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추위가 기승을 부린 지난 설 연휴.
과학 분야 연구원인 아버지는 11살 난 아들의 뺨을 때리고 집에서 쫓아냈다. 정리정돈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맨발로 쫓겨난 아들은 칼바람이 부는 거리에서 30분 넘게 발을 동동 굴렀다. 오전 9시도 채 되지 않은 이른 시각 차디찬 길을 걸을 때마다 발이 꽁꽁 얼어붙었다.
추위에 떠는 아이를 발견한 건 한 이웃 주민이었다.
이 주민은 "이웃집 애가 맨발로 길을 돌아다니고 있다"며 곧바로 112에 신고했다.
인천 서부경찰서는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아버지 A(38)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최근 잇따른 아동학대 사망 사건으로 주변의 관심이 높아진 가운데 '얼굴 없는 이웃'의 신고가 늘어나는 추세다.
18일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에 따르면 아동학대 신고 비의무자 가운데 이웃이나 친구가 신고한 건수는 2012년 970명에서 2013년 1천65명, 2014년 1천202명, 2015년 1천40명으로 1천명대를 유지했다.
지난해 접수된 아동학대의심사례를 분석해보면 신고 의무가 없는 이들이 신고한 건수가 1만1천765건에 달했다.
이 가운데 이웃이나 친구의 신고 비율이 3번째로 높은 1천40건을 기록했다.
사회복지 관련 종사자와 부모를 빼고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의료진, 어린이집·초·중·고교 직원 등 신고의무자(24개 직군)의 접수는 4천885건에 그쳤다.
부모의 학대를 피해 혼자 집 세탁실에서 탈출한 '인천 11살 소녀'를 구한 것도 이웃 주민이었다.
당시 소녀는 영하권의 추운 날씨에 반바지를 입은 채 맨발로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집에서 약 150m 떨어진 슈퍼마켓에 들어갔다.
슈퍼마켓 주인은 "6살 정도 돼 보이는 아이가 맨발로 혼자 돌아다니고 있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신고해도 학대 의심 사례가 아니면 신고·비신고의무자 접수 건수로 집계되지 않는 점을 고려하면 숨겨진 이웃의 신고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 관계자는 "요즘에는 부모가 길에서 아이를 심하게 혼내는 장면을 봐도 경찰에 신고하는 등 아동학대에 대한 감수성이 매우 높아졌다"고 말했다.
이 경찰은 "이런 경우 보통 현장에서 마무리 짓고 입건은 하지 않기 때문에 통계에 잡히지 않은 (이웃) 신고 건수는 더 많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신고 의무자가 아닌 이들의 학대 신고가 증가한 이후 '집안일'이라는 이유로 잘 드러나지 않던 아동학대가 수면 위로 올라온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이웃들을 포함해 비신고의무자들의 신고 건수가 점차 늘고 있다"며 "충격적인 아동학대 사건이 이어지면서 학대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개선됐다"고 분석했다.
이어 "본인의 일이 아니더라도 학대로 의심될 만한 상황이 보이면 주저하지 말고 신고해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