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유튜브 영상 캡처)
지난 14일 열린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60대 참가자 백남기 씨가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뒤 중태에 빠진 가운데 영국 정부가 물대포의 위험성을 의학적으로 점검한 조사 보고서를 바탕으로 물대포 도입을 포기한 사실이 뒤늦게 주목받고 있다.
지난 7월 런던 보리스 존슨 시장은 독일에서 수입해 온 중고 물대포 살수차 3대의 도입을 정부에 요청했다.
하지만 영국 정부는 물대포 사용에 따른 의학적 영향을 분석한 보고서를 근거로 사용을 불허했다.
물대포를 비상살무기(non-lethal)가 아닌 차살상무기(less-lethal)로 분류한 이 보고서는 코와 입,귀에 고압의 물이 들어갈 경우 신체조직이 다칠 위험을 첫번째 위험으로 제시했다. 특히 물대포를 눈에 맞을 경우 심각한 부상위험이 있다며 만약 안경 등이 파손돼 눈에 들어갈 경우 위험은 배가된다고 밝혔다.
또한 고압의 물대포를 맞은 물건으로부터 튕겨나오는 파편 등으로 2차 부상의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관통상과 트라우마를 남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물대포를 맞고 도로나 딱딱한 물체에 쓰러지면서 머리와 목 등에 3차적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경고하며 2013년 터키 시위 당시 물대포에 맞은 시위대를 예로 들었다. 보고서는 노약자나 아동, 임산부에게는 부상위험이 더욱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살수로 인해 노면이 젖은 상태에서는 제동능력이 떨어지고 시계가 제한을 받기 때문에 물대포 차량 자체가 시민에게 위험을 줄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에 따라 보고서는 근거리에서 살수하는 것은 부상의 심각성이 증대되는만큼 목표물과의 거리와 수압에 따른 살수강도가 우선 측정돼야 한다고 밝혔고 물대포 가동인력에 대한 교육훈련이 전제돼야 한다고 밝혔다.
그밖에 살수차량 내부 등에 CCTV가 없어 증거 자료를 확보하기 어려운 점과 물대포를 정확히 조준하기 어려운 점도 꼽혔다.
이에 근거해 테레사 메이 내무장관은 영국 경찰의 물대포 사용 승인 요청을 허가하지 않았다. 물대포로 인해 치명적인 부상을 입는 사례가 드물다 해도, 여전히 직간접적인 의학적 위험성이 인정된다는 게 그녀의 설명이었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메이 장관은 물대포 사용 요청을 불허하면서 "영국 경찰은 지금까지 군사 무기와 같은 장비를 사용한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물대포 사용이 경찰의 적법성 및 '국민의 동의를 바탕으로 하는 경찰(policing by consent)'이라는 원칙에 영향을 미칠까봐 심히 우려된다"고도 말했다.
'국민적 동의를 바탕으로 하는 경찰'은 1800년대에 만들어진 영국 경찰의 원칙이다. 경찰력은 시민의 승인에 기반해 수행돼야 하며, 물리력은 설득과 조언이 통하지 않을 때만 최소한도로 사용 가능하다는 내용 등 9개 조항으로 이뤄져있다. 경찰이 곧 시민이고 시민이 곧 경찰이라는 조항도 있다.{RELNEWS:right}
존슨 시장과 영국 경찰은 이 같은 조치에 반발했다. 물대포는 과격한 집회 통제를 위해 매우 제한적인 경우에만 사용할 것이며, 살수차 구입에 22만 파운드(약 4억 원) 가량을 들이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영국 정부는 물대포가 허가 되려면 적어도 67가지 결함이 개선돼야 한다고 일축했다. 결국 존슨 시장도 "지금 당장 도입할 수 없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다중 집회에 적합한 장비가 되도록 앞으로도 계속 결함을 보완할 것"이라며 한 발 물러섰다.
우리나라의 경우 1989년에 처음 물대포를 도입해 경찰에 배치했다. 백 씨 사건으로 물대포 논란이 가열되자, 구은수 서울경찰청장은 지난 15일 기자간담회에서 "(안전을 담보하는) 시스템 마련이 안돼 있다는 게 문제인 것 같다"며 "더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살수차 사용 지침을 개선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