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에서 30대 여성을 납치해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일곤이 19일 오후 서울 성동경찰서에서 영장실질심사가 열리는 서울 동부지방법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트렁크 살인' 사건 피의자 김일곤(48·구속)이 자기중심적 사고에 집착하는 '사이코패스'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경찰 조사과정에서 거친 행동을 하며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도 22범의 전과를 통해 수많은 수사를 받으면서 쌓인 경험을 토대로 자신에게 유리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시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 자기중심적 사고…사이코패스의 전형22일 경찰에 따르면, 김 씨는 지난 5월 K 씨와 오토바이 접촉사고 문제로 벌금형을 선고받자 살해할 계획을 세웠다.
K 씨를 유인할 '미끼'로 A(35·여) 씨를 납치했으나, 도주를 시도하고 모욕적인 말을 했다는 이유로 목졸라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내 1호' 프로파일러인 서울디지털대학교 배상훈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김 씨가 K 씨에게 집착하는 이유에 대해, 사이코패스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배 교수는 "사이코패스는 자신이 무시당했고 생각하는 순간 통제할 수 없는 분노가 일어난다"며 "자기애가 강한 반면 자존감은 낮기 때문에 작은 욕도 자신에 대한 무시라고 받아들인다"고 강조했다.
경기대학교 이수정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납치당한 상황에서 어떤 여자가 순순히 시키는 대로만 할 수 있겠나, 그런 추정을 못했다는 게 김일곤의 특징"이라며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가 없고, 이해심도 없으며, 자기중심적 사고를 하는 반사회적 인격장애나 사이코패스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김 씨를 수사한 서울지방경찰청 관계자는 "피해자에 대한 미안한 감정이 없는 유형"이라며 "검찰 조사에서는 정신감정까지 해봐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 경찰과 주도권 싸움김 씨는 검거된 이후 계속 극도의 흥분상태로 있고, 횡설수설하는 경향을 보여 경찰이 조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조금만 낯선 경찰관이 수사를 진행하려고 하면 컵에 든 물을 뿌리기도 해, 투입된 프로파일러는 별도의 장소에서 촬영된 영상을 보고 김 씨에 대한 심리를 분석하고 있다.
특히 기자들에겐 "난 잘못한 게 없다"거나 "나도 살아야 한다"며 범행을 부인하는 모습도 보였다.
배상훈 교수는 "김 씨가 전과 22범이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자신에게 유리한지 알고서 하는 행동"이라며 "속으론 냉철하고 차분하면서 겉으로 흥분한 척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경찰과 주도권 싸움을 벌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수정 교수도 "김 씨는 '범죄의 달인'"이라며 "범죄와 관련된 지식이 다른 사람보다 월등할 수 있어 그에 따른 행동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 또 다른 범죄 가능성김일곤은 지난 9일 아산 한 대형마트에서 A 씨 납치·살해 후 서울과 강원, 부산, 울산 등 전국을 돌아다닌 것으로 조사됐다. 범행에 앞서 지난달 24일 일산 동구 한 대형마트에서도 30대 여성을 납치하려다 미수에 그친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김 씨는 검거될 때 몸에서 발견된 메모, 이른바 '살생부' 속에 앞서 자신을 수사했던 경찰관과 판사, 의사 등 이름을 적었다.
그 가운데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 앞서 기자들에게 "나는 피해자인데 가해자가 됐다. K 씨를 죽여야 한다"며 K 씨에 대한 직접적인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