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최근 영화나 TV 등에서 소개되는 사극을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그 사극 괜찮던데"라는 말보다는 "요즘 사극 왜 이래"라는 푸념이 더 자주 들려옵니다. "사극의 맛과 멋이 없다" "현대물과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 주를 이루는데요. CBS노컷뉴스가 고전평론가, 사회학자, 역사학자와의 연속 인터뷰를 통해 사극의 현재를 짚어봤습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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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고전평론가 고미숙 "욕망에 찌든 사극…언제까지 권력과 性 동경하랄 텐가"
② 사회학자 노명우 "스피드 쫓는 눈먼 사극…주위 둘러볼 '템포' 필요한 때"
③ 역사학자 오종록 "영웅 키우는 사극…신분차별 여전한 한국사회 맨얼굴"
영화 '명량' 스틸컷(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지난해 1761만 관객을 모은 사극 '명량'(2014)을 제자들과 함께 봤다는 역사학자 오종록(성신여대 사학과) 교수는 이 영화에 대한 감상평을 세 가지로 정리했다.
"영화 만드는 기술이 아주 많이 발달했다는 것이 첫 느낌이었죠. 두 번째는 귀화한 일본인이 등장한다거나 울돌목에서 전투를 벌일 때 백성들이 어떤 식으로 도왔다는, 근래 연구에서 밝혀진 점들이 반영됐다는 데서 좋은 사극을 만들려 애썼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순신이라는 영웅적인 존재가 부각되는 점은 염려스럽더군요."
최근 서울 동선동에 있는 성신여대에서 만난 오 교수가 요즘 사극의 흐름을 접하면서 우려하는 지점은 그 저변에 깔린 '영웅사관'이었다.
"영웅사관은 전근대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역사관입니다. 국왕 중심의 역사관이 약화 또는 완화된 형태인데, 영웅적인 인물들이 역사 발전에 큰 기여를 함으로써 훌륭한 사회를 만든다는 관점이죠. 문제는 소위 훌륭한 사람으로 부각된 이들이 사회적인 성취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도록 만드는 기제로 영웅사관이 작동한다는 겁니다. 10년 전 '황우석 사태'가 그 단적인 예죠."
그는 영웅사관을 두고 "극복해야 할 것"으로 규정했다. "영웅사관은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하고, 많은 사람들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데 주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어떠한 영웅이 필요할까에 대해서는 다양한 생각을 지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순신이 조선을 구했다" "박정희가 경부고속도로를 만들었다"는 식으로 영웅적 인물이 사회적 성취의 대다수를 가져가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아요. 사회적 합의를 통해 그들을 기리는, 역사적으로 보다 진전된 방법을 찾으려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하는 이유죠. 하지만 이에 대한 논의 자체가 없는 게 현실입니다."
오 교수는 사극 등에서 문제의식을 갖지 못한 채 이러한 영웅사관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점을 꼬집었다.
"여러 영상매체가 발달한 요즘 세상에서는 누구나 영웅이 되는 가상의 경험을 합니다. 심지어 3D 영상을 통해 생생하게 즐길 수도 있어요. 역사를 올바로 공부한 사람들이라면 이러한 영상매체 때문에 영웅사관에 젖어들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이 영웅사관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모르고, 심지어는 영웅사관이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죠."
"역사 발전의 근본적인 동력은 사회 구성원 전반에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이는 '민주주의를 얼마나 훌륭하게 실현해낼 수 있는가'라는 문제와 연결되는 중요한 대목이죠. 역사가들이 20년 전부터 '상당히 많은 사회 구성원이 역사를 기록할 수 있다면 민주주의가 올바로 구현되도록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내다본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본인이 몸담고 있는 가족이나 친구, 일의 관계 안에서 역사를 기록할 수 있다는 인식, 곧 '역사의 민주화'죠."
◇ "특권·세습·차별 당연하게 여기도록 강권하는 쪽으로 그려지는 사극의 욕망"
성신여대 사학과 오종록 교수(사진=황진환 기자/노컷뉴스)
오 교수는 "사극 안에서 소비와 관련된 욕망의 투영이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조선시대에는 지배층을 중심으로 유교의 성리학·주자학적인 가치관이 작동했다.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양반을 동경했던 당대 현실에서 제대로 된 양반이 되기 위해 갖춰야 할 미덕이 사회 전반을 지배한 것이다.
이로 인해 조선시대에서 욕망은 당연히 절제되고, 심하게 얘기하면 싹을 자른다는 표현을 쓸 정도로 눌러야만 하는 대상이었다. 그러던 욕망이 지금에 와서는 "돈만 있으면 다 살 수 있는 것"으로 변했다.
"사회적으로 자본을 통해 거래되는 욕망의 범주가 넓어졌다고는 하지만, 한국 사회처럼 '차별적인 인간관'이 심각하게 남아 있는 조건 안에서 '돈만 있으면 다 된다'는 담론을 전개하는 것은 몹시 위험해 보입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만들어진 이러한 담론이 현재 사극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어요."
오 교수는 "조선 사회를 이끌어가던 사람들은 적어도 다른 사람들의 이목 앞에서 매우 절제된 생활을 했던 것이 틀림없다"고 설명했다.
"물론 욕망을 절제하지 않고 현실화시키려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사회적으로 존경 받는 선비들 가운데 그런 사람은 없었다고 봐야죠. 그런데 사극에서 이런 인간상을 잘못 해석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당대 바람직하다고 여겨졌던 인간상이 사극 안에서 왜곡되면서, 현실을 사는 사람들에게 그런 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무런 문제 없는 것처럼 비쳐질 수 있는 거죠."
결국 "'건강하고 행복하며 아름다운 삶'과는 동떨어진 욕망, 예컨대 생물학적인 힘이나 정치·사회·정치적 힘을 과시하려는 욕망을 비판 없이 수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근대 이후 시대를 다루는 사극에서 특히 그런 경향이 강합니다. 신자유주의시대라는 전제를 수용하거나, 알게 모르게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젖어들었기 때문이죠. 자본주의시대로 접어들 무렵부터 이미 욕망을 긍정적으로 보는 흐름이 형성됐고, '어떠한 욕망이든지 돈으로 사서 소비할 수 있는 것이라면 허용해야 한다'는 생각이 퍼진 겁니다."
오 교수는 사극 안에서 강화되는 신자유주의 기조에 대해 "신자유주의를 말할 때 '자유'라는 단어를 해석하고 이해하고 설명하는 데 있어서 편차가 대단히 크다"고 분석했다.
"사람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로서 자유를 말하는 경우도 있고, 특권에 가까운 것을 자유로 포장하는 경우도 있죠. 한국 사회에서 가장 크게 문제되는 부분은 결국 특권입니다. 전근대적인 특권이 해소되지 못하고 있는 거죠. 그 특권이 최근 현실 사회에서 강화되고 있는 양상을 보이고 있어요. 약화되던 차별적인 인간관이 그 와중에 다시 강화되고 있는 점은 한국 사회의 큰 문제점입니다. 그러한 특권, 세습, 차별을 당연하게 여기도록 권하는 쪽으로 사극을 그리는 측면이 없지 않아 우려가 큽니다."
그가 언급한 차별적인 인간관은 한국 사회가 벗어던져야만 하는 시급한 과제다. "사극의 주인공으로 주로 등장하는 왕을 위시한 지배층의 권력을 정당화시키는, 극단적인 정치투쟁을 미화시키는 사극의 흐름이 1960년대, 1970년대에 비해 나아지기는 했지만, 차별적인 인간관의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다루지 않는 분위기는 여전하다"는 것이 오 교수의 설명이다.
"태종 이방원이 정도전을 죽일 때 '내가 정당한 권위를 갖고 있다'는 점을 공표하면서 상대를 올바르지 않은 존재로 규정지어요. 수양대군이 김종서, 황보인 등을 제거할 때도 같은 방법을 씁니다. 정적을 살해하는 방법으로 정변을 일으키고 성공하면 왕이 되는 식이었죠. 이러한 정치투쟁이 가능했던 데는 차별적인 인간관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오 교수는 "조선시대에는 유교의 윤리·도덕률을 심각하게 어긴 경우 사람이 아닌 것으로 간주했다"고 전했다.
"불충, 불효, 반역 등이 여기에 해당되는데, 그렇게 사람이 아닌 것으로 간주되면 마땅히 죽여야 하는 대상이 됩니다. 이러한 전근대적이고 차별적인 인간관이 현재 우리에게 여전히 익숙하다는 데 큰 문제가 있어요. 차별적인 인간관을 비판 없이 수용하는 사극이 이러한 인식을 재생산하면서 강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봐야죠."
◇ "역사는 '미래희망'과 직결…사회 전반이 바라는 미래상 그릴 사극 기대"
드라마 '정도전' 스틸컷(사진=KBS 제공)
오 교수는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강행도 이러한 차별적인 인간관의 결과물로 봤다.
그는 "역사학에서 '국가'는 하나의 제도인데, 여전히 궁극적인 가치를 부여받은 형태로 국가를 대하던 옛 관점이 힘을 발휘하고 있다. 국가가 교과서를 발행한다는 것은 '국가라는 제도가 교과서를 발행한다'는 것인데, 이는 결국 '국가 운영을 위임받은 사람들이 교과서를 발행한다'는 의미"라며 말을 이었다.
"역사교과서가 국정 발행제로 결정나는 과정을 보면, 많은 사람들은 대통령의 의사가 결정적인 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대통령을 벗어나면 여당의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인물 또는 행정조직에서 대통령에 버금가는 총리나 부총리 자리에 있는 이들, 말하자면 권력의 정점에 있는 이들이 있어요. 그들이 역사 발전의 흐름과는 반대되는 일을 계획하고 추진할 때 정상적인 민주주의 사회에서라면 이렇게 쉽게 결정되고 추진되지 않을 겁니다."
"여전히 '권력이 어떤 일을 추진할 때 당연히 협조해야 한다'는 관념이 우리 사회의 저변에 자리잡고 있기에 전근대적인 정치문화가 힘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현실에서 이러한 전근대적인 속성이 별 문제가 되지 않는 수준, 바꿔 말하면 대통령, 국무총리, 여당의 주요 인물들이 반역사적인 일을 벌이지 않는 수준이라면, 사극에서 피 튀기는 당파 싸움을 아무리 많이 다룬다고 해도 걱정스러울 게 없겠죠."
그는 "많은 사람들이 '현재 겪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들을 어떻게 극복할까'에 대한 지혜로운 안목을 역사 속에서 얻고자 한다"며 "무엇이 이상적이고 바람직하고 훌륭한 미래 사회일까에 대한 고민은 누구나 갖고 있으니,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사극이 제작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전했다.
"현재를 엄혹한 질곡이라고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존재하는 현실에서는 더더구나 그렇죠. 사극도 비판적으로 보면 하나의 사관(史觀)이 될 수 있어요. 기본적으로 사극은 재미 없으면 생명력이 없어요. 재미와 함께 역사적으로 어떻게 순기능을 하느냐가 사극의 관건인 셈이죠."
"전체적으로 보면 예전보다 관련 자료를 모으고 취재하는 조건이 나아졌으니 좋은 사극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도 커졌고, 일직선은 아니더라도 사극의 발전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는 게 오 교수의 견해다.
"역사기록을 바탕으로 사극이 만들어지는데, 그 기록이 오랜 기간 한문으로 작성됐다는 데서 접근성에 한계가 있죠. 왕조사회에서 국왕을 주체로 역사를 기록하는 게 당연시됐으니 국왕과 왕실, 그 주변에서 활동한 고위 관료, 신분이 낮더라도 권력과 가까이 있던 인물을 중심으로 역사가 쓰일 수밖에 없었죠.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들인 비용과 결과 사이에서 모든 것이 맞춰지니, 비용의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어요."
국왕과 그 주변 권력층을 중심으로 사극이 제작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오 교수의 설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용의 눈물'(1996년 11월부터 1998년 5월까지 방영) 이후 사극을 제작하고 연출하는 분들이 학문적으로 '역사가 어떻게 설명되고 있는가'에 대한 조사를 열심히 벌이고 있다고 봐요. 당대 민중을 주인공으로 한 사극이 근래에 꽤 많아진 점도 고무적인 일입니다. 한국사의 연구 성과가 다양하게 나오고 있으니 앞으로도 그런 방향으로 노력하면 좋은 사극이 꾸준히 나올 수 있을 겁니다."
오 교수는 "역사는 '미래희망'과 직결돼 있다"는 표현을 썼다. '자세히 설명해 달라'는 말에 그는 "사람 한 명 한 명이 우주를 갖고 있으니 미래희망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도 모두 다를 것"이라며 "존중해야 할 보편적인 가치를 인정한 뒤에야 민족, 국가 등도 인정될 수 있다"고 답했다.
"민족주의는 매우 중요한 비판의 대상입니다. 이를 비판할 때 뚜렷한 방향성이 있어야 할 텐데, 보편적인 가치를 지향하는 쪽으로 방향이 설정되지 않을 경우 오히려 민족주의, 가족주의가 강화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봐요. 현재 여러 사태를 접하면서 40년 전 유신시대와의 유사성을 생각하게 됩니다. 유신체제가 들어서면서 강조했던 것이 '한국적 특수성'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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