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뒤를 내다보면서 현대카드가 고민하고 있는 '새로운 방향'의 한 축은 '디지털'쪽이다.
현대카드가 지난 4월 1일, 12년만에 CI 로고를 바꾸게 된 직접적인 계기도 바로 디지털 쪽으로 방향을 트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현대카드 측은 "이번에 CI를 바꾼 것은 디지털 환경에서 현대카드의 리더십을 강화하고, 새로운 환경에 최적화하고자 하는 회사의 전략과 방향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로고의 색상을 블랙으로 하고 위 덮개의 두께를 얇게 한 것은 디지털 쪽에서 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것이다.
또 CI를 바꾸면서 '디지털 현대카드' 로고도 함께 만들어 쓰고 있고 각종 방송광고에서도 현대카드 대신 '디지털 현대카드'가 등장해 앞으로 '현대카드'가 '디지털 현대카드'로 완전히 바뀌는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시대의 흐름이 디지털, 모바일 쪽으로 빠르게 가고 있고 금융분야의 발전을 핀테크(Fintech, 금융과 IT기술의 융합)가 선도하고 있는 현실에서 혁신을 부르짖는 현대카드가 디지털을 강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 디지털 현대카드, 구체적인 그림은 아직 안나와
현대카드의 락앤리밋 서비스
하지만 디지털 현대카드는 앞으로 디지털 쪽으로 가야 한다는 방향만 잡혀 있을 뿐 그쪽으로 가서 뭘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은 아직 그려져 있지 않은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현대카드의 페이샷 서비스
인터넷상에서 보안성을 높이는 락앤리밋이나 가상카드번호 서비스, 온라인 쇼핑 때 결제를 손쉽게 하는 페이샷과 같은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서비스가 나와 좋은 반응을 얻고 있지만 이것이 현대카드가 본격적으로 추진할 디지털 그림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이것은 혁신을 기치로 내걸면서 카드업계를 선도해왔다고 평가받는 현대카드가 디지털 쪽에서는 그렇지 못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른 카드사들은 오래 전부터 모바일 카드를 내놓거나 다른 모바일 결제업체 등과 제휴하면서 디지털 쪽 사업영역을 크게 확장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업계 1위인 신한카드는 최근 낸 보도자료를 통해 앱카드와 유심모바일카드 등 신한모바일카드 누적발급이 천만매를 돌파했고, 모바일카드 이용액도 2015년 3조 8천억원을 기록한데 이어 2016년에는 5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현대카드 역시 모바일 앱카드를 발급하고 있지만 발급매수는 320만매로 이에 훨씬 못미친다.
이에 대해 현대카드측은 보유하고 있는 카드회원수 대비로 보면 50% 수준으로 뒤처진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다른 카드사들은 디지털 영역에서 경쟁적으로 큰 걸음을 내딛고 있는데 반해 현대카드는 그 대열에서 빠져 있는 형국이다.
◇ "디지털도 현대카드만의 페이스로 발전시키겠다"이것은 현대카드가 디지털 쪽과 관련해 다른 카드사업부문 만큼 선도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갖게 하지만 현대카드 측은 이를 부인한다.
"백조가 물위에 떠서 아무 것도 안하고 빈둥대는 것 같지만 수면 아래서 열심히 발을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현대카드도 디지털 쪽으로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다른 카드사가 그리고 있는 그림과는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현대카드는 다른 카드사들이 경쟁적으로 모바일 단독카드를 출시할 때도 따라 나서지 않았다.
여기에는 CEO인 정태영 부회장의 철학과 의지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정 부회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사람들이 디지털과 핀텍을 거대담론으로 유행처럼 말할 때 우리는 조금 차분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중략) 모바일 단독카드는 직감적으로 어색했습니다. 디지털 기술로 해결할 일을 카드발급으로 풀 필요는 없어 보였습니다. 펀더멘탈이 되는 기술부터 생활에 도움이 되는 작은 응용까지 'Digital Hyundai Card'라는 이름 아래 현카만의 페이스로 발전시키고자 합니다." (2015년 10월)
디지털도 현대카드는 나름대로의 철학을 가지고 추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 부회장의 언급으로 보면 락앤리밋이나 가상카드번호, 페이샷은 '생활에 도움이 되는 작은 응용'이라고 할 수 있다.
◇ "새로운 디지털 사업구상 올해 말쯤 가시화될 것"하지만 아직 '펀더멘탈이 되는 기술'이나 '현카만의 페이스'는 나오지 않고 있고 그것이 나오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지금의 고민은 과거의 고민과는 사뭇 다르다. 지금까지는 카드업의 토대 위에서 카드업의 본질을 놓고 고민했다면 지금은 카드업의 토대가 무너지는 새로운 환경 속에서 10년 뒤에 어떻게 살아 남을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을 처절할 정도로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카드업의 토대가 무너지는 새로운 환경'은 결제 때 카드가 필요없게 되는 것으로, 이전의 현금거래가 카드거래로 바뀌는 만큼의 큰 변화이다.
최근 페이시리즈들이 계속 나오고 있고 금융쪽에서도 P2P(Peer to peer, 개인간 거래)나 비트코인(가상화폐)이 점차 활성화되고 있어 이런 상황은 곧 현실로 다가올 것으로 보인다.
현대카드의 한 임원은 이와 관련해 "디지털사업을 준비하기 위해 디지털 신사업실이 가동중이다.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환경에 대비해 외부 전문업체와의 제휴를 포함한 디지털 사업구상을 준비 중에 있다. 하지만 회사의 방향성을 틀어놓는 작업이라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스터디하면서 추진하고 있어서 현 단계에서 대외적으로 공표할 수는 없다. 올해 말쯤 되면 가시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디지털 현대카드의 그림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그것을 위한 준비작업은 활발히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9월 국내 금융사 최초로 미국 실리콘밸리에 사무소를 열고 핀테크 등에서의 선진 금융기술과 기법을 도입해 현대카드 서비스에 접목해 나아가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 "복장과 점심시간 자율화 통해 직원들의 디지털 마인드 고취"현대카드 기업문화를 디지털에 적합하게 바꾸려는 작업도 진행되고 있다.
'뉴 오피스룩'이라는 이름으로 직원들의 복장을 '외부에서 PT할 때 상관없는 수준의 복장'이라는 가이드라인을 주고 자율화시켰다.
또 5월에는 점심시간을 일률적으로 정하지 않고 각 직원이 한 시간의 범위 안에서 본인의 필요에 따라 정할 수 있도록 허용할 방침이다.
복장이나 점심시간의 자율화를 통해 직원들에게 디지털 마인드를 고취시키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오랫동안 카드서비스를 제공하고 받는 수수료 베이스로 일해온 만큼 직원들이 획일화된 기업문화에 익숙해져 있다. 거기서는 말랑말랑한 디지털 관련 아이디어가 나오기 힘든 실정이다. 복장이나 점심시간 자율화는 그런 문화를 바꾸기 위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 카드업의 디지털화 실체 모호…가야할 길 구만리하지만 현대카드가 디지털 쪽으로 가야 할 길은 아직 먼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현대카드가 혁신의 기치 아래 카드업계를 선도하며 쌓아왔던 성벽을 다 허물어 뜨리고 다시 쌓아야 할 수도 있다.
그것은 지난한 작업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 여의도 현대카드 사옥 전경 (사진=현대카드 제공)
현대카드는 현대카드의 CI에 맞게 수년에 걸쳐 건물은 물론 사무공간, 엘리베이터, 심지어 주차장에까지 규격화, 통일화 작업을 마쳤다.
이제 디지털 현대카드를 표방하는 만큼 또다시 수년에 걸쳐 디지털에 맞는 리모델링 작업을 벌여야 할 지도 모른다.
문제는 카드업이 나아가야 할 디지털의 실체가 모호하다는 점이다.
이전에는 카드업의 본질을 찾아 그에 걸맞게 리모델링을 하면 됐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디지털 세상에서 카드업이 나아가야할 방향이 불투명해 찾기도 힘든 것이 현실이다.
혁신의 아이콘인 현대카드가 디지털 현대카드 CI를 내놓으면서 디지털 환경에서 리더십을 강화하겠다고 강한 포부를 드러냈지만 아직 그에 걸맞는 큰 그림을 내놓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