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행복해야 할 설 명절에도 임금을 제 때 받지 못한 전국 30여만명의 노동자들은 슬픈 연휴를 보내고 있다.
지난 5일 오후 2시, 성난 표정의 20여명의 노동자들이 춘천에 있는 강원도개발공사를 찾았다.
평창 동계올림픽의 활강경기장과 올림픽 홍보를 위해 지난달 열린 '평창 알펜시아 하얼빈 빙설대세계 축제' 공사장에서 600여명의 노동자에게 돌아가야 할 40억여원의 임금이 체불됐기 때문이다.
노동자들과의 마라톤 협상에도 공사 측은 "원청 업체에 정상적으로 공사 대금을 지급했다"며 "하청 업체와 근로자 사이의 계약에 강원도가 개입하기 어렵다"고 책임을 미뤘다.
앞서 이날까지 밀린 임금 가운데 30%를 우선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던 시공사 사장 A씨는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병원에 가야겠다"며 자리를 뜬 뒤 돌아오지 않았다.
새벽 5시까지 농성을 벌이던 노동자들은 "설 명절만큼은 집에서 보내자"며 결국 힘없이 발길을 돌렸다.
민주노총 오희택 강원건설기계지부 정책부장은 "장기간 농성을 벌였지만 날씨가 춥고, 설 명절도 다가와 일단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면서도 "카드빚을 못갚아 생계수단인 건설장비까지 압류되고, 신용불량자 신세가 된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라고 호소했다.
또 "박근혜 정부는 법과 원칙을 늘 말하지만, 만약 임금을 체불한 사업주들을 법대로 벌금을 받고 기소하면 이렇게 임금 체불이 만연하겠나"라며 "힘없는 사람에게만 법과 원칙을 들이대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성실히 일하고도 자신의 몫을 받지 못한 이들만이 아니어서, 고용노동부가 새누리당 이종배 의원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임금체불 피해노동자는 29만 5677명으로 최근 5년 중에 가장 많았다.
또 이들이 받지 못한 체불금액도 1조 2992억 7300만원이나 됐다.
업종별로 살펴보면 지난해 제조업의 임금체불 피해노동자 수와 체불금액이 각각 7만 8530명, 4749억 6600만원에 달해 가장 많았다.
이어 건설업(6만 5573명, 2487억 8200만원), 도소매 및 음식 숙박업(6만 140명, 1740억 5000만원) 등이 뒤를 이었다.
하지만 일선 지방노동지청에서 임금 체불을 감시할 근로감독관들은 전국을 통틀어 고작 천여명에 불과해 임금 체불은 한국 노동계의 고질병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노동부 관계자는 "근로감독관이 1천여명이 넘는다지만, 과장급 이상 행정직을 제외하면 실제로는 900명을 간신히 넘는다"며 "1인당 1년에 평균 350~400건씩, 연휴 등을 제외하면 하루에 3, 4건씩 사건을 해결해야 할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이어 "사회보험료 체납사업장 정보나 SNS, 언론 기사 등 빅데이터를 구축해 노동 관련법 위반이 예상되는 사업장을 감독대상으로 선정하는 '스마트 근로감독'을 구축했다"며 "이번 상반기부터 시범사업을 진행해 임금 체불을 예방할 계획"이라고 밝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