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공화당 대선후보 토론회의 진정한 승자는 메긴 켈리."
7일(현지시간) 저녁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 첫 TV토론회를 보도한 미국의 일부 인터넷 언론이 뽑은 기사제목이다.
토론 진행자의 한 명이었던 폭스뉴스 간판 여성앵커인 메긴 켈리가 거침없는 막말로 인기를 구가하는 도널드 트럼프를 상대로 자칫 치명적일 수도 있는 '일격'을 가했다는 평가에서다.
켈리는 토론회 초반 트럼프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여성 비하' 발언을 작심하고 끄집어냈다. "사람들이 당신을 좋아하는 이유는 마음에 있는 그대로 말하고 정치적인 여과를 거치지 않기 때문"이라고 치켜세운 켈리는 곧이어 "그러나 거기에는 결점이 있다. 특히 여성 문제에 관한 한 그렇다"고 운을 뗐다.
그러고는 "당신은 트위터 등에서 여성을 뚱뚱한 돼지, 개, 지저분한 것, 그리고 역겨운 동물로 불러왔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당황한 트럼프는 중간에 말을 자르며 "그것은 단지 로지 오도널(동성결혼한 거구의 미국 여성 코미디언)에게 그런 것"이라고 비켜나가려고 했지만, 켈리는 순순히 넘어가지 않았다.
켈리는 "기록을 보면 단순히 오도널만이 아니다"라며 "NBC의 인기 TV쇼인 '견습공'(Apprentices)에서 여성 출연자에게 '무릎을 꿇은 모습을 보면 아름다운 그림이 될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느냐"고 송곳 질문을 이어갔다.
그러면서 "그런 자질을 가진 사람이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보느냐"며 "민주당의 대선후보가 될 가능성이 큰 힐러리 클린턴을 어떻게 공격할 수 있겠느냐"고 거듭 몰아세웠다.
그러자 수세에 내몰린 트럼프는 "이 나라의 가장 정치적 문제점은 바로 정치적 결벽성(潔癖性. political correctness·약자와 소수자 를 상대로 차별적 언행·행위를 극도로 조심하는 태도)"이라고 뜬금없는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불리한 상황임을 직감한 트럼프는 켈리를 향해 "솔직하게 당신이 좋아하지 않는다면 미안하다"며 "당신이 나를 다루는 방식으로 봤을 때 그렇지 않은 것처럼 보여질 수 있지만, 나는 당신에게 친절하게 대해왔다.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일단 비켜갔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일격을 당한 트럼프는 미처 분이 풀리지 않았다. 토론회가 끝나고 나서 잠을 뒤척인 트럼프는 이튿날 새벽 4시를 전후해 트위터에 잇따라 글을 올려 "이번 토론회의 최대 패자는 켈리"라며 "나를 짓밟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폭스 시청자들이 '빔보'(bimbo·섹시한 여자를 칭하는 속칭)에게 낮을 점수를 주면 켈리는 다른 프로그램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도 했다.
트럼프의 '뒤끝'은 토론회를 주관한 폭스뉴스로도 번졌다. 몇 시간 뒤 NBC의 시사프로그램인 '모닝 조'에 출연한 트럼프는 "폭스뉴스의 사회자들, 특히 켈리가 좋지 못했고 프로답지 못했지만, 전반적으로 나는 토론회를 즐겼다"고 비꼬았다.
그러나 켈리의 날카로운 질문 공세가 단지 트럼프에게만 향했던 것은 아니다. 켈리는 모든 형태의 낙태에 반대하는 스콧 워커 위스콘신 주지사에게 "강간이나 근친상간에 의해 임신을 하거나 건강이 위험한 상태에 있는 산모도 그대로 죽어야 하느냐"고 물었다.
또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실수'라고 인정한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에게는 "전쟁에서 희생된 미군 가족들에게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고 추궁했다.
켈리는 현재 폭스뉴스에서 두번째로 인기가 높은 프로그램인 '켈리 파일'의 진행을 맡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평일 저녁의 프라임타임 시간대를 독차지하고 있다.
'존스 데이'라는 국제로펌에서 10년간 기업 소송전문 업무를 맡았던 켈리는 2004년 폭스뉴스에 입사해 수차례에 걸쳐 선거방송을 전담했고 보스턴 마라톤 테러와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건 등 주요 사건을 취재하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러나 2013년 산타클로스와 예수 그리스도가 백인이었다고 주장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