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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칼럼] 생이별 65년… 재회 12시간

    제20회차 이산가족상봉행사 1회차 상봉 첫날인 20일 오후 강원도 고성군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남쪽 김복락 할아버지가 북쪽 누나 김전순을 만나고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이별의 아픔보다 더한 것이 있을까. 장성한 아들을 군에 보내며 이별하는 부모의 마음부터 결혼과 함께 아들과 딸을 분가시켜야 하는 이별, 늙고 병들어 죽음으로 다가오는 영원한 이별… 이별 가운데서도 예견된 이별이 아닌 '생이별'은 말해 무엇 하랴.

    생이별은 잔혹하다. 대부분 전쟁과 연루되어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은 생이별의 정점이었다. 고향과 조국을 등지고 미국과 영국, 먼 타국에서 이민자로 살아가야 했던 이별의 상처를 저마다 품고 살았다. 동·서 둘로 나뉜 분단 독일인들의 생이별도 있다. 독일 작가 w 제발트의 소설 <이민자>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이별의 회환으로 평생을 고독과 싸우다가 소리 없이 죽어간다. 그러나 유럽의 생이별은 통일 독일 이후 자유로운 재회를 통해 외형적으로는 치유된 상황이다. (만남이 자유로워졌다 해서 내면의 상흔까지 어찌 치유되겠는가마는.)

    생이별의 가슴앓이로 눈물 마를 날 없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나라가 아직 있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 대한민국이다. 생이별한 지 65년이다. 멀고 아득한 세월이라 이별한 대상의 얼굴도 기억할 수 없다. 장롱 안에 간직해둔 빛바랜 흑백사진 한 장뿐이다. 사진은 65년 전 청춘의 얼굴을 담고 있을 뿐, 흘러온 세월의 풍상은 없다. 모질고 잔인한 시간이다.

    새색시와 새신랑이 신방을 차린 지 1년도 안 돼 전쟁이 터졌다. 단란하게 신혼을 즐기던 신랑은 1950년 어느 가을날 인민군에 끌려 북으로 갔다. 새색시 뱃속에는 이미 아들이 자라고 있었다. 새색시는 "금방 돌아오겠지" 하고 기다렸는데, 영영 이별하고 말았다. 전쟁이 끝났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남과 북이 갈라진 것이다.

    제20회차 이산가족상봉행사 1회차 상봉 첫날인 20일 오후 강원도 고성군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남측 배우자 이순규와 아들 오장균이 북측 남편이자 아버지인 오인세를 만나고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1950년 가을. 19살 나이에 북으로 끌려간 신랑은 84살, 20살이던 새색시는 85살이 됐다. 유복자로 태어난 아들은 어느덧 65살의 노인이 됐다. 복숭아 같던 새색시 볼은 쪼글쪼글한 주름으로 덮이고, 이가 빠져 입이 움푹 들어갔다. 새색시는 19살 신랑 얼굴이 가물가물할 뿐, 늙은 모습은 도무지 상상할 수가 없다. 오늘(20일)과 내일 생이별한 새신랑과 새색시가 재회한다. 유복자로 태어난 아들도 아버지를 만난다. 심정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새색시는 말했다. "그 양반이 살아 있어 줘서 고맙지" 그런데 늙은 남편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을지 걱정이란다.

    푸른 산에 올라 아버님 계신 곳을 바라보니/ 아버님 말씀이 들리는 듯/ 오! 내 아들아/ 밤낮으로 쉴 새도 없었지/ 부디 몸조심하여 머물지 말고 돌아오너라.

    잎이 다 진 산에 올라 어머님 계신 곳을 바라보니/ 어머님 말씀이 들리는 듯/ 오! 우리 막내야/ 밤낮으로 잠도 못자겠지/ 부디 몸조심하여 이 어미 저버리지 말고 돌아오너라.

    산등성이 올라 형님 계신 곳을 바라보니/ 형님 말씀이 들리는 듯/ 오! 내 동생아/ 부디 몸조심하여 죽지 말고 살아서 돌아오너라.

    전쟁터에 끌려간 젊은이가 가족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은, 시경詩經에 수록된 시 <산에 올라="">도 읽는 이들의 심금을 울린다. 하물며 65년을 떨어져 살아야 했던 대한민국 이산가족에 비길 수 있을까. 전쟁이 끝났어도 돌아오지 않는 새신랑을, 아버지를 기다려야 했던 새색시와 아들의 마음은 오죽했겠는가.

    이산가족들의 생이별, 그로 인한 가슴앓이와 고독, 그리움의 한(限)은 우리 세대가 풀어드려야 할 과제다. 생이별 65년 끝에 만나, 고작 12시간을 마주해야 하는 심정은 또 어떠할까. 이념과 전쟁 그리고 국가라는 거창한 상위 개념에 매몰돼 생이별로 살아야 했던 65년은, 개인들에게는 그리움과 기다림으로 너무 잔인한 시간이 아니었을까. 모질고 서러운 분단의 사슬을 끊어내지 않는 한 대한민국의 '생이별 트라우마'는 영영 치유되지 못한 채 죽어서도 산천을 떠돌 것인데, 그 영혼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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