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이번에 구조조정과 함께 내놓은 것이 신(新)산업 투자 대책이다. 부실업종 구조조정을 통해 썩은 살을 도려낸 자리에 신산업이라는 새살이 돋게 하겠다는 것. 총선 직후 정부가 새로운 경제 이슈로 꺼내든 ‘산업개혁’을 설명하는 말이다.
그러나 정부는 아직 어떤 업종이 신산업인지 정해놓지도 않은 채 지원 대책부터 내놨다. 신산업 지원책의 실효성을 논하기도 전에, 초반에 개념이 정립되지 못해 혼란을 겪은 창조경제의 전철을 밟는 것은 아닌지 우려도 나오고 있다.
◇ '최고수준 세제혜택'은 대기업에..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8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열고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이날 정부는 신산업 투자와 구조조정을 통한 산업개혁 방안을 발표했다. (사진=기획재정부)
구조조정과 신산업 육성은 정부가 총선 직후부터 경제 이슈로 밀고 있는 이른바 ‘산업개혁’의 핵심 내용이다.
그동안 우리 경제를 견인해왔던 기간산업들이 성장동력을 잃어가면서, 부실화가 진행 중인 산업을 구조조정 하는 대신 이들을 대신할 새로운 신성장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28일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신산업 투자와 구조조정을 통한 산업개혁 중심의 정책대응방향’을 발표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1조원 규모의 신산업 육성 펀드를 조성하고, 신산업 연구개발(R&D)에는 세법상 최고수준인 30%의 세액공제를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미 신성장 연구개발에 대한 세액공제는 중소기업의 경우 30%를 적용받고 있어, 결국 대기업의 세액공제 수준을 20%에서 30%로 높여주겠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이에대해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사실상 신산업에 연구개발비를 투자할 여력이 있는 곳은 중소기업이라기보다는 대기업”이라고 설명했다.
◇ 창조경제나 신산업이나...그게 그거게다가 세제나 금융혜택을 받게되는 신산업은 어떤 업종인지조차 정해지지도 않은 상태다. 기재부 이찬우 차관보는 “세제와 예산, 금융 지원을 받을 신산업의 범위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고, 상반기 중으로 10개 내외로 정해질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미 정부는 19대 미래성장동력과 민간주도 5대 신산업을 미리 정해놓은 상태. 이것을 다시 10개 내외로 추린다는 계획인데, 결국 아직 개념이나 대상도 정해지지 않은 신산업에 지원 대책부터 내놓은 셈이다.
이런 상황에 대해 일각에서는 초창기부터 개념 정립조차 제대로 안 돼 혼란을 겪은 창조경제의 전철을 밟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2013년 7월 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참여사회연구소,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을 위한 국민운동본부 주최로 열린 '창조경제를 묻는다' 포럼. 창조경제는 초기에 모호한 개념으로 혼란을 빚은 바 있다. (노컷뉴스 자료사진)
국민대 경제학과 조원희 교수는 “창조경제가 바로 신산업인데 그것도 지역에 센터 몇 개 만들고 말았다”며 “이후 옛날 신자유주의 식으로 규제완화와 노동 4법 추진하다가 안 되니까 급조한 신산업을 내세워 (경제정책이) 일관성이 없이 변경돼 왔다“고 비판했다.
더욱이 정부는 신산업에 80조원의 정책자금을 지원한다는 방침도 내놨다. 구조조정 기업에 투입할 정책자금이 모자라 한국은행이 돈을 찍어내 국책금융기관을 지원하는 방안을 놓고 논란이 벌어지는 상황에 80조원이나 되는 정책자금을 어떻게 마련할지도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 산업개혁 실탄 어디서 마련할지도 논란
정부는 이날 구조조정 자금 마련 문제와 관련해서는 국책금융기관에 적정규모의 자본확충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추상적인 방침만 내놨다.
그러나 같은 날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선별적 양적완화가 필요하다’는 발언을 내놓으면서 논의는 정부의 재정 출자보다는 한국은행이 돈을 찍어내 정책자금을 마련하는 쪽으로 무게가 실리고 있다.
그 중에서도 국회에서 한국은행법의 개정이 필요한 산업은행채권 매입을 통한 출자보다는, 법 개정 없이도 가능한 수출입은행에 대한 한국은행의 자본출자 방안이 우선적으로 검토되는 분위기다.
그러나 LG경제연구원 이한득 연구위원은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이용하는 방식은 경제전체 운영에 영향을 주게 된다”며 “정부가 기금을 따로 마련해서 출자를 하는 방식이 더 좋을 것 같다”고 신중론을 폈다.
조원희 교수도 “양적완화는 제로금리가 되면 시작하는 것이고 지금은 양적 완화를 할 단계도 아니다”라며 “이름만 양적완화라고 붙이고 과거에 답습했던 부실기업에 대한 저금리 지원을 반복하는 것일 뿐”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