈식 화법으로 빠져나가고 또 법무부에 권한이 아닌 책임을 떠넘기면서 가이드라인까지 제시하면서 온갖 억측이 난무하게 된 것이다.
▶ 그래도 법무부에서 가석방을 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법에 형기의 1/3 이상을 채우면 가석방 심사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법무부 교정본부의 실무지침에는 가석방 심사대상이 최소 80% 이상의 형기를 채워야 한다는 것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형기의 80% 이상을 채우지 못하면 실질적으로 가석방 심사대상이 되지 못한다"면서 "일반 범죄자의 경우 집행율이 85%가 되어야 가석방 심사대상이 되니까 기업인이라고 해서 이 기준에 미달하는데도 가석방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법무부 관계자는 "특별한 가석방 대상이 있을 경우 암암리에 명단이 내려오지만 주로 사면으로 해결했다"면서 "대통령이 법무부에 넘긴 건 완곡하게 가석방을 하지 않겠다는 걸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황교안 장관이 최근 사석에서 "사회지도층 인사의 죄가 무거울 경우 그간의 가석방이나 사면 관행을 엄격히 해서 법을 원칙대로 적용하겠다는 생각이 바뀐 것은 아니다"라는 언급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황 장관의 이런 언급은 검찰이 수사해서 기소해 법원이 유죄를 확정했는데 사면이나 가석방을 남발하면서 법의 권위와 신뢰가 무너졌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그동안 법이 자의적으로 적용돼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잃었기 때문에 법의 권위를 회복할 때까지 '제한적'으로 엄격한 기조를 유지하려 한다는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 재계의 입장은 어떤가?
SK 최태원 회장 (자료사진)
= 재계의 입장은 반반이다. 대통령이 기업인의 '역차별'을 언급하면서 가석방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밝히지 않았다는 점에 무게를 두려고 한다. 그렇지만 대기업 임원들에게 확인해보니 대통령의 언급이 가석방을 하지 않겠다는 부정적인 의사를 피력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한 대기업의 고위임원은 "가석방을 안 하겠다는 걸로 들렸다"면서 "할 거면 사면을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또 다른 대기업의 임원도 "(가석방이) 부정적으로 느껴지더라" 라고 말했다.
사실 사면이건 가석방이건 대상이 되는 대기업 총수는 SK 최태원 회장이 유일하다. 징역 4년형이 확정됐는데 1월로 형기의 절반을 채웠다.
CJ의 이재현 회장은 신병으로 구속집행정지 중이고 태광 이호진 회장은 병보석으로 병원 입원 중이다. 이재현 회장이나 이호진 회장에 대한 대법원의 최종판결은 3월을 전후해서 열릴 전망이다. 아직 형이 확정되지 않나 사면이나 가석방 심사대상이 아니다. 효성의 조석래 회장은 1심이 진행 중이니까 사면이나 가석방과는 거리가 멀다.
기업 총수의 사면이나 가석방이 가장 절실한 기업은 SK다. SK 한 고위임원은 "대기업 총수가 실형 2년을 산 경우는 전례가 없었다"면서 "사면이건 가석방이건 지난해 9월부터 말만 무성하고 실제로는 아무런 진척이 없어 답답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SK 핵심 관계자는 "그룹의 핵심인 SK이노베이션 계열 전체가 37년 만에 적자를 기록하는 등 그룹 내 위기감이 심각하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총수의 부재는 전략적 결단이 어렵고 글로벌 네트워킹이 가동되지 않아 더 큰 위기감을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 기업인의 사면이나 가석방에 대한 여론은 여전히 싸늘한데?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자료사진)
= 그렇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지난해 10월 정의당 서기호 의원의 의뢰를 받아 설문조사를 한 결과 재벌총수에 대한 가석방이나 사면·복권 선처 관련해서는 '특혜 없는 공정한 법집행이 이뤄져야 하므로 반대한다'고 답한 응답자가 69.2%, '경제 살리기에 도움이 될 수 있으므로 찬성한다'는 의견은 23.0%로 나타났다.
이명박 정부시절 취임 첫해인 2008년 8·15 특별사면 때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 74명이 사면됐다. 또 2009년 12월에는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활동 등을 위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형 확정 4개월 만에 원 포인트로 아주 특별한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그러나 대기업 총수의 대대적인 사면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투자는 증가하지 않았다. 오히려 법인세 감면이라는 특혜를 받아 사내 유보금만 늘렸다.
경제전문가인 새누리당 이혜훈 전 의원은 "대기업들이 투자를 하지 않는 건 총수 부재 때문이 아니라 투자를 해도 이익을 내기 어렵기 때문"이라면서 "이런 상황에서 대기업 총수를 풀어준다고 고마워서 여건이 안 좋은데도 투자를 한다면 그건 배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 총수에 대한 사면이나 가석방이 투자확대나 경제 살리기와는 무관하다는 얘기다.
이 의원은 "경제가 살아나지 못하는 건 내수가 살아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고, 내수가 살아나지 않는 이유는 수출로 벌어들인 돈이 일부 계층에만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양극화를 해소하자는 게 경제민주화였는데 이게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지금 투자보다 중요한 것은 경제법치가 무너지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 사면과 가석방이 어떻게 다른 건가?= 쉽게 얘기하자면 사면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고 가석방은 법무부 장관의 권한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79조에는 ①대통령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사면·감형 또는 복권을 명할 수 있다. ②일반사면을 명하려면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③사면·감형 및 복권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사면은 일반사면과 특별사면이 있는데 일반사면은 국회의 동의를 거쳐야하지만 특별사면은 대통령이 결단하면 된다.
기업인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대부분 사면으로 특혜를 줬다. 사면은 대통령이 결단해야 하므로 정치적인 부담이나 비판 여론에 대한 책임도 대통령이 져야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취임직후 이른바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내세우며 기업인을 대대적으로 사면했지만 그 이후 기업들의 투자가 늘어나거나 확대된 것이 없었다. 또 퇴임을 앞두고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과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 등 측근들을 대거 사면하면서 사면권을 남용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반면 가석방은 헌법이 아닌 형법 제72조와 76조에서 가석방의 요건 및 효과 등을 규정하고 있는데 무기형의 경우는 20년, 유기형은 형기의 3분의 1이 경과된 경우에 가석방이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에는 그렇지만 가석방 제도가 만들어진 뒤 1/3만 복역하고 가석방이 된 사례는 오래전에 딱 한 번 있었다고 한다. 법에는 명시돼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운영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법무부 관계자들은 "실제 가석방은 형기의 80% 이상 대체로 85%를 복역해야 가석방 심사에 들어간다"고 말한다. 교정본부 실무지침이지만 관례로 굳어져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