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교사가 제자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부적절한 말을 해 유죄 판결을 받았다.
학교 교육 현장에서 한 말이 정서 학대로 인정돼 유죄 판결을 받은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어서 앞으로 교육 현장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수원지법 형사9단독 지귀연 판사는 다문화가정 어린이인 제자의 정신 건강을 해치는 말을 한 혐의(아동복지법 위반)로 불구속 기소된 교사 A씨에게 벌금 300만원형을 선고했다고 12일 밝혔다.
수원시의 한 초등학교 6학년 담임이던 A씨는 지난해 5월 캐나다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난 제자 릴리(가명)양이 질문을 자주 해 수업 분위기를 해친다는 이유로 반 어린이 전체가 "릴리 바보"라고 세 번 크게 외치게 했다.
6월에는 점심때 릴리양이 김치를 먹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다른 아이들이 듣는 가운데 "반(半)이 한국인인데 왜 김치를 못 먹나. 이러면 나중에 시어머니가 좋아하겠나."라고 나무랐다.
아울러 A씨는 수업 중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에게 손을 들어보라고 하더니 유독 릴리양을 가리키며 "너는 부모 등골을 150g 빼 먹는 애"라고 말하기도 했다.
릴리양 부모는 뒤늦게 딸로부터 이런 사실을 듣고 A씨를 경찰에 고소했다. 릴리양은 이후 병원에서 적응장애 진단을 받고 수개월 동안 심리 치료를 받았다.
지 판사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이 교육자로서 우리 사회가 포용하고 함께 걸어가야 할 다문화가정 어린이에게 큰 상처와 아픔을 준 사실이 인정된다"고 유죄 판단 이유를 밝혔다.
다만 "피고인이 교육자로서 다문화가정 어린이에 대한 올바른 태도와 조심성을 갖출 적절한 기회를 얻지 못했다고 보이고, 올바른 행동을 다짐하는 점 등을 참작해 행위에 상응하는 벌금형을 선고한다"고 덧붙였다.
애초 교사직을 그만둬야 하는 징역 10월형을 구형한 검찰은 양형 부당을 이유로 항소했다. 벌금형이 확정되면 A씨는 교단에 남을 수 있게 된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언어폭력은 신체 폭력 이상으로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지만 아직 말이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부족하다"며 "이번 판결이 자아 개념이 확실치 않은 어린이에게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리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평가했다.
다만 릴리양 어머니는 연합뉴스와 만나 "선생님으로부터 제대로 된 사과를 못 받았다"며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사과를 할 수 없는 분이라면 교단에 계속 서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재판 결과에 불만을 드러냈다.
A씨는 연합뉴스와 전화통화에서 "당시에는 농담이나 유머 차원에서 한 말이었다고 생각했는데 차근차근 생각해보면 아이들이 그런 말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며 "악의를 갖고 한 말은 아니고 아이에게나 부모님에게나 진정으로 사과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