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 '젊은작가상'의 2016년 제7회 수상자는 김금희 기준영 정용준 장강명 김솔 최정화 오한기이다.
김금희의 「너무 한낮의 연애」는 십육 년 만에 우연히 만난 남녀를 통해 사라졌다고만 생각했던 순간과 감정들이 실은 "아주 없음"이 아니라 "있지 않음"의 상태가 되어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기준영의 「누가 내 문을 두드리는가」는 스물다섯 여대생에게 마음을 빼앗겨버린 오십대 초반 남자의 심리를 그녀 특유의 세밀하고 미려한 문장으로 그려낸다.
정용준의 「선릉 산책」은 발달장애 청년과 하루 동안 그를 돌보게 된 청년 사이의 간극을 통해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의 의미를 집요하게 묻는다.
장강명의 「알바생 자르기」는 알바생의 해고를 둘러싼 인물들 간의 대화를 들려주며 우리의 젊은이들을 그악스럽게 돌변시키는 것이 무엇인지 뼈아프게 드러낸다.
김솔의 「유럽식 독서법」은 벨기에에 불법체류중인 태국인 화자를 내세워 환상과 현실의 구분을 무너뜨리는 방식으로 소설의 경계를 확장시킨다.
최정화의 「인터뷰」는 자신을 인터뷰하던 기자를 폭행했다는 과거를 딛고 재기를 꿈꾸는 주인공을 통해 스스로 만들어낸 불안이 어떻게 자신을 파멸시키는지 가감 없이 보여준다.
오한기의 「새해」는 새해를 맞아 떠오른 두 가지 생각에서 출발해 소설쓰기의 지난함과 살아가는 일의 쓸쓸함을 예상치 못한 유머와 풍자로서 드러내는 독특한 작품이다.
심사평김금희, 「너무 한낮의 연애」 젊고 가난하고 미숙하고 아름답고 안타까운 이들을, 그 마음을, 그 마음의 십육 년 뒤까지를 이렇게 깊이 어루만지는 사람이 세상에는 있어 소설이라는 것을 쓰고, 이런 소설을 읽으며 나는 감동을, 세상의 많은 멋쟁이들이 비아냥거리는 그 감동이라는 것을 받는다. 김금희의 시대가 올까. 적어도 지금 내가 가장 읽고 싶은 것은 그의 다음 소설이다. _신형철(문학평론가, 조선대 문예창작과 교수)
양희야, 양희야, 이제 피시버거는 안 판단다. 양희야, 양희야, 너 되게 멋있어졌다. 양희야, 양희야, 너, 꿈을 이뤘구나, 하는 말들을 떠올리다가 지웠다. 안녕이라는 말도 사랑했니 하는 말도, 구해줘라는 말도 지웠다. 그리고 그렇게 지우고 나니 양희의 대본처럼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도 어떤 것은 아주 없음이 되는 게 아니라 있지 않음의 상태로 잠겨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남았다.(『21세기문학』 2015년 가을호)
기준영, 「누가 내 문을 두드리는가」 연애의 심리를 날카롭게 해부하면서 계산서의 정확한 도착 지점에서 무너져내리는 멜로드라마의 정치학을 세련된 문장의 호흡으로 보여준다. _정홍수(문학평론가)
어떡하지. 그는 환하고 텅 빈 집안을 서성였다. 그에게 예외적인 상황은 그 자체로 어떤 의미 이상이었다. 까닭을 알 수 없는 일들은 늘 그를 더 인간적으로 만드는 것 같았다. 하지만 크게 만회해야만 하는 일과 맞닥뜨린 마당에, 그는 한순간에 무력해지고 말았다. 그저 친절하게 구는 일로는 아무것도 회복되지 않을 것이었다. 그는 이제 H의 이해를 구하기 위해서는 자기 전 생애를 끌고 와야만 한다는 것을 이해했다.(『문학과사회』 2015년 여름호)
정용준, 「선릉 산책」 정갈한 현악 연주 같다. 바이올린과 비올라가 축을 이루어 정교하고 날렵하게 서사를 이끌어가는데, 무거운 콘트라베이스가 배음으로 계속 따라오고 간간이 첼로가 불길하게 출몰하며 주제를 환기시킨다. _은희경(소설가)
어쩌면 그의 삶은 오해되고 왜곡되었는지 모른다. 아니, 우리를 속이고 있는지도 모르지. 솜씨 좋은 작가처럼 거짓을 진짜처럼 혹은 진실을 가짜처럼. 영혼은 편하게 침대에 눕혀놓고 하루종일 내 손을 잡고 유령처럼 산책하다 집에 돌아간 것일지도 모른다. 아닌가. 하지만 그럴 수도 있지. 모르는 일이니까. 말을 안 하는데 알 수가 있나. 뒷모습으로 남은 얼굴. 아름답게 움직이던 위빙. 오리나무와 자귀나무를 구분할 수 있는 이상한 지식. 오늘 만난 한두운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었나.(『문학과사회』 2015년 겨울호)
장강명, 「알바생 자르기」 당대의 현실적인 문제를 가감 없이 직입해 실감나게 보여준다. 혜미라는 인물과 그녀의 처지를 다른 측면으로 보게 만드는 구성이 이 소설의 장점이며, 이로 인해 소설의 몰입도와 가독성이 높아지고 주제도 설득력 있게 전달되고 있다. _전성태(소설가)
걔 불쌍하다고, 잘 봐주려고 했었잖아. 가난하고 머리가 나빠 보이니까 착하고 약한 피해자일 거라고 생각하고 얕잡아 봤던 거지.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거든. 걔도 알바를 열 몇 개나 했다며. 그 바닥에서 어떻게 싸우고 버텨야 하는지, 걔도 나름대로 경륜이 있고 요령이 있는 거지. 어떻게 보면 그런 바닥에서는 우리가 더 약자야. 자기나 나나, 월급 떼먹는 주유소 사장님이랑 멱살잡이해본 적 없잖아?(『세계의문학』 2015년 여름호)
김솔, 「유럽식 독서법」 김솔에 이르러 드디어 소설에 새겨진 운명적 DNA, 그 국경이 무너지고 있는 것일까. 이국의 관념들을 학습하고 그들의 현재와 동시적으로 호흡하는 우리의 '독서'가 지니고 있는 편향성은 김솔이 이야기하는 대로 우리의 사유와 상상력마저 무국적으로 각인시키고 있는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_신수정(문학평론가, 명지대 문예창작과 교수)
익숙해지는 순간 위험이 태어난다. 자동차를 운전하는 나를 위태롭게 만드는 것은 법규를 어기면서 달려오는 자동차들이나 그것들을 뒤쫓는 경찰이 아니고, 혼란스러운 교통신호나 감시 카메라도 아니며, 도로의 갓길에서 엄지손가락을 흔들고 있는 흑인이나 백인도, 도로로 불쑥 뛰어든 사슴이나 고슴도치도 결코 아니다. 처음엔 도로의 차선과 신호를 숨기고 그다음엔 자동차 안팎의 풍경을 뒤섞더니 마침내 운전석을 소파로 착각하게 만드는 몽상이야말로 내겐 가장 치명적인 위험이다.(『문학들』 2015년 봄호)
최정화, 「인터뷰」 삼 년 전 인터뷰 사건을 호프집에서 다른 방식으로 변주하는, 치밀하게 계산된 연극 같은 장면들은 "아니, 남자였습니다"라는 그의 거짓말로 툭 끝난다. 곧 시작될 어떤 사건에 대한 불길한 예감에 이가 저절로 악물린다. 등단작부터 나를 사로잡아버린 불안의 연금술사, 최정화답다. _권여선(소설가)
그는 그들이 보기보다 어리석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발견한 그에 관한 정보가 더 참혹한 것일수록 그에게 더욱 강하게 이끌릴 것 같았다. 그리고 그들이 그의 모든 걸 받아들이기로 작정한 이상 그가 굳이 이 상황을 거부할 이유는 없었다. 그녀가 그의 얼굴을 천천히 들여다봤다. 아주 오래, 마음을 담아서 그렇게 했다. 그는 상처받은 짐승처럼 고개를 숙이고 등을 말았다. 작년에 있었던 인터뷰 사고가 사실은 일부러 저지른 짓이었다고 생각해봤다.(『실천문학』 2015년 여름호)
오한기, 「새해」 납치라는 싱거운 모티프가 소설 속에서 반복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심심하고 권태롭기 때문이다.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세계적 경제 불황의 시대에 핵심적인 정서는 피로와 불안이다. 권태는 그런 정서의 반대 극단에 있다. 이렇게 보면, 「새해」의 작가 오한기는 비-지구인임에 틀림없다. _서영채(문학평론가, 서울대 비교문학협동과정 교수)
소원대로 납치범이 되니까 좋아? 아내가 악을 썼다. 친친나트도 소란스러운 소리에 잠에서 깨 울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내는 눈물을 멈추고 친친나트를 안아들었다. (……) 아내는 친친나트를 쓰다듬으며 내게 밥은 먹이고 기저귀는 갈아줬냐고 물었다. 나는 거기까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다. 아내는 이건 아동폭력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나는 달리 할말이 없었다. 아내는 나를 흘겨보고는 친친나트를 데리고 거실로 나갔다. 친친나트, 이제 너도 인질이 되었구나. 그때 나는 나도 모르게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었다.(『작가세계』 2015년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