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10일 오후 청계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침몰사고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무사 귀환을 바라는 촛불집회에 부모와 함께 참석한 한 아이가 아버지의 얼굴을 만지고 있는 모습. (사진=윤창원 기자)
2014년 4월 16일, 대한민국은 웃음을 잃었다. 특히나 자식을 가진 부모들의 마음은 누구보다 무거웠다. 가장 큰 애도반응을 보인 것도 중고등학생 자녀를 가진 4,50대 부모들이었다.
어찌 흥청망청하랴. 술자리는 사라지고, 꽃놀이며 봄나들이도 자취를 감췄다. 어찌 즐기며 웃으랴. 봄을 맞은 체육행사나 지역 축제가 줄줄이 취소됐다. 화사한 봄옷 장만이 왠말인가. 백화점, 상점에도 고객들의 발길이 끊겼다.
전국적인 애도분위기 속에서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굳이 수치로 말하자면 세월호 사고로 지난해 대략 1조 8,000억원의 소비감소 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현대경제연구원 이준협 연구위원은 신용카드 승인액 분석을 통해 "여가 오락과 음식 숙박, 도소매 부문 등에서 대략 5%p의 소비감소 효과가 있었고 이는 전체 민간소비를 1%p 끌어내리는 효과를 가져왔다"고 분석했다.
◇ 백약이 소용없는 내수 살리기… 왜 안 살아날까이후 3분기부터는 민간소비가 전기대비 0.8% 증가했다. 다시 미약하나마 회복세로 돌아섰다. 얼어붙었던 경제활동이 조금씩 재개됐다. 때맞춰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취임해 재정을 풀기 시작했다. 부동산 대출규제도 풀었다.
그러나 조금 회복되는가 했던 민간 소비는 4분기에 다시 빠지기 시작했다. 민간소비 증가율은 0.5%로 둔화됐고, 설비투자도 부진해지면서 내수회복세는 고꾸라졌다. 재정도 풀고 금리도 낮추고 규제도 완화했건만, 소비와 투자, 즉 내수는 왜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가.
지난 1일 온라인설문조사기관인 마이크로밀엠브레인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설문조사는 15~59세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을 통해 목적별 할당표본 추출법으로 진행됐다.
설문조사 결과 일상적 불안감을 경험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77.7%를 차지했다. 세월호 참사 직후 진행된 조사에서 일상적 불안감에 대한 응답비율이 75.8%였다. 오히려 세월호 사고 직후보다 사고 1년 뒤에 불안감이 더 높아진 것이다.
◇ 세월호 1년… 더 높아진 불안감가장 불안감이 높은 분야는 경제상황 악화에 대한 불안감으로 지난해 69.9%가 불안을 느낀다고 대답한 것이 이번에는 79.7%로 치솟았다. 또 국가기관이 나를 보호해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안도 45.9%에서 58%로 급등했다.
최근 3년 동안의 분야별 불안감 수준. 경제상황 악화와 국가기관이 나를 보호해주지 못하는 것, 정치상황 등에서 불안감이 급등했다. (자료=마이크로밀엠브레인, '일상적 불안감과 2015 소비 패턴 관련 인식 평가')
세월호 사고 충격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는 뜻이다. 마이크로밀엠브레인 컨텐츠사업부 송으뜸 대리는 "세월호 직전에 조사한 것보다 불안감이 소폭이지만 더 높게 나타났는데, 높아진 불안감이 소비행태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실제로 설문조사결과에 따르면, 불안감을 느낀다고 응답한 사람의 절반(51.6%)가 소비를 줄일 것이라고 대답한 반면, 불안감을 경험하지 못한다는 사람은 소비를 줄이겠다는 응답이 37.2%에 불과했다.
특히 불안감을 느끼는 소비자의 경우 외식와 각종 여가활동, 여행 등에서 소비를 줄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불안감이 높을 경우 투자활동도 줄이겠다고 응답한 쪽이 더 많았다.
불안감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는 다른 지표에 비해 소비와 투자 등 내수 지표가 특히나 살아나지 못하는 이유를 부분적이나마 설명해주는 것으로 보인다.
금리를 낮추고, 나랏돈을 풀고, 각종 규제도 완화했지만 경제활동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사회 전반에 퍼져있는 불안심리를 낮추고 신뢰를 높이는 작업이 필수적으로 병행될 필요가 있다.
◇ 사회 불안 낮추고 신뢰 높여야 경제도 사는데…동국대 경영학과 여준상 교수는 "세월호의 충격과 이후 경기하강에 대한 불안이 서로 상호작용을 일으키면서 불안감을 더 증폭시키는 악순환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며 "세월호의 여진이 계속되는 만큼 불안감 대신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질적인 부문에서의 정책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