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왕년에 람보슈터였어." 문경은 SK 감독. (자료사진=KBL)
[90년대 문화가 다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응답하라' 시리즈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고, '토토가'는 길거리에 다시 90년대 음악이 흐르게 만들었습니다. 사실 90년대는 스포츠의 중흥기였습니다. 하이틴 잡지에 가수, 배우, 개그맨 등과 함께 스포츠 스타의 인기 순위가 실릴 정도였으니까요. 그렇다면 90년대 스포츠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지금으로부터 25년 전. 90년대 문화가 시작된 1990년 오늘로 돌아가보려 합니다.]
1980년대 후반 대학농구는 중앙대의 전성기였습니다. 허재, 강동희, 김유택의 '허동택 트리오'를 앞세워 전통의 강호인 고려대와 연세대(가나다순)의 기를 눌렀습니다. 고려대와 연세대도 수준급 멤버를 갖췄지만, 당시 중앙대는 너무 강했습니다.
그런 판도가 다시 고려대와 연세대 쪽으로 넘어간 것이 1990년부터인데요. 하지만 그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25년 전 오늘. 그러니까 1990년 4월23일에는 제27회 봄철대학농구연맹전 6강리그 경기에서 연세대가 중앙대전에서 몰수게임 패를 당한 날입니다. 중앙대를 만나기 전까지 5연승을 달리던 연세대는 도대체 왜 몰수게임을 당했을까요.
당시 연세대와 중앙대는 6강리그에서 3승씩 거두고 맞대결을 펼쳤습니다. 우승을 놓고 다투는 사실상의 결승전이나 다름 없었죠.
무엇보다 연세대는 문경은이라는 슈터가 가세해 우승을 노렸습니다. 광신상고를 졸업한 1학년 문경은은 앞선 5경기에서 131점을 몰아넣으며 경기당 평균 30점을 기록 중이었는데요. '제2의 이충희'라는 별명도 따라다녔습니다. 물론 이후 연세대 전성기를 이끌며 '람보슈터'라는 자신 만의 애칭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경기가 시작 1분43초만에 끝났습니다.
연세대 주전 가드 오성식이 1분43초 동안 파울 3개를 지적 받은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오성식은 시작 5초 만에 공과 관계 없는 지역에서 파울을 범했고, 50초에는 슛을 하는 상대 슈터 아래를 가로질러가다 파울이 선언됐습니다. 이어 1분43초에는 상대 슛 과정에서 손목을 쳤다는 이유로 세 번째 파울 휘슬이 울렸습니다.
결국 심판 판정에 단단히 뿔이 난 최희암 감독은 선수들을 데리고 코트를 떠납니다. 판정에 대한 불만이었죠. 연세대의 몰수패. 공식 스코어는 2-3, 연세대의 패배입니다.
연세대 전성기를 이끌었던 최희암 감독. (자료사진=KBL)
최희암 감독은 경기 후 "우리가 기피인물로 신청한 심판이 중앙대전에 투입돼 오성식을 내보내려고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여기에 "다른 심판도 가세해 파울로서 오성식의 플레이를 위축시키려 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중앙대의 앞선 5경기에 나눠 투입된 2명의 심판이 동시 투입됐기에 연세대로서는 더 민감했을 겁니다.
하지만 당시 다른 심판들은 "반칙이 정확했다. 두 번째 파울은 사실 테크니컬 파울을 불어도 되는 상황"이라고 최희암 감독의 주장에 반박했습니다.
몰수패가 나오면서 경기를 보러온 관중들에게 입장료를 환불해주는 소동까지 발생했습니다.
결국 대회는 중앙대의 우승으로 끝났습니다. 대회 4연패(1989년 고려, 연세, 중앙 공동 우승)였는데요. 당시 중앙대는 2m 표필상을 비롯해 조동기, 김승기 등이 활약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