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한국만 10만명. 해외 임직원을 제외한 한국 롯데그룹의 직원 숫자다.
겨우 0.05%. 신격호 총괄회장이 보유하고 있는 한국 롯데그룹의 지분이다.
무려 416개. 신 총괄회장이 소량의 지분으로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한 배경, 순환출자 고리 숫자다.
10만명, 0.05%, 416개 이 세 개의 숫자는 형제간 경영권 분쟁과 맞물려 롯데그룹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과 비중에 비해 얼마나 후진적인 지배구조와 기업문화를 가지고 있는지를 그대로 드러낸다.
신동빈 회장 등 롯데가(家)가 소유한 지분을 모두 끌어모아도 그룹 내 지분율은 2.41%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거미줄식 순환출자 구조를 통해 총수, 단 한 사람에게 권력이 몰려 있기 때문에 '승자독식'이 가능했고, 이 과실을 얻어내기 위해 벌어지는 게 최근 롯데가 분쟁이다.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주(가운데), 차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왼쪽), 장남 신동주 전 일본롯데 부회장 (자료사진)
형제간 진검승부가 벌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장소가 한국이 아닌 일본 롯데홀딩스 주주총회인 것은, 일본 내 롯데 계열사들을 지배하고 있는 일본 롯데홀딩스가 호텔롯데를 통해 한국 롯데 계열사까지 지배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삼성과 현대차 등 문제로 지적돼 왔던 재벌가 순환출자 중에서도 롯데는 단연 압권이다. 고리 숫자가 400여개에 심지어 일본에까지 연결돼 있다는 점 때문에 '지하철 노선도'라는 웃지 못할 평가까지 나온다.
이런 구조에서 가능했던 것이 신격호 총괄회장의 '황제경영', 환갑이 넘는 아들들을 서로 경쟁시켜 왔던 힘이다. 롯데가 분쟁 노출의 서막이었던 지난달 27일 신 총괄회장의 해임지시는 이사회 절차가 아닌 '손가락질'로 이뤄졌다. 신동빈 회장을 비롯한 6명의 이름을 가리키며 해임하라는 지시였는데, '총수의 지시'가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건 롯데그룹 내에서 일반적인 일이었다고 한다.
장남인 신동주 전 부회장이 한국에 머물며 '아버지의 뜻'을 강조하는 과정은 특히 롯데가 그동안 얼마나 전근대적인 의사 결정이 이뤄져 왔는지를 낱낱이 보여줬다. 총수의 서명과 도장이 찍힌 이른바 '해임 지시서'가 상법상 규약이나 이사회 절차를 초월한다는 의미기 때문이다.
경영권 분쟁에 휘말린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이 3일 오후 김포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반격에 나선 차남 신동빈 회장이 '아버지의 뜻' 대신 '상법상 원칙과 절차'를 강조하고 있긴 하지만, 이는 경영권 분쟁에서 이기기 위한 전략의 성격이 짙다. 사태의 근본적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롯데그룹의 지배구조나 폐쇄적 의사결정 방식에 대한 개선 의지는 신 회장에게 아직 보이지 않는다. 그는 3일 김포공항을 입국해 "국민께 죄송하다"면서도 지분 문제 등 민감한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