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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국민의 입을 막으면 유령이 외쳐?

    [변상욱의 기자수첩]

    고품격 뉴스, 그러나 거기서 한 걸음 더! CBS <박재홍의 뉴스쇼=""> '변상욱의 기자수첩'에서 사회 현상들의 이면과 서로 얽힌 매듭을 변상욱 대기자가 풀어낸다. [편집자 주]

     

    새정치민주연합이 ‘표현의 자유 특별위원회’를 만들어 현판식을 가졌다. 이곳엔 표현의 자유 피해신고센터도 설치됐다. 피해신고센터는 권력자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명예훼손죄로 수사 받고, 재판받는 억울한 국민을 돕고, 언론사의 정당한 취재가 공권력에 의해 억압받고 언론인이 위축될 때 이를 지원하기 위한 법률 지원을 벌일 예정이다.

    우리나라 표현의 자유 수준은 국력이나 경제수준에 비해 아주 낮다. 프리덤하우스의 평점으로 2011년에 우리나라는 '자유 국가'에서 '부분 자유 국가'로 강등됐고, 2015년 전체 199개국 가운데 67위, OECD 34개국 가운데 30위를 기록하고 있다. 우리 밑으로 열 계단 쯤 내려가면 오랜 내전으로 학살과 테러가 빈번하다는 시에라리온이다.

    권력과 표현의 자유는 어느 곳에서나 이슈를 만들어낸다. 스페인으로 가보자. 지난해 말 스페인에서는 시티즌 시큐리티라는 새로운 법안이 통과됐다. 국회의사당 등 주요 기관 앞에서 정부 허가 없이 집회 시위 등의 집단행위를 못하도록 했다. 정부나 국회가 항의집회를 허락할 리 없으니 아예 금지하겠다는 의미다. 피켓 들고 국회의사당 앞에서 오가면 벌금형이다. 최고 60만 유로.

    그러자 이 법안에 반대하는 시민단체가 등장했다. No Somos Delito, 번역하면‘우린 범죄자가 아니다’라는 뜻. 국민의 정당한 의사표현을 범죄자 취급하지 말라는 항변이다. 그 이후 시민단체들은 모이지 않되 모일 수 있는 집회를 조직해 냈다. 빛을 이용해 허공에 그림을 띄워 그리는 홀로그램 기술을 이용한 방법이다. 집회의 명칭은 Holograms For Freedom, 자유를 위한 홀로그램 시위이다.

    그 과정은 이러하다. 우선 사람들이 모일 온라인 사이트를 만든다. 시위에 참가할 자원자를 모집한다. 참가자는 웹캠을 이용해 시위하며 구호를 외치는 자신의 모습과 목소리를 녹화녹음해 으로써 주최 측에 제공한다. 그걸 모아서 합성한 뒤 국회 앞에 가져가서 프로젝트를 이용해 허공에 띄운다. 2015년 4월 10일 1만 8천명의 시민이 몸은 집에 있지만 자기 모습은 마드리드 국회의사당 앞에서 시위를 벌일 수 있었다. 시위는 1시간 동안 진행됐다.

    영화 ‘반지의 제왕’이나 ‘캐러비안의 해적’같은 영화에 등장하는 유령들의 행진 모습을 떠올리면 쉽게 그림을 그려 볼 수 있다. 스페인 시민들의 이 시위는 33만 명의 시민이 반대서명에 참여하도록 이끌었고 전 세계 4억 명에게 노출되었다.

     

    ◇ 국민의 입을 막으면 유령이 외쳐?

    우리 헌법 21조에 표현의 자유가 보장돼 있다. 이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해석에 따르면 표현의 자유를 보호할 대상은 담화, 연설, 토론, 연극, 방송, 음악, 영화, 가요, 문서, 소설, 시가, 도화, 사진, 조각, 서화 등 모든 형상의 의사 표현 또는 의사 표현의 매개체를 포함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표현의 자유가 명예훼손을 이유로 제한당하는 가장 대표적인 국가이다.

    특히 대통령 비판을 명예훼손이라는 사유를 붙여 단속한다. 대통령에 대해 명예를 훼손했다고 처벌하는 게 지구촌에서 흔히 벌어지는 일 같지만 그렇지 않다. 유럽에서는 1997년에 유럽안보협력기구(OSCE)가 명예 훼손의 비형사 범죄화 캠페인을 시작했다. 그 결과 유럽의 열다섯 개 나라에서 형법상 명예 훼손 죄가 삭제됐다. 국가주의가 강한 러시아조차도 2011년 형법상 명예 훼손 죄를 삭제했다. 그 뒤 푸틴 대통령이 부활시켰지만 그래도 징역형은 아니고 벌금과 노역형에 그친다. 우리나라는 명예훼손을 가장 폭넓게 적용해 처벌하는 나라이다. 진실적시 및 허위사실 명예훼손죄, 모욕죄, 후보자 비방죄, 낙선목적 허위사실 공표죄 등 ... 가장 가혹하고 다양한 형벌 조항을 갖고 있다. 형량도 최대 7년 징역형을 규정하고 있고 당연히 형사처벌을 가장 많이 하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정치권력이 명예훼손죄를 악용해 반대세력이나 국민저항을 제압하며 표현의 자유를 옥죄는 것이 오늘 우리 민주주의가 처한 현실이다. 특히 선거 때는 더 활발한 정치토론과 비판 비평이 오가야 하는데 선거 때는 더 엄격하게 규제당하는 것도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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