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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학술

    중년 의사, 건강 강박증을 해부하다

    신간 '나는 왜 늘 아픈가:건강 강박증에 던지는 닥터 구트의 유쾌한 처방'

     

    신간 '나는 왜 늘 아픈가'는 신경과 의사이자 의학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크리스티안 구트 박사가 현대인의 건강 강박증을 진단하고 대안적 건강 가이드를 제시한다.

    40대 초반에 접어들 무렵, 젊은 시절에 비해 체력과 지력이 점점 고갈되어 간다는 것을 느끼고 건강검진을 받기로 마음먹은 저자는 사뭇 압박적인 상담과 검사를 거치던 중 문득 유한한 삶을 온통 건강과 젊음에 대한 집착에 쏟아붓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일인지 하는 회의를 품게 된다.

    그리하여 이 모든 사안을 비판적으로 따져 보기로 결심하고 여러 가지 취재와 조사, 내적 성찰에 매달린 끝에 '나는 왜 늘 아픈가'를 집필했다. 구트 박사는 현대 의학의 한계를 신랄하게 풍자하며 의학 전문가로서 건강검진, 식이요법, 약품, 유전자 검사, 운동, 예방접종, 줄기세포, 안티에이징 등을 둘러싼 갖가지 의문을 유쾌하게 풀어 준다.

    이 책에서 구트 박사는 건강과 의학을 둘러싼 사람들의 온갖 반응과 세태를 날카롭게 풍자한다. 젊음을 되찾기 위해 안티에이징 시술에 아낌없이 돈을 쏟아붓는 할리우드 연예인, 건강 정보를 찾아다니느라 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 사실상 큰 효과도 없는 독감 예방접종을 받지 않은 사람들에게 무책임하고 경솔하다며 겁을 주는 언론 등을 등장시키면서, 건강에 대한 광기와 허세, 과장과 맹신이 가득한 이 사회를 조롱한다. 물론 저자가 건강과 의학 자체를 한낱 웃음거리로 삼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박사가 비판의 화살을 겨누는 대상은 이미 충분히 건강하지만 더욱 건강해지고자 기를 쓰면서 삶에 주어진 유한한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들이다.

    예방의학에서는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하려다가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 내는 경우도 많다. 이를 잘 보여 주는 사례가 바로 PSA 테스트이다(본문 152~156쪽). 전립선 특이 항원(prostate specific antigen), 즉 PSA는 전립선에 암이 있을 경우 그 혈중 수치가 상승한다. 간단한 혈액 검사만으로도 결과를 알 수 있는 이 테스트는 20년 전쯤 도입되어 비뇨기학계에 혁명을 불러오는가 싶었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기대만큼 정확하지는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자전거를 타거나 섹스를 하는 등 전립선에 물리적인 압박이 주어지는 경우에도 PSA 수치가 상승하기 때문이다. 정작 더 큰 문제점은 이 테스트가 발견되지 않아도 괜찮을 암까지 발견한다는 것이다. 이런 미니 암은 서서히 자라기 때문에 대부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차츰 건강한 남자들을 대상으로 PSA 검사를 통해 전립선암을 판별하는 것이 이득보다는 오히려 손해가 크지 않은지 의심한다. 통계적으로, 이 검진과 치료를 통해 목숨을 구하는 1명당 약 20명이 불필요한 수술을 받는다고 한다. 더구나 수술로 전립선을 절제해 버린 환자 5명 중 1명은 수술 후 성불능이 된다. 어떤 경우에는 요실금도 오게 된다. 치료를 받지 않았다면 무난한 생활을 했을 사람들이 오히려 피해를 사서 입은 셈이다.

    유방암 조기 검진 또한 이와 비슷한 사안이다(본문 156쪽). 유방 촬영술로는 암 가운데 10퍼센트 정도를 포착할 수 없다. 그리고 양성 판정이 나온다 해도 그중 90퍼센트는 암이 아니다. 말하자면 이런 조기 검진을 통해 적시에 유방암을 발견하고 치료한 여성 1명당 10명 정도는 불필요한 치료를 받고 있으며, 약 200명은 의심 진단으로 인해 추가 정밀 검사를 받은 다음에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쉰다고 한다.

    ‘코펜하겐 시 심장 연구’에 따르면 35년간 일주일에 2시간 반을 조깅에 할애함으로써 늘어나는 수명은 남성의 경우 6.2년, 여성의 경우 5.6년이다(본문 305쪽). 여기에 투입되는 총 시간을 합산하면 4550시간으로, 약 반년에 해당한다. 지구력 운동으로 6년간 수명이 연장되는 효과를 보려면 어쨌든 반년은 꼬박 달리면서 보내야 하는 것이다. 주어진 시간에서 매일매일 자고 먹고 일하는 시간을 빼면 남는 시간의 족히 반은 달려야 한다는 이야기다. 구트 박사는 그러니 잘 생각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일주일에 두세 번 헉헉대며 뛰는 활동이 기쁨과 행복을 주지 못하고, 지겹고 어렵기만 하다면, 나중에 6년을 더 산다 해도 그 6년 내내 지난 세월을 왜 그렇게 살았는지 후회하게 될 것이라며 말이다. 게다가 새로이 운동을 시작하는 사람은 다칠 위험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결국 뼈와 근육이 ‘강제 집행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서른이 넘으면 인대와 힘줄이 손상되기 쉽다.

    신종 플루가 유행하는 동안 백신을 접종받지 않은 10만 명 중 신종 플루에 걸린 사람은 단 300명뿐이었다. 백신을 접종받은 경우에도 10만 명 중 80명이 신종 플루에 걸렸다. 혈청이 최대 70퍼센트의 보호만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연구에 따르면, 예방접종은 그러잖아도 높지 않은 질병의 위험을 고작 1.4퍼센트 줄여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본문 140쪽). 구트 박사는 오늘날 감염에 대한 걱정이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실제 위험에 막연한 두려움이 더해진다는 것이다. 사실 미생물은 어디서든 우리와 함께한다. 게다가 우리 몸속에도 우글거린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건강한 사람의 몸에는 균이 100조 마리가량 존재한다고 한다. 이런 숫자는 역설적으로 이 세균들이 보통은 우리 몸 안에서 우리와 평화롭게 공존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몸을 청결하게 하는 것은 자기를 미워하는 행동이나 다름없다고 저자는 꼬집는다.

    구트 박사가 현대 의학의 한계를 신랄하게 지적한다고 해서, 모든 의료 행위와 건강을 위한 생활 습관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의학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하며, 개개인이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모두 노화와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건강 강박증에 휩싸인 채 우리의 삶에 주어진 유한한 시간을 온통 의학적 예방 조치와 치료에만 쏟아붓는다면 그야말로 허무한 인생 아닐까. 저자는 우리에게 삶의 의미를 다시 한 번 곱씹고, 주어진 시간을 즐겁게 누리라고 충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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