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원 감독(사진=준필름 제공)
다음달 2일 개봉하는 영화 '마돈나'(제작 준필름, 마돈나문화산업전문회사)는 약자를 철저히 뭉개는 한국 사회의 맨얼굴을 여실히 드러낸다. 마돈나를 보면서 4·16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마돈나를 연출한 신수원(49) 감독은 "지난해 여름, 촬영 당시 세월호 관련 뉴스를 계속 접하면서 우리끼리도 '세상은 불공평하다'고 자주 이야기했다"고 전했다.
"이미 시나리오가 나와 있었으니 세월호 참사가 영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우리가 스스로를 구원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걸 드러냈다는 점에서 맥이 같다고 봅니다. 지금의 메르스 사태도 그렇고요. 영화 속에 등장하는 시화호 촬영을 위해 참사 뒤 안산을 찾았었죠. '내가 이곳에 와 있구나'라는, 그 공간이 주는 슬픔이 있었어요.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 대부분이 어려운 가정의 아이들입니다. 촬영 내내 서로 많은 이야기를 공유할 수밖에 없었죠."
영화 마돈나는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긴 잔인한 세상에 살면서도 서로를 구원하는 우리의 이야기다. 16일 서울 삼청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난 신 감독은 "구원이라는 주제를 종교적인 뉘앙스로 연결짓는 걸 처음에는 염두에 두지 않았다"고 했다.
"저는 독실한 신앙을 지닌 사람이 아닙니다. 하지만 성모 마리아를 가리키기도 하는 마돈나라는 개념 자체에 이미 종교적인 느낌이 있잖아요. 우리 머릿속에도 아기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의 이미지가 각인돼 있고요. 촬영을 하다보니 자연스레 장면 장면에 그런 느낌이 묻어나더군요. 그걸 굳이 외면하려 하지 않았어요."
그는 영화 감독이 되기에 앞서 10년 가까이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지금도 감독을 하고 있다는 게 생뚱맞다고 여겨진다"는 것이 신 감독의 설명이다.
"교직에 7년 정도 있으니 매너리즘이 오더군요. 안정적이기는 했지만 '이 일을 평생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가 30대 초반이었죠. 휴직을 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서 시나리오를 공부했어요. 전부터 이야기 만드는 데 관심이 많아서 소설을 꾸준히 써 왔는데, 시나리오를 전공한 것도 소설을 쓰기 위해서였죠. 그렇게 사표를 내고 본격적으로 영화를 시작했어요. 우연히 들어선 길을 간 셈이죠. (웃음)"
그를 감독의 길로 들어서게 만든 것은 난생 처음 카메라를 들고 찍은 영화로 맛본 '희열'이었다.
"첫 영화로 10분짜리 코미디를 만들었는데, 발표회에서 사람들이 막 웃는 거예요. 상영 뒤에는 몇 사람이 와서 '재밌다'고 말해 주고요. 그런 반응이 신기했죠. 잘 만들고 못 만들고를 떠나서 어두운 곳에서 제 영화가 상영된다는 데 희열이 있었어요. 그렇게 졸업을 했는데, 계속 영화가 찍고 싶더군요. 그 희열과 쾌감을 잊을 수 없었거든요."
◇ "마돈나는 블랙커피처럼 쓴 영화…애써 외면해 온 이들 돌아봤으면"교사 경험은 신 감독이 내놓는 영화의 든든한 토양이 됐다. 10대를 포함해 다양한 연령대를 만나면서 봐 온 현실의 모습이 그의 영화적 단초가 된 셈이다.
"매일 새로운 삶 속에 놓여지는 기분이었죠. 아침에 아이들을 만나는 순간부터 수많은 일들이 벌어졌으니까요. 당시 세계사, 정치경제, 지리를 담당하면서 수업을 위한 공부도 많이 했어요. 제 가치관이 만들어지는 데, 글을 쓰는 데도 큰 도움이 됐죠. 뒤늦게 영화를 시작해 불리한 점도 많았지만, 교직에 있으면서 다양한 세계를 만난 덕에 저만의 에너지를 같게 된 것 같아요."
영화 마돈나에서 VIP 병동이 주무대로 등장하는 점도 이러한 현실 인식과 무관치 않다. 극중 VIP 병동은 병든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VIP 병동은 정치인들의 도피처로도 활용되잖아요. 상위 2%의 병든 사람들이 사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영화 속 그 공간에는 물욕에 희생된, 무의미하게 생명을 연장하는 할아버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환자를 돌보는 계약직 간호조무사, 병원으로 들어온 무연고자 등의 인물이 추가하면서 이야기를 확장시켰더니 생명에 관한 이야기로 윤곽이 잡히더군요. 생명조차 돈으로 환산되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 말입니다."
신수원 감독(사진=준필름 제공)
그는 마돈나를 통해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이라는 커다란 수확물을 얻었다고 했다. '순환선'(2012), '명왕성'(2013) 등 본인의 전작들을 돌아보면서도 이 점에 대한 새로운 생각들을 쌓아가고 있단다.
"어릴 적에 아버지 사업이 망하면서 가난하게 살았어요. 행복했던 일상이 무너지는 충격적인 체험이었죠. 교직에 있으면서도 어렵게 사는 아이들을 많이 봤는데, 그러한 경험이 자연스레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 관심을 갖게 하고 영화에도 반영되는 것 같아요. 타인의 고통, 결국 인간에 대한 탐구가 제 영화의 화두가 된 거겠죠. 다음 작품도 사람들과 그들이 사는 세상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영화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신 감독의 영화 속에서는 잔인한 세상 속에 어렵게 둥지를 틀고 있는 사회적 약자들의 모습이 자연스레 묻어난다. 물론 여성도 그 약자 가운데 한 명이다.
"사실 저는 복 받은 사람이죠.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