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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DJ가 YS보다 이것(?)만 잘했다면, 야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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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DJ가 YS보다 이것(?)만 잘했다면, 야당이…

    (왼쪽부터) 故 김영삼 전 대통령과 故 김대중 전 대통령 (사진=자료사진)

     

    1970년대 이후 현대 정치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두 거목,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 누가 더 혁혁한 역사적 공을 세우고 갔을까?

    김영삼 전 대통령(YS)이 10일전 서거했기에 YS를 떠올리는 분위기가 강하다. 그렇지만 여론조사 결과는 DJ가 조금 앞선다. YS·DJ의 업적 차이와 생애에 대한 재단과 평가는 후대 역사가들의 몫으로 남겨두는 것이 두 분에 대한 예의이고 도리라고 본다.

    발자취의 '골'은 가늠이 되나 우뚝 솟은 역사적 산봉우리는 너무 높기에 공과를 거론한다는 것 자체가 역사에 대한 도전이자 불경죄에 해당할 수 있다. 특히 DJ가 나으냐, YS가 잘했느냐고 비교하는 것도 우리시대의 편견과 어리석음으로 인해 두 분의 업적에 누를 끼칠 우려가 있다.

    그렇지만 한가지만은 YS가 낫다고 아니할 수 없다. DJ지지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항변할 것이다. 영남과 호남 출신이라는 지역적 특성 차이 등 논란의 소지가 있다고 반박할 것이다. 그럴지라도 김영삼 전 대통령이 김대중 전 대통령보다 딱히 잘한 것을 지목한다면 '정치 인재 육성'이다.

    현재 대한민국 정치판을 주무르는 중진 정치인들의 면면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DJ가 발굴해 키운 정치인들은 새누리당에는 단 한 명도 없다. 반면 YS가 발탁하여 경력을 쌓게 한 정치인이 새정치민주연합에서도 일정 지분을 갖고 있다. 손학규 전 대표다. 그는 국가장 5일 동안 내내 YS빈소를 지켰다. YS를 정치적 아버지라고 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서청원 최고위원의 그것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았다.

    차기를 준비하거나 후일을 기약할 수 있는 정치인들 가운데 YS와 DJ계를 나눠보면 그 차이는 확연해진다. 여당의 김무성 대표와 서청원 최고위원, 이인제 최고위원, 김태호 최고위원은 YS계다.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가 YS 정치 문하생들에 의해 장악된 것이다. 중진 정치인 가운데 이재오 의원과 정병국, 심재철 의원뿐만 아니라 김문수 전 경기지사도 YS가 대통령일 때 여의도에 입문했다. 정의화 국회의장도 지난 1996년 YS에 의해 정치에 발을 들여놨다.

    DJ의 적자라고 할 수 있는 정치인은 박지원 의원뿐이다. 상도동계(YS)는 여전히 한국 정치의 큰 줄기를 유지하나 동교동계(DJ)는 대가 끊길 것 같다. 박지원 의원마저 정치를 그만두면 동교동계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다만 정세균 의원과 천정배, 김한길, 추미애, 신기남 의원이 DJ로부터 정치를 배웠다고 할 수 있고 원외의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 정도다.

    새정치민주연합 내에는 DJ계가 없다고 해도 아주 그릇된 분석이 아니다. DJ가 YS보다 6년 전 하늘나라로 떠난 것처럼 DJ는 새정치연합 당사에 걸린 사진으로만 존재한다고 봐야 한다. 그들이 진정으로 존경해서든, 아니면 호남표를 의식해서든, 새정치연합 의원들이 하는 정치 행태를 보면 후자 쪽이 가깝다. 호남인들이 그것을 너무 잘 알기에 문재인 대표 등 친노·친문 인사들에 대해 호감을 갖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YS를 정치 '사부'로 존중하며 상도동계임을 자처하는 현역 정치인들은 여전히 위세를 떨치고 있는데 DJ계는 왜 일찍 소멸하는 것일까?

    양김이 필사적인 대결을 벌인 1995년 제 15대 총선을 살펴보면 확연해진다. YS는 대통령으로, DJ는 분열된 국민회의 총재로 결전을 치른 결과 YS는 139석을 얻었지만 DJ는 71석을 건지는 데 그쳤다. DJ계 차세대 정치인들의 입문이 수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70-90년대가 민주화운동 경력자의 시대였다면 2000년 이후부터는 전문가들이 우대받는 시대가 된 것이다. DJ를 따르던 정치인들은 그들의 경력인 운동권 시대가 지나면서 명멸해 갔다. 정균환 전 원내총무 등이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지금의 야당은 2004년 총선(17대)과 2008년 총선(18대), 2012년 총선(19대) 때 등장한 친노 세력이 주도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종자들이 DJ 세력을 대체한 것이다. DJ의 발탁으로 의원 배지를 단 정동영·천정배·신기남(천신정)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등에 업고 DJ당(새천년민주당)을 깨고 열린우리당을 창당한 연장선상이다.

    또한 근본적인 원인은 김대중·김영삼이라는 두 거물 정치인의 성장 과정과 인물 양성 과정이다. 전자는 박정희·전두환 시절을 거치며 받은 핍박으로 말미암아 큰 인물을 배양할 정치적 상황이 아니었다. 생명을 걸지 않고서는 DJ 곁을 지킬 사람이 없었다. 운동권 투사들만 DJ를 찾았다. 자연히 인재의 치우침, 쏠림 현상으로 이어졌다. 그나마 괜찮았던 민주화투쟁 동지들도 지난 1987년 후보 단일화 실패 이후 그를 떠났다. 1970-80년대에 사선을 함께 넘은 DJ 동지들 가운데 한 명도 후계자가 되지 못했다. 동교동계가 DJ 주위를 너무 강하게 사주경계하는 바람에 유망한 정치 지도자감이 들어올 문을 막아버렸다는 비판이다.

    'DJ는 결국 사람을 키우지 않으며 차세대 지도자가 되고 싶으면 DJ 옆에 있으면 안 된다'는 군부독재 정권의 음해대로 흘러왔다. DJ는 대통령이 되고 난 이후에도, 아니 사후에도 박정희·전두환 정권이 악의적으로 뿌린 악평에 시달리고 있다.

    어쨌든 DJ를 진정으로 계승·발전시킬 후계자가 보이질 않는다. 차기 대권을 넘보는 'DJ키즈'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10년 내에 한국 정치를 쥐락펴락할 정도로 성장할 가능성을 가진 유망한 정치인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통찰력과 시대를 보는 안목이 그 어떤 정치 지도자보다 출중했다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야당의 인물난과 상관관계가 있다고 봐야 한다. 정통 야당의 법통을 계승하고 남북 화해협력 정책과 생산적 복지 정책, 지역주의 해결 등을 신념으로 간직하고 승화시킬 정치인들을 양성하지 않은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후계자가 되겠다고 나선 김상현 전 의원이나 정대철 전 의원 등이 후계자로서의 자질이 부족했다손 치더라도 대통령 퇴임 이후 20년 뒤(2010년대)를 이끌 '동량지재'를 키우지 않았다. 정동영 전 의원은 조기에 꽃봉오리를 터트렸다.

    그 결과가 오늘의 야당 모습으로 재현되고 있다. 백마 또는 준마급 정치인을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질 않고 올망졸망한 조랑말들만 넘치는 야당이 됐다. 그러니 계파싸움으로 허송세월한다. 정권교체는 뒷전이고 총선 승리보다는 나와 우리 계파 출신의 공천을 우선하는 정당이 됐다.

    더욱이 서로가 서로를 깎아내리기에 열중한 나머지 인물의 하향평준화가 됐다. 이런 탓에 상시적인 인물 빈곤에 허덕이고 야당을 바로 세울 걸출한 외부 인사의 수혈은 쉽지 않다. 꼭 필요한 인재들은 야당을 쳐다보지도 않는다. 대신 학생운동권 출신과 시민단체, 민변 출신 변호사들만 기웃거리는 정당으로 전락했다.

    이전투구를 벌이더라도 중재할 중진 의원도 마땅하지 않다. '문·안·박 연대'를 다시 추진할 정치인도, 안철수 의원의 혁신전당대회를 관철시킬 중량감 있는 정치인도 안 보인다. {RELNEWS:right}

    천정배 의원은 지난 4.29재보궐선거 당선의 일성으로 신당을 창당해 DJ키즈를 키우고 싶다고 선언했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소지장선 양엽가변-蔬之將善 兩葉可辨)'고, DJ키즈라고 할 만한 떡잎을 발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새 인물 찾기란 눈의 개안을 필요로 하고, 인재 키우기는 자기희생을 요구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한국 야당의 인물난은 오래갈 것 같다. 큰 인물 탄생은 고사하고 존립이 위태로운 지경으로 치닫는 국면이다. 만약 지금의 야당이 총선에서 대패하면 일본처럼 새누리당에서 야당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말이 벌써부터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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