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뉴스의 '뒤끝작렬'은 CBS 기자들의 취재 뒷 얘기를 가감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전방위적 사회감시와 성역없는 취재보도라는 '노컷뉴스'의 이름에 걸맞은 기사입니다. 때로는 방송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따스한 감동이 '작렬'하는 기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편집자 주]
(사진=SBS 제공)
팩션 사극을 표방한 SBS 새 월화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 사대부의 나라로 세워진 조선을 왕의 나라로 퇴보시킨 태조 이방원에 대한 미화 조짐이 엿보인다.
지난 5일 밤 첫 방송된 육룡이 나르샤는 전국 12.3%, 수도권 13.5%의 시청률(AGB 닐슨 미디어리서치 조사 결과)로 동시간대 1위를 기록하며 순조로운 출발을 알렸다.
1회에서는 극중 여섯 용 가운데 첫 번째인 이성계(천호진)가 어명을 받고 개경을 찾는 과정이 그려졌다. 이성계의 개경 입성을 두고 고려 말 권문세족 이인겸(최종원) 무리는 긴장했고, 그들과 뜻을 달리하던 정몽주(김의성) 등은 환영했다.
하지만 이성계의 행적을 담는 시점이 그의 아들인 어린 이방원(남다름)의 것이라는 점에서, 극은 이방원을 중심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었다. 이날 방송의 주인공이 사실상 이방원이었던 까닭이다.
아버지 이성계 덕에 개경 길에 오른 방원은 시체가 썩어 뒹구는 고려의 현실에 충격을 받았다. 더욱이 거지떼의 습격으로 빈털터리가 된 뒤 또래인 땅새, 분이와 함께 이인겸의 집에 들어갔다가 악행을 저지르며 호위호식하는 그를 보고 분노를 느낀다.
육룡이 나르샤 1회는 성인이 된 이방원(유아인)과 정도전(김명민), 그리고 가상의 인물인 이방지(변요한)의 만남으로 강렬한 첫인상을 남기려 했다. 이는 이 이야기가 여러 영화·드마라를 통해 익히 알려진 대로 이방원과 정도전의 대립구도로 갈 수밖에 없다는 점을 대변하는 듯하다.
아무리 팩션이라도 역사적 사실을 뒤틀 수는 없는 법이다. 시청자들은 태조 이방원과 삼봉 정도전의 끝을 아는 상황이다. 결론이 이미 드러나 있다는 점에서 이 드라마의 힘은 결국 그 결론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그리느냐에 달린 셈이다.
고증을 문제 삼으려는 것이 아니다. 1회에서 이방원 일행이 고려의 수도인 개성에 막 도착했을 때 길거리 풍물패가 들려 주던 장구, 꽹과리 가락이 호남의 것이라는 식으로, 하나하나 트집을 잡으려면 끝도 없다. 이 드라마는 역사적 사실·인물에 상상력을 덧붙인 창작물, 즉 팩션이라는 점을 내세워 이러한 고증의 영역에서 한결 자유로워진 모습이다.
하지만 비판적인 역사의식까지 변질시키지 않을까 우려되는 대목은, 이 드라마가 그려내는 명확한 선악 구도 안에서 선의 영역에 이방원이 속해 있다는 점이다.
극중 권력을 틀어쥔 가상의 인물 이인겸은 누가 보더라도 실존 인물인 이인임을 모델로 한 캐릭터다. 이인임의 이름 끝자만 바꿔 가상의 인물로 만들어냄으로써 그를 절대 악인으로 수월하게 재탄생 시킨 셈이다.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스틸컷(사진=SBS 제공)
1회의 줄거리는 고려 말을 휘감고 있는 사회 부조리에 눈 뜨는 이방원의 여정으로 요약된다. 이는 방원이 아버지를 도와 조선을 건국하는 데 앞장서게 되는 당위성을 설명하기 위한 수로 읽힌다.
문제는 이 경우 실존인물인 태조 이방원에게 영웅적 서사가 덧씌워질 가능성이 짙다는 점이다. 역사적 평가에서 논란이 있는 인물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제3자의 눈이 아니라, 이해 당사자인 이방원 본인의 시점으로 들여다보려는 시도는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이다.
더욱이 방원 역을 맡은 배우가 최근 확고한 입지를 굳힌 유아인이라는 점에서, 문제적 인물인 태조 이방원에 대한 미화는 이미 결정돼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제작진이 이러한 논란으로부터 자유로우려 했다면, 앞의 이인겸의 사례처럼 이방원의 이름 역시 이방금 등으로 바꿨어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