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 등 전체주의 국가만 역사교과서 국정화.
- 러시아 푸틴도 시도. 정치적 독재와 연결 돼.
- 독재와 친일, 역사학에서 잘 건드리지 못하다가.
- 87년 이후 민주적, 다양성 추구하는 연구 이뤄져.
- '자학사관', 日 극우세력의 표현. 모독적.
(사진=자료사진)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00~20:00)
■ 방송일 : 2015년 9월 16일 (수) 오후 7시 5분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
◇ 정관용>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 계속되고 있습니다. 여권에서 국정화 필요성이 계속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죠. 하지만 학계를 위주로 시민사회의 반발도 큽니다. 서울대학교 교수들, 부산대, 덕성여대에 이어서 고려대학교 인문계 교수들도 국정화 반대성명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특별히 모셨습니다. 국사편찬위원장을 지내신 바 있는 원로역사학자이시죠? 숙명여대 이만열 명예교수님을 오늘 스튜디오에 초대했습니다. 교수님 어서 오십시오.
◆ 이만열> 안녕하십니까?
◇ 정관용> 진짜 국정화 할까요, 정부가?
◆ 이만열> 잘 모르겠습니다만 현명하다면 하지 않을 거고 어리석다면 억지로 시행할지 모르죠.
◇ 정관용> 우리 교과서 국사 부분은 원래 처음부터 검인정으로 시작했었죠?
◆ 이만열> 흔히 여당 쪽에서 얘기하는 것이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다. 또는 분단 하에서는 통일된 어떤 이념이 필요하다, 이런 걸 가지고 국정화, 단일화 이걸 주장하는데. 해방 이후 줄곧 우리는 검인정 체제를 유지해 왔습니다. 이승만 정권 하에 그 혼란했던 시기에도 역시 검인정 체제였습니다.
◇ 정관용> 그렇다면 국정이 된 게 유신 때인가요?
◆ 이만열> 네, 그렇습니다. 1972년 유신을 단행하고 그다음에 74년에 중고등학교 교과서를 역사교과서를 국정화 그렇게 했습니다.
◇ 정관용> 이러다가 다시 검인정으로 돌아온 게 언제였죠?
◆ 이만열> 그건 굉장히 늦습니다. 한번 체제가 굳어지면 굉장히 늦는데. 완전히 끝난 것은 2010년입니다. 그리고 그전에 반성들이 많이 있고 또 하나는 국사교과서의 범위가 너무 넓다 해서 차례대로 강의를 하다 보니까 근현대사에 와서 중단을 해버린단 말이죠? 그래서 2001년부터 근현대사를 따로 독립을 시키자. 그러면서 이걸 선택으로 하자 그랬습니다. 선택으로 하면서 선택이니까 이건 검인정 교과서로 하자. 2001년부터 근현대사에 대한 검인정 교과서가 나오기 시작했는데 그전에 계속되던 국사 필수과목으로서의 국사교과서는 2010년에 와서 종료가 됐습니다.
◇ 정관용> 2010년에 검인정 체제로?
◆ 이만열> 네. 그렇습니다.
◇ 정관용> 87년 민주화운동 이후에도 상당 기간 그러면 국정으로 남아 있었던 셈이군요?
◆ 이만열> 네. 그건 학계에서는 끈질기게 요구를 했는데 정치권에서 결단을 못한 거죠.
◇ 정관용> 우리 이만열 교수님께서 국사편찬위원장을 지내신 게.
◆ 이만열> 2003년부터 2006년입니다.
◇ 정관용> 그 시절에는 그러면 아까 소개 말씀에 의하면 선택과목인 근현대사 부분만 검인정 체제가 됐던 그 시기였군요.
◆ 이만열> 네.
◇ 정관용> 그때 그러면 필수과목인 국사에 대해서도 검인정으로 바꿔야 한다, 이런 의견들을 국사편찬위원회에도 내긴 냈었습니까?
◆ 이만열> 저는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으로 취임하면서 기자들이 몇 번 왔습니다. 그래서 그때 얘기 가운데 하나가 국사과목을 검인정으로 만들어야 한다 하는 것을 제일선으로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 정관용> 아, 그리고 그런 게 결실을 보게 된 게 지금 뒤늦게 2010년이다.
◆ 이만열> 네. 그것도 더 일찍 될 수 있었는데 이 교과서 발행체제를 계속 교과서 발행체제가 아니라 국사과목을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문제가 왔다 갔다 했습니다. 노무현 정권이 끝날 때쯤 해서 국사과목을 국사라는 말 대신에 역사라는 것으로 하고 세계사를 포함시켜서 세 시간으로 하자. 세 단위. 이렇게 하면 우리가 평소에 얘기하던 국사가 너무 폐쇄적이다 하는 것도 일단 극복하면서 그리고 그때 되면 국사도 검인정 체제로 한다, 이렇게 되었는데 이명박 정권 들어서면서 그걸 다 흐지부지하고 아주 이상하게 만들어버렸습니다. 그러는 바람에 더 늦어져서 2010년에 끝나게 되었습니다.
◇ 정관용> 그러면 완전히 검인정이 된 것도 불과 한 5, 6년밖에 안 된 거네요?
◆ 이만열> 그렇습니다.
◇ 정관용> 그런데 다시 또 되돌리려고 하는 시도가 지금 시작되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 이만열> 네.
◇ 정관용> 이 인터뷰를 할 때마다 제가 외국의 예를 들어서. 일단은 청취자 분들께 전반적인 개황을 소개해드리는데. 국사 역사교과서를 국정을 하는 나라는 북한하고 몇 몇 나라밖에 없다면서요?
◆ 이만열> 네, 그렇습니다. 북한, 방글라데시라든지 몇 몇 전체주의 국가라고 할까요? 그렇습니다. 중국도 이미 검인정화 되었고.
◇ 정관용> 중국도.
◆ 이만열> 네. 러시아도 검인정화 되었는데 요즘 푸틴이 들어서면서 다시 국정화시키려고 그런 시도를 한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 정관용> 러시아도 검인정으로 됐는데 푸틴이 국정화하려고 한다.
◆ 이만열> 네.
◇ 정관용> 푸틴은 지금 ‘21세기의 짜르’라고 불리워질 정도로 러시아에 일종의 독재 정치적 요소 아니겠습니까?
◆ 이만열> 그렇습니다.
◇ 정관용> 그럼 결국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라고 하는 것은 정치적 독재와 연결된다고 봐야 됩니까, 어떻게 봐야 합니까?
◆ 이만열> 독재라는 그런 말보다는 오히려 전체주의적인 것을 강조하는 획일성을 강조하는 그런 나라에서 국정화를 시도하려고 하고 또 그게 굉장히 편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 정관용> 북한의 경우가 대표적인 경우군요.
◆ 이만열> 네.
◇ 정관용> 이렇게 외국 사례를 보나 우리의 역사를 보나 말씀하신 것처럼 해방 직후에 그 혼란기에도 검인정이었다. 외국은 북한과 몇 나라 빼고서는 국정이 없다. 이 정도 하면 이제 우리도 글로벌 스탠다드이기 때문에. ‘국정? 이건 아니지’ 이런 일종의 상식적 수준이 생기지 않습니까?
◆ 이만열> 그렇습니다.
◇ 정관용> 그런데도 이걸 하려고 한다? 왜 이렇다고 생각하세요?
◆ 이만열>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죠. 이유가 있는데 지난 번 대통령이 학생들 조사에서 6.25가 어떻게 일어났냐? 북침이다 하는 식이 60%가 넘는다더라. 참 충격을 받은 모양이에요. 그런데 그건 질문지가 잘못돼서 그렇게 된 것 입니다. 지금 남침, 북침 할 적에 북침이라고 그러면 북이 침략했다는 것으로 학생들은 생각을 합니다.
◇ 정관용> 아.
◆ 이만열> 그래서 그렇게 한 것 같습니다.
◇ 정관용> 아, 단어의 오독이다?
◆ 이만열> 그렇죠. 어른들도 흔히 북침이냐 남침이냐 할 때 남침 하면 남쪽에서 침략한 거고 북침은 북쪽에서 침략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 정관용> 그럴 수 있겠네요.
◆ 이만열> 그러니까 오독에서 오는 것인데 그걸, 모르겠습니다. 저는 언론에서 본 건데 박 대통령이 잘못 판단한 것이다 하는 얘기를 했습니다. 거기에서 자극을 받았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그것은 뭐냐면 이 국사교육이 형편없다. 그리고 요새 검인정 체제 하에서 이런 것이 나온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더 깊은 이유는 저는 다른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 정관용> 다른 데 어디요?
◆ 이만열> 지금까지 한국 역사학의 지형이라고 하는 것이 사실 1987년 이후에 상당히 자유화되고 그다음 민주적이고 다양성을 추구하는 그런 역사연구가 이루어졌습니다. 그전에는 어땠느냐. 그전에는 독재체제를 참 아직까지도 우리가 비판을 제대로 못하고 특히 친일문제는 잘 역사학에서 건드리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지금 뉴라이트의 모 교수 같은 분이 60년대에 3.1운동에 관해서 쓰면서 3.1운동 지도자 가운데 뒷날 친일자가 됐다 하는 걸 써서 이 사람이 며칠 동안 갇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말서 쓰고 나왔어요. 그 말은 뭐냐 하면 친일문제에 대해서 역사학이 제대로 건드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 정관용> 지적하면 시말서 써야 되고.
◆ 이만열> 네, 독재문제도 마찬가지고 부패문제도 그렇고. 그러나 80년대, 87년에 6월 항쟁 전후해서 국사학계에서도 젊은 사람들이 감옥 갈 각오하고 이제 역사학의 자유라 할까? 이걸 아주 추구했습니다. 그러면서 과거의 친일문제 금기시, 타파를 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독재문제라든지 이런 데 대해서도 비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것이 축적이 되어서 2001년 근현대사 교과서가 나올 때 검인정화 되면서 거기에서 상당히 비판적인 역사연구가 나오게 되고 축적이 돼서 하나의 보편적인 이론으로 그렇게 나오게 된 것이죠. 그런데 지금 국정으로 돌리려고 하는 세력 가운데는 오히려 친일, 그다음에 반독재세력, 친일, 독재세력 이걸 옹호하는 세력들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근현대사의 주체를 독립운동이나 민주화운동 또 평화통일운동, 여기를 향해서 나가려고 하는 게 오늘날 검인정체제에서 말하는 근현대사 내용이라고 한다면 그걸 되돌리겠다. 오히려 해 친일을 옹호하고 독재 부패를 옹호하고 그리고 반통일세력에 대해서 면죄부를 주겠다. 이런 음모가 저는 있다고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 정관용> 사관의 싸움입니까?
◆ 이만열> 사관의 싸움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 정관용> 일각에서는 지금 이 교수님께서 자세하게 소개해 주신 87년 이후의 역사학계의 변화 있지 않습니까?
◆ 이만열> 네.
◇ 정관용> 그걸 국정화를 주장하거나 지난번 교학사 교과서 만들거나 그쪽을 지지하는 분들의 표현에 의하면 이른바 386운동권들이 역사학계를 대거 장악해서 좌파적 사관으로 우리 역사를 왜곡시켰다, 이렇게 부르거든요. 그쪽에서는.
◆ 이만열> 그런데 좌파적이라고 하는 것이 분명한 얘기도 아닙니다. 비판적이고 그 다음에 좀 진보적으로 보는 이런 역사관이라 할까. 이런 것을 좌파적이라 한다면 저는 수용하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좌파라 하면 이 붉은 것하고 통해버립니다.
◇ 정관용> 그렇죠.
◆ 이만열> 전혀 붉은 것하고는 관계가 없다. 이건 분명하게 우리가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시야를 넓히면서 오히려 옛날 같으면 김일성에 대해서 언급을 못 했습니다. 그러나 시야가 넓어지고 이렇게 되면서 과거의 사료들을 들춰보니까 이런 것이 나온다. 그러면 그것도 우리 역사 속에 수용하자는 겁니다. 그건 북한 사학이 우리 임시정부나 3.1운동이나 그다음에 김일성의 무장항일투쟁 이외에 다른 건 인정하지 않는 것 거기에 대해서는 굉장히 포괄적이고 진보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우리 역사학을 포용적으로 함으로써 더 풍부하게 만든 것인데 이것을 좌파로 매도한다면 그 좌파의 뜻이 뭐냐? 이건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 정관용> 그래도 조금 전 이 교수님 말씀하신 친일이냐, 독립이냐. 독재냐, 민주냐. 반통일이냐, 통일이냐. 이거는 좌우하고는 관계없는 것 아닙니까?
◆ 이만열> 관계없는 것 같은데 그게 사실은 굉장히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 헌법에, 그러니까 지금 검인정 교과서를 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뭐냐 하면 우리는 헌법전문에 나타난, 그러니까 3.1운동을 통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통을 우리는 계승한다. 법통을 계승한다는 것. 헌법 전문에 나옵니다. 제헌헌법에도 그렇고 현행헌법에도 그렇습니다. 두번째로는 4.19 민주정신을 계승한다 하는 것을 우리 헌법전문에 분명히 했습니다.
◇ 정관용> 맞습니다.
◆ 이만열> 그런 정신을 가지고 조국의 평화통일을 지향한다. 그게 헌법전문에 나오는 겁니다.
◇ 정관용> 맞습니다.
◆ 이만열> 그러니까 검인정 교과서에서 그걸 그런 토대 위에서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못마땅하다는 거죠. 그렇게 하자니까 자연히 해방 이후에 친일세력에 의해서 좌우된 대한민국, 여기에 대해서는 비판할 부분은 일정하게 비판하고 넘어가자는 거죠.
◇ 정관용> 그 비판이 싫다 이거군요.
◆ 이만열> 그렇죠. 비판을 두고 대한민국을 부정한다는 식으로 얘기를 하니까 이건 역사학의 A, B, C도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누가 대한민국을 부정했느냐. 진보적인 사학자들이나 또는 검인정 교과서에서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게 아닙니다. 대한민국을 더 사랑하기 때문에 이런 건 좀 고치고 나가자 하는 거죠. 이런 반성할 점도 있다는 것인데 그걸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한다 하는 식으로 말한다면 그것은 독재세력이나 친일세력이나 반통일세력을 옹호하는 것밖에는 되지 않는다고 우리가 얘기할 수 있는 것이죠.
◇ 정관용> 그리고 헌법에 명기된 그 글자 그대로를 해석한다면 그 세력이야말로 반헌법적이네요.
◆ 이만열> 그럼요.
◇ 정관용> 그런데 상대적으로 학자의 시각에 따라서, 사관에 따라서 친일잔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그리고 독재를 일부 행한 그런 부분에 대한 비판을 한 5:5 정도가 아니라 20%만 합시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 않습니까? 반대로 비판을 80% 합시다 하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그 각자의 목소리대로 교과서가 나올 수 있어야 한다가 검인정이죠?
◆ 이만열> 그렇죠. 그러니까 지금까지 우리는 획일성을 부정한다고 했을 때 그 획일성이 저는 100% 진보적인 사관을 받아들인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그리고 80%나 50%도 저는 받아들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나온 앞으로 검정교과서에 대한 어떤 시안이라고 할까, 가이드라인 거기에 나온 걸 보면 독립운동관계를 축소합니다. 근현대사를 또 축소하겠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세계 역사에서 역사교육에서 근현대사를 될 수 있으면 많이 가르치려고 하는 그런 추세와도 다르고 그리고 우리는 독립운동사를 더 많이 가르치고 그 정신을 이어받아야 되는데 오히려 그걸 곧장 축소하겠다 한다면 그 저의가 결국 국정화에도 그대로 적용될 것 아니냐? 이런 우려를 하고 있는 거죠.
◇ 정관용>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그 교학사 교과서 파동 났을 때 그걸 좀 우리가 폭넓게, 너그럽게 수용했으면 국정화 얘기까지는 안 나올 수도 있었던 것 아닐까요?
◆ 이만열> 아닙니다. 저는 교과서라고 하는 것이 어떤 개인의 의견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바로 그 시대 역사학, 역사학이 갖고 있는 어떤 보편적 합의점이 있습니다. 그 위에서 이루어져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서 어떤 건 조금 더 강조하고 어떤 건 덜 강조하고 이런 게 나오겠죠. 그러나 교학사의 경우는 근본적으로 나오는 것이 일제의 식민지 근대화론, 여기에 입각해서 이루어진 겁니다. 식민지 근대화론이 뭐냐? 일제시대에 근대화가 되어서 그다음에 이승만, 박정희 때 이렇게 대한민국이 발전하게 되었다 하는 겁니다. 그러나 우리의 헌법정신에 입각해 본다면 대한민국은 일제와의 강인한 투쟁을 통해서, 그 폭력적인 정책에 대해서 투쟁을 통해서 우리가 저항하는 가운데에서 1919년 대한민국이 건국이 되고 그다음에 그때 국내에는 전체적으로 일제의 지배하에 있으니까 거기에 대해서 정부를 제대로 세울 수 없으니까 해외에 정부를 두고 그리고 48년에 가서 정식 정부를 세운 것이다. 그러니까 이게 대한민국의 기원을 일제식민지 근대화에 두느냐 아니면 독립운동사에 두느냐 하는 이런 참...
◇ 정관용> 기본 전제에서부터의 공유할 수 없는 그런 출발이었다?
◆ 이만열> 네.
◇ 정관용> 오늘 교수님의 말씀을 쭉 다 들어보면 우리 교과서의 해방 이후부터의 변천사도 그렇고 해외사례도 그렇고 지금 국정화를 주장하시는 분들의 그 논리 속에 들어 있는 반통일적인 또 친일옹호적인, 반민주적인 이런 것도 그렇고 공론 상에서 토론이 붙으면 아무래도 이쪽이 열쇠일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정부가 이걸 하겠다고 하면 결국 더 큰 비판에 직면할 것 같거든요.
◆ 이만열> 비판과 그다음에 갈등 속에 들어가는 거죠.
◇ 정관용> 그런 비판과 갈등이 뻔히 예견될 것 아닙니까, 정부는?
◆ 이만열> 그리고 김무성 대표가 가끔 무슨 자학사관이다 하는 얘기를 하는데 참 듣기에 안 좋습니다. 왜 그러냐? 1995년 무라야마, 그러니까 사회당 당수가.
◇ 정관용> 총리를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