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에 한국인 등의 강제징용이 이뤄진 일본 근대산업시설이 관련 사실을 기록하고 희생자를 기리는 안내센터를 설치하는 등의 조건으로 세계유산에 등재되게 됐다.
5일 외교부에 따르면 유네스코는 이날 오후 독일 본에서 제39차 세계유산위원회를 열어 이 같은 내용으로 일본 메이지시대 산업시설 23개소를 세계유산에 등재하기로 결정했다.
세계유산위원회는 당초 전날 오후 해당 안건을 처리하려 했지만 한일 양국의 견해차가 워낙 커 회의를 하루 연기했고, 양측은 치열한 마라톤 교섭 끝에 합의안을 도출했다.
이런 합의안을 바탕으로 일본 정부는 이날 회의에서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의 권고를 존중한다”며 “각 시설의 전체 역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라는 권고를 충실히 반영할 것”이라는 발표문을 낭독했다.
발표문은 이어 “보다 구체적으로 일본은 1940년대에 일부 시설에서 수많은 한국인과 여타 국민이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동원돼 가혹한 조건하에서 강제로 노역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정부도 징용 정책을 시행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를 취할 준비가 돼있다”고 밝혔다.
이들 일부 시설은 ‘군함도’ 또는 ‘지옥도’로도 불렸던 하시마(端島) 해저탄광과 나가사키(長崎) 조선소 등 7개 시설을 말하며 6만명 가까운 한국인이 강제징용돼 상당수가 희생된 곳이다.
발표문은 또 “일본은 안내센터(information center) 설치 등 피해자들을 기리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해석 전략에 포함시킬 준비가 돼있다”고 덧붙였다.
세계유산위원회는 일본 측 발표문을 토의 요록에 포함시키는 한편, 등재 결정문(Decision)에는 이같은 일본의 발표를 주목한다는 주석을 달았다.
이로써 일본 측 발표문은 한일 양자간 합의 차원을 넘어 세계유산위원회 공식 결정문과 불가분의 일부가 됐다.
세계유산위원회는 또 일본의 후속조치 이행을 위해 2017년 12월까지 산하 실무기구인 세계유산센터에 추후 진행될 경과 보고서(progress report)를 제출하고 2018년 제42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이를 검토하도록 했다.
우리 정부 대표단은 이에 대해 “위원회의 권위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일본 정부가 오늘 이 권위 있는 기구 앞에서 발표한 조치들을 성실하게 이행해 나갈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이 문제에 관한 위원회의 컨센서스 결정에 동참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번 협상 결과에 대해 윤병세 외교부장관은 “우리의 정당한 우려가 충실히 반영되는 형태로 결정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며 성공작으로 평가했다.
한 당국자는 “일제 강점기 한국인 등의 자기 의사에 반해 노역했다는 것을 일본 정부가 사실상 최초로 국제사회 앞에서 공식적으로 언급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외교부는 일본의 발표문에 ‘본인 의사에 반하여 동원’된 사실과 ‘가혹한 조건하에서 강제 노역’ 등의 표현을 관철시킨 것도 적잖은 성과로 보고 있다.
한일 양국은 지난달 말 국교정상화 50주년을 계기 외교장관 회담에서 세계유산 등재 문제에 대해 기본적인 의견 접근을 이뤘고 이후 실무 교섭을 벌여왔다.
막판 난항을 겪긴 했지만 표 대결이라는 최악의 사태를 피하고 대화를 통한 합의 처리를 성사시킴으로써 양국관계 발전의 선순화적 전기가 될 가능성도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