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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의제의 폐단 극복, '제비뽑기'가 대안이다

책/학술

    대의제의 폐단 극복, '제비뽑기'가 대안이다

    금권정치와 소수특권주의에서 벗어난 새로운 민주주의를 제시하다

    사진= 교보문고 제공

     

    선거철만 되면 정치인들은 온갖 공약을 남발하면서 시민들에게 한 표를 구걸한다. 하지만 선거가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시민들은 안중에도 없이 자신들만의 이권 다툼에 혈안이 된다. 금권정치와 특권정치에 오염된 대의제의 폐단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의구심과 불신은 누적되어 폭발할 지경이다. 해결책은 무엇일까? <국민을 위한="" 선거는="" 없다="">의 저자 다비트 판 레이브라우크는 선거가 곧 민주주의라는 고정관념을 깨라고 말한다. 합의의 도구였던 선거가 시민혁명을 거치면서 소수 엘리트의 정치적 입지를 보장해주기 위한 제도로 변질되는 과정을 밝히고, 현재 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한 진단과 처방을 진지하고 꼼꼼하게 짚어본다. 그리고 추첨을 통해 노동자, 농민, 전업주부 같은 보통 사람이 정치에 참여하게 하는 제비뽑기를 대안으로 제시하며 질식 상태의 민주주의에 활력을 불어넣을 방법을 모색한다. 다음 세대를 생각하는 정치가가 아닌 다음 선거만 생각하는 정치꾼들에게 지쳐 정치에 환멸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열어줄 것이다.

    국민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하는데, 이들은 잘못 생각해도 한참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이들이 자유로울 수 있는 건 단지 의회 구성원을 뽑는 선거 기간뿐이다. 일단 의원이 선출되는 즉시 국민은 노예가 되어버린다.
    —장자크 루소, 본문 중에서

    민주정치가 위기를 맞은 데 대한 진단과 처방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1) 정치인들 탓이니 포퓰리즘이 필요하다. 고학력의 전문 정치인이 의회를 차지한 탓에 보통 사람들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므로 포퓰리즘적인 정치인들로 의회를 대거 물갈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사람만 바뀐다고 해서 정치가 더 효율적이 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2) 민주주의 탓이니 관료주의를 도입해야 한다. 여러 사람에게 의견을 묻기보다는 각종 전문가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래서는 정당성에 문제가 생긴다. 3) 대의 민주주의 탓이니 직접 민주주의를 해야 한다. 이러한 주장은 특히 “월 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운동에서 터져 나왔다. 그러나 이는 대의 민주주의에 대한 불편함을 드러내는 데 그쳤을 뿐, 현실을 바꾸는 대안이 되지는 못했다. 이처럼 정치 위기에 대한 진단과 처방은 각각 한계를 갖고 있다. 여기에서 저자는 진짜 원인이 선거를 통한 대의 민주주의에 있다는 새로운 진단을 내린다.

    우리는 선거가 민의를 충분히 반영한다고 굳게 믿지만, 사실 선거는 소수 엘리트들의 정치적 입지를 제도적으로 보장해주기 위해 도입된 장치다. 미국과 프랑스혁명의 주도자들은 민중에게 권력을 맡기면 나라가 엉망이 되므로 똑똑하고 선택받은 소수가 권력을 쥐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선거를 도입했다. 그로부터 200여 년이 지난 지금, 선거는 민주주의와 동의어가 되었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 몽테스키외, 장자크 루소 등은 선거는 소수특권적이고 오로지 제비뽑기만이 민주적이라고 주장했다. 대부분의 관직을 제비뽑기로 뽑은 고대 그리스 아테네, 나라를 이끌 지도자를 뽑을 때 제비뽑기를 활용한 르네상스 시대 유럽 도시공화국들처럼, 제비뽑기를 이용한 임의적 대의 민주주의는 통치자와 피통치자의 구분 없이 모든 시민을 정치에 참여하게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정치체제의 정당성과 효율성을 담보할 수 있었다. 저자는 지금 같은 소수 엘리트 집단의 권력 독점과 대중의 정치적 무관심을 타파하기 위해 제비뽑기를 부활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 제비뽑기는 미국, 영국, 캐나다 등에서 운영하는 사법 배심제에서나 겨우 명맥을 잇고 있다. 그렇지만 제비뽑기를 통해 시민들을 모아 선거제도 개혁이나 헌법 개정 등을 맡긴 캐나다, 네덜란드, 아일랜드, 아이슬란드의 예처럼 민주주의를 혁신하기 위한 시도들이 나타나고 있다. 학계에서는 대의제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제비뽑기로 뽑힌 시민들로 의회의 원을 구성하여 법안 제정이나 검토 등을 맡기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저자가 특히 전도유망한 대안으로 제시하는 테릴 버리셔스의 안은 제비뽑기로 6개의 기관을 구성할 것을 제안한다. 첫 단계인 의제 결정 기관에서 지원자들 가운데 제비뽑기로 뽑힌 150~400명의 시민이 법제정이 필요한 의제를 제시하고, 그 의제와 관련된 시민이 이익집단 대표 기관에 자원하여 관련법 제정을 제안한다. 도로 안전이 의제에 올라 있다고 가정할 경우, 지역 기반 단체들, 사이클 연합, 버스 운전기사들, 교통 분야 관련 인사들, 교통사고 피해자 학부모들, 자동차연맹 등이 개입하는 식이다. 그런 다음 지원자들 가운데 제비뽑기로 뽑힌 150명이 검토기관에서 전문가들이 제출한 사항을 토대로 법률안을 제시한다. 정책 심사 기관은 모든 성인을 대상으로 제비뽑기를 하여 400명의 시민을 뽑은 후 의무적으로 참여케 하여 법률안에 대해 찬반 투표를 한다. 지원자들 가운데 제비뽑기로 뽑힌 50명의 시민은 규정 심의 기관에서 입법 활동과 관련한 절차와 규정을 결정한다. 마지막으로 지원자들 가운데 제비뽑기로 뽑힌 20명의 시민으로 구성된 감독기관은 입법 절차가 원활히 진행되도록 관리한다. 이 안에 따르면 권력의 독점과 엘리트주의를 방지하고, 이익집단의 로비도 통하지 않으며 공정하면서 효율적인 정치가 가능하다. 저자는 모든 시민은 적어도 자기 삶에 있어서만큼은 전문가들이며, 유능한 법률가로 구성된 의회라도 우리가 매일 먹는 빵 값을 모른다면 무슨 소용이냐고 묻는다. 그러니 선거만이 민주주의의 성배인 양 매달리지 말고 그런 고정관념을 깨라고 말한다. 선거와 제비뽑기를 함께 병행함으로써 부자나 학벌 좋은 엘리트, 유명인사만이 아니라 노동자, 농민, 전업주부 같은 보통 사람들을 의회로 보낼 수 있고 의회는 전체 국민의 구성과 근접하게 구성된다. 또한 제비뽑기는 선거 자금과 무관한 시스템이기 때문에 금권정치와 부패를 해결하고, 재선을 금지하여 광범위한 국민 참여를 가능케 한다. 제비뽑기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며 이로 인해 민주주의는 더 원활하게 작동할 것이다.

    이 책의 저자 다비트 판 레이브라우크는 1971년 벨기에 브뤼헤에서 태어났다. 루벵 가톨릭 대학교에서 고고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석사, 네덜란드 레이던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문화사학자, 고고학자,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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