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31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옴니 쇼어햄 호텔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한국과 미국, 중국, 일본 등 북핵 문제의 핵심 당사국 정상들이 3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핵안보정상회의를 계기로 연쇄 회동을 가졌다.
러시아가 불참하긴 했지만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석 달, 유엔 안보리의 결의 채택 이후 한 달에 즈음한 시점에 이들 4개국 정상이 한 자리에 모인 것은 그 자체로도 의미가 깊다.
하지만 떠들썩한 소문만큼 내용이 따라가지는 못했다.
먼저, 가장 관심을 끈 한중 정상회담(모두발언)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북핵 문제를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북한 핵실험 후 한 달만에 이뤄진 2월5일 통화를 염두에 두고 "얼마 전에 우리가 통화를 했고 상호 관심사에 대해 대화함으로써 상호 이해를 증진시켰다"고만 말한 뒤 한중FTA와 팬더곰 공동연구사업으로 화제를 돌렸다.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의 지속적인 대북공조를 당부하고 지난해 9월 중국 전승절 참석을 상기시키기 위해 '무신불립(無信不立)'을 거론한 것과는 사뭇 다른 반응이다.
미중 정상회담도 뒤이은 한중 정상회담이 1시간 가까이 늦어질 만큼 지연되는 등 순탄치만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회담 후 공동성명에도 북핵 문제는 언급되지 않았다. 모두발언에서 일부 거론되긴 했지만 그나마 양측의 기본 시각차를 드러내는 수준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시 주석과 나는 한반도 비핵화와 유엔 제재 이행에 충실히 임하고 있다"며 "핵·미사일 시험 같은 행동을 억제할 방도를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시 주석은 "북핵과 다른 지역 및 글로벌 이슈에 대해 소통과 협력을 강화하길 원한다"면서도 대화와 협상을 강조하는 것을 빼놓지 않았다.
그는 앞선 발언에서 미중 양국은 일부 분야에서 갈등(disputes and disagreements)이 있다고 지적한 뒤 "서로의 핵심 이해와 주요 관심사를 존중하는 바탕 위에서 대화와 협상을 통한 실질적 해결책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 주석은 특히 본회담에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한국 배치에 대한 '단호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오바마 미국 대통령, 아베 일본 총리가 31일 오전(현지시간) 워싱턴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물론 한중 정상회담에 앞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은 거의 완벽한 3각 공조를 확인한 자리였다.
3국 정상은 북한에 대한 고강도 제재·압박을 지속하는 한편 북한의 추가도발을 엄중 경고하고 북한의 또다른 아킬레스건인 인권 문제에도 한 목소리를 냈다.
이는 북한은 물론 중국까지 압박하는 효과가 예상된다.
하지만 북한 입장에선 한미일 공조는 당연하면서도 이미 예고된 '악재'일 뿐이다. 더구나 뚜렷하게 추가 조치가 취해진 것은 아니어서 경고 이상의 효과는 기대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경우는 이번 핵안보정상회의 직전 토니 블링큰 미 국무부 부장관의 '사드' 발언으로 신경이 예민해진 터에 한미일 3각 공조까지 부각될 경우 오히려 반발 가능성이 우려된다.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일본 총리가 31일 오후(현지시간) 워싱턴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한편 이번 핵안보회의를 계기로 한일 간 위안부 합의에 대한 추가 논의가 있을 것이란 전망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론 별 얘기가 없었다.
이는 한미일 대북공조가 전면에 부각된 상황에서 어느 정도 예견됐던 사안이다. 우리 정부로선 여전히 잠재적 폭발력을 안고 있는 위안부 문제를 현 상황에서 꺼내들기 힘들었을 것이다.
다만 일본 교도통신은 이와 관련, 양국이 위안부 합의를 착실히 이행한다는 것을 확인하는 한편 남북 이산가족 문제와 북한의 일본인 납치 등 북한 관련 인권 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협력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뿐만 아니라 한일간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의 조기 체결 문제도 논의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핵 문제로 인해 시야가 제한된 사이에 한일 당국 간에 껄끄러운 현안들이 일괄처리될 가능성이 엿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