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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외교

    노래로 그림으로 향수 달랜 북녘 노인들

    • 2015-10-21 20:39

    1차상봉단, 오후 단체상봉 끝으로 이틀째 일정 마무리

    21일 강원도 고성 금강산에서 열린 제20차 남북이산가족상봉 2일차 단체상봉에서 남측 이춘란 여동생이 북측 언니 리난희씨이 눈물을 닦아주고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이산가족 1차상봉 이틀째인 21일 오후 비가 내리는 가운데 진행된 단체상봉에서는 젊은 시절 즐겨부르던 노래를 부르거나, 고향의 초가집을 그림으로 그리면서 남녘 고향을 추억한 북측 노인들의 모습이 시선을 끌었다.

    북측 최고령자인 리흥종씨(88)는 딸 이정숙씨(68)를 비롯한 남측 가족을 만난 자리에서 소싯적에 즐겨부르던 가요 ‘꿈꾸는 백마강’을 또렷한 목소리로 완창했다. 리씨의 고향은 충남 예산군으로, 백마강이 흐르는 부여군 인근이다.

    리씨는 “아빠, 지금도 그때 부르던 노래 기억나요? 노래하실 수 있어요?”하는 딸의 질문을 받고, 곧바로 딸의 손을 잡은 채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잠시 뒤 딸 정숙씨도 노래를 따라 불렀고, 리씨의 동생과 조카, 북측 아들 등 다른 가족들은 이를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어떻게 가사도 다 기억해? 아빠 노래 잘하신다”는 딸의 칭찬에 리씨는 ‘애수의 소야곡’을 흥얼거렸다. 정숙씨는 “어렸을 때 엄마가 불러준 노래가 기억난다”며 일본가요로 추정되는 노래의 일부분을 불렀다. 리씨는 “그 노래를 아느냐”고 놀라면서도 “북에서는 그 노래를 하면 안된다”고 만류했다.

    북측 리한식씨(87)는 계모 권오희씨(92)와 이복동생 이종인씨(55) 등을 만난 자리에서 65년전에 권씨와 함께 살았던 경북 예천의 초가집을 손수 그림으로 복원해냈다. 리씨는 이면지에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기둥을 그리기 위해 목에 걸고 있던 이름표를 자로 썼다.

    리씨는 한획 한획 정성스럽게 초가집 옆 담벼락, 마루의 무늬와 댓돌을 그리고 처마 밑 그늘까지 세밀하게 표현하면서 한 폭의 그림을 완성했다. 약 40분 뒤 그림이 완성되자 “예전 집이랑 똑같다” 등 가족들의 탄성이 터졌다.

    21일 강원도 고성 금강산에서 열린 제20차 남북이산가족상봉 2일차 단체상봉에서 북측 리한식씨가 고향집을 그리는 동안 계모 권오희씨가 눈물을 닦고 있다.(사진=사진공동취재단)

     

    그림은 ‘상봉의 뜻깊은 시각에 그린 이 그림을 종인동생에게 선물한다. 2015.10.21’이라는 자필서명과 함께 막내동생인 이종인씨에게 건네졌다. 종인씨는 그림을 받아들며 “형님을 또 언제 볼지 모르지만 이 그림을 보면서 형님 생각을 하고, 형님 보고싶을 때마다 볼께요. 잘 간수할께요”라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행사 이틀째인 이날 오후 4시30분부터 2시간 동안의 단체상봉에서 남북의 이산가족들은 전날보다 훨씬 친밀해진 모습이었다. 서먹서먹하게 존대를 섞어 하던 대화는 편하게 바뀌었고, 즉석카메라나 휴대전화로 가족사진을 찍는 모습도 많이 목격됐다. 일부 북측 가족은 취재진에게 “나를 취재해달라”며 여유를 보였다.

    남측 손자 채재혁씨(40)는 귀가 어두운 북측 할아버지 채훈식씨(88)를 위해 가족들의 안부를 글씨로 적어 보여줬다. 채훈식씨는 일부 가족의 사망 소식 등을 필담으로 전해들은 뒤 눈물을 흘렸다.

    단체상봉이 끝날 무렵 북측 외삼촌 도흥규씨(85)는 남측 조카 윤인수씨(59)에게 “나도 너희와 같이 가고 싶다. 가서 60년만에 서울구경도 하고 싶다”고 안타까운 심정을 내비쳤다. 조카들은 “오래 사시면 통일돼 서울 오실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한편 북측 오빠를 만나러 금강산을 찾은 남측 여동생 염진례씨(83)는 건강 악화로 이날 단체상봉에 불참했다.

    단체상봉이 끝난 뒤 상당수 남측 가족들은 상봉장 밖에 대기한 버스까지 북측 가족을 부축하며 함께 걸었다. 북측 안내원들은 이에 별다른 제지를 하지 않았다. 남측 남순옥씨(80)는 북측 오빠에게 “비오니까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하세요”라고 당부했다.{RELNEWS:right}

    이날까지 공식일정을 마친 1차 상봉단에는 22일 오전 마지막 작별상봉만이 남겨졌다. 작별상봉 2시간 뒤엔 다시 남과 북으로 헤어져야 한다.

    북측 형님을 만난 남측 김명한씨(58)는 “하루라도 쭉 함께 같이 있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많은 가족들이 얘기했다”며 “그렇게 못하는 사정은 이해하지만, 우리 소망이 그렇다는 것이다. 이뤄질 수 없는 얘기라는 건 잘 안다”고 씁쓸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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