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상권을 넘본다는 이유 등으로 한때는 반(反)동반성장의 아이콘이었던 유통 대기업들이 올해들어 '갑자기' 착해졌다. 기부천사라고 불려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의 기부금을 쏟아붓고 있는 배경에는 치열하다 못해 살벌한 두 장의 서울시내 면세점 티켓이 있다.
관세청은 이번 서울시내면세점 입찰에서 '영업이익 대비 기부금 비율'을 평가 기준 중 하나로 내세우고 있다. 쟁쟁한 기업들이다보니 경영능력 면에서는 막상막하이고, 기부금이나 동반성장 부분에서 변별력이 생기지 않겠냐는 판단에 업계가 착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현대백화점은 최근 면세점 운영권을 따낼 경우 영업이익의 20%를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계획을 밝혀 주목받기도 했다.
속셈이 빤히 보이는 상황이라는 것을 기업들도 인정은 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체면이고 뭐고 생각할 겨를이 없다"며 "향후 5년간 성장동력은 물론이고 오너의 자존심까지 걸린 일이니 모든 자원을 동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SK네트웍스는 지난해 1분기와 비교했을 때 올해 1분기 기부금 증감률이 무려 16,800%에 이른다. 호텔신라와 합작법인을 만든 현대산업개발도 16,667%의 만만치 않은 증가세를 보였다. 호텔롯데(475%)와 현대백화점(405.8%)도 증감률이 높다.
신세계와 한화갤러리아의 경우 이 상황이 억울할 법도 하다. 신세계는 올해 1분기 기부금을 지난해 동기대비 8.7%만 늘렸는데, 이미 상당한 규모의 기부를 하고 있었다. 신세계가 지난해 6억 500만원을 기부할 때 SK네트웍스는 600만원을 내는 식이다.
한화갤러리아 역시 2.7%밖에 늘지 않았지만 그동안 영업이익 대비 기부금 비율이 경쟁자들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한화갤러리아의 지난해 영업이익 대비 기부금 비율은 무려 5.54%로 가장 낮은 수준의 호텔롯데(0.64%)나 현대백화점(1.13%), 현대산업개발(1.66%)와 대조적이다.
이랜드리테일의 경우도 기부금 규모 자체는 크지 않지만 영업이익 대비 기부금 비율(3.63%)면에서는 뒤지지 않아왔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기부금 규모만 점수에 반영할 게 아니라 그간의 활동 내역을 검토해 이른바 '진정성'을 따져야 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관세청이 그동안 얼마나 꾸준히 사회적 책임을 다했냐는 것도 고려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소연했다.
하지만 관세청은 그간 활동 등에는 크게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관세청 관계자는 "지난 몇년을 통틀어서 따지지 꾸준함 등을 굳이 보지는 않는다"면서 "속이 보이더라도 지금이라도 기부금을 늘린다면 권장할 일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