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악범죄가 터질 때면 ‘또 조선족이냐’는 눈총을 받으면서도, 반지하 방에서 코리안드림의 끝자락을 붙잡고 사는 이들이 있다. 우리 안의 또다른 우리인 중국동포다. CBS노컷뉴스는 주민 80%에 달하는 중국동포가 모여 사는 서울 대림2동 르포를 통해 그들의 오늘과 내일을 그려본다.[편집자 주]
중국동포 밀집지역인 서울 대림동 대동초등학교의 수업시간 모습. (대동초등학교 제공)
◇한 반에 대여섯 명 한국어 거의 못해“선생님 말, 팅부동(听不懂, ‘알아듣지 못하다’는 중국말)?”
초등학교 1학년인 오모군은 교사가 중국어로 “못 알아들었어?”라고 묻자 그제야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중국동포인 아버지를 따라 지난달 한국에 들어와 아직 우리말이 서툰 터라 수업 내용도 교사의 전달사항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탓이다.
오군이 다니는 대림2동 대동초등학교 1학년의 경우 한국어를 거의 하지 못하는 학생이 28명 안팎인 한 반에 5~6명이나 된다.
◇몰려든 중국동포 자녀들…'중국 소학교' 닮아가당초 입학이 예정됐던 49명 외에 25명이 올해 초 예비소집 이후에 학교를 다니겠다고 찾아왔는데, 대부분 중국동포의 자녀였다.
반대로 입학하기로 돼 있던 7명은 다른 학교로 빠져나갔다. 자녀가 중국동포와 함께 생활하는 것을 꺼린 한국인 부모들의 선택으로 보인다.
국적을 취득한 이들까지 포함하면 중국동포가 전체 학생의 70~80%에 육박하는 상황.
이처럼 중국의 소학교 모습을 닮아가다 보니, 쉬는 시간 복도 곳곳에선 중국어로 대화를 나누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한국어 학원을 다닌 중국동포 3학년 권모양을 비롯해 한국어와 중국어를 함께 잘 구사할 수 있는 학생들은 통역사 역할을 맡고 있기도 하다.
학생들이 중국어의 높은 성조를 따라 “왜요?”라고 물어도 그것이 대드는 의미가 아니라는 건, 모든 교사가 상식으로 알고 있을 정도다.
중국동포 밀집지역인 서울 대림동 대동초등학교의 모습. (대동초등학교 제공)
◇정규수업 때도, 방과 후에도 한국어 그리고 중국어문제는 여느 학교에선 고민도 아닌 학생들의 우리말 실력.
중국동포 출신이었던 이중언어강사 한 명이 지난해까지만 해도 수업시간마다 학생들 옆에 앉아 수업내용을 통역해왔지만, 학생들의 한국어 실력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고 한다.
'‘고기 잡는 법을 가르친 게 아니라 잡아주기만 했기 때문'이라는 게 학교의 판단이었다.
또 부모가 맞벌이인 경우 중국동포 자녀들은 교육에서 더욱 소외되기도 해 아이들의 언어 능력은 더욱 떨어지기 십상이었다.
이 때문에 대동초는 고심 끝에 이번 달부터 ‘꿈나래반’이라는 다문화 예비교실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 학교를 다닌 지 1년이 지났지만 “서툰 한국어 탓에 중국어를 잘하는 친구들하고만 지낸다”는 3학년 가모양도 이 특별학급에 들어왔다.
가양은 “수업이 어렵지 않으냐”는 질문에 중국어로 “모르는 건 그냥 넘어가지만 늘 긴장된다”고 말했다.
가양을 포함한 특별학급 학생들은 정규 국어 수업은 물론 방과후 수업을 통해 한국어와 중국어를 배운다.
이를 위해 수업연구부장 교사와 이중언어강사는 물론, 중국어에 능통한 한국어 강사까지 힘을 합쳤다.
“자존감을 높이고 다문화에 대한 편견을 없앨 뿐 아니라, 중국어에 능통한 것도 앞으로 큰 능력이 되기 때문”이라는 게 정명숙 이중언어강사의 설명이다.
◇특별학급은 한 반 뿐…배려와 지원 필요하지만 방과후 특별학급은 규정상 학생 수가 15명 이하로 제한되다 보니, 희망자를 모두 받아들일 수 없다는 데에 학교의 고민이 있다.
‘쇄도하는’ 신청자 속에 특별교육이 절실한 학생들이 소외되지 않게 하려다 보니 아예 정규 수업 시간에 특별반을 만들어 수업을 따로 하고 있다.
대동초 인민지 교사는 “중국동포 가정 가운데는 부모들이 맞벌이하는 경우가 많고, 아이들이 방과 후 집에 혼자 있으면 언어를 쓸 일이 적다"면서 "한국어는 물론 중국어도 많이 쓸 수 있도록 하는 특별교육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