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윤하(사진=미래광산 제공)
싱어송라이터 주윤하는 꽤 흥미로운 행보를 걷고 있다. 그는 지난 2005년 결성한 모던록 밴드 보드카 레인(Vodka Rain)의 리더이자 베이시스트로 수년간 활동했다. 주윤하라는 이름으로 솔로 앨범을 발표하기 시작한 건 2011년 밴드가 잠정휴식기에 들어간 이후부터다.
"솔로 활동에 대한 생각은 없었어요. 노래 부르는 걸 즐기는 편이 아니었고, 노래방도 안 가는 스타일이었죠. 그런데 보컬이 유학을 떠나게 되면서 밴드가 휴식기에 들어가게 됐고 '난 이제 뭘 해야 할까' 고민을 시작했죠. 일단 내 목소리에 맞춰 노래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출발했어요. 당시 심적으로 힘들었고, 그걸 솔직하게 표현하다 보니 전반적으로 우울하고 딥한 앨범들이 나왔고요."
2011년 발표한 싱글 '헤이트(Hate)'가 새로운 도전의 시작이었다. 밴드 시절 음악과는 사뭇 다른 서정적인 분위기의 발라드 곡. 나지막히 읊조리는 그의 목소리는 잔잔한 울림이 있었다. 주윤하는 이후 첫 솔로 정규 앨범 '온 더 웨이 홈(on the way home)', EP 앨범 '투 어스(to us)' 등을 발표하며 차근차근 기반을 쌓았다. 여기서 재밌는 건 그가 2014년 한국 최고의 재즈 뮤지션들과 손을 잡고 첫 재즈 앨범 '재즈 페인터스(Jazz Painters)'를 발표, 또 한 번 변신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어릴 적부터 음악을 공부했던 게 자연스럽게 묻어나온 것 같아요. 사실 당시 재즈씬에서는 '네가 왜 재즈를 해?'라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었죠. 그런데 전 재즈 음악을 하는 데 있어 어려움이 없었어요. 제가 가지고 있는 CD 100장 정도가 재즈 음반이더라고요. 그만큼 제 내면에 재즈 음악이 남아있었던 거죠."
우려의 시선도 있었으나 주윤하는 재즈 앨범 발매 후 좋은 평가를 얻었다. 같은해 신스팝(synth pop) 장르의 음악을 선보이며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주윤하는 그렇게 꾸준히 결과물을 내놓으면서 동시에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주윤하라는 사람이 앞으로도 꾸준히 음악 활동을 할 건데, 한 가지 콘셉트로만 가면 사람들이 좋아할까요? 뭔가 특색이 있어야 관심을 기울일 거라고 생각해요. 전 저만의 개성을 넓은 스펙트럼으로 잡았어요. 일회성으로 끝나는 도전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다양한 색깔의 음악을 들려드리려고요. 장르는 다르지만, 관통하는 하나의 감성은 있어야겠죠. 언젠가 제가 인정받는 뮤지션이 됐을 때 지금까지의 디스코그라피가 중요한 이력으로 남을 것 같아요."
최근 세상에 나온 정규 2집 '카인드(Kind)'는 그런 주윤하의 넓은 음악적 스펙트럼을 확인할 수 있는 앨범이다. 1년 전부터 전반적인 콘셉트를 짰고,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녹음작업을 시작했다. 여기에는 모던한 사운드에 템포감이 느껴지는 '굿바이(Goodbye)', 토마스 쿡이 함께한 경쾌한 넘버 '고!(Go!)', 세련된 도시적 사운드와 그루브를 느낄 수 있는 '올라잇(Alright)', 서정적 발라드 '소년'과 '같이 있자' 등 총 10곡이 수록됐다.
"주윤하 음악의 집약체라고 할까요. 앞으로 이런 감성, 장르, 화법, 어법으로 좀 더 많은 대중과 호흡하고 싶어요. 저만의 색깔, 진정성을 유지하면서도 조금 더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앨범을 만드려고 노력했고요. 앨범명도 기억하기 쉽도록 툭 던지듯이 '카인드'로 정했어요. 뭔가 불친절하면서도 친절하죠. (웃음)."
소속사 관계자의 말을 밀리자면, '카인드'는 주윤하의 팬이라면 놓칠 수 없는 종합선물세트다. 특히 타이틀곡 '에필로그'에는 주윤하가 표현하고자 했던 이번 앨범의 음악적 정체성이 잘 녹아있다.
"사랑이든 이별이든 꿈이든 아무리 잊으려고 노력해봐도 본인의 의지로 잊을 수 없는 게 있잖아요. '에필로그'는 결국 시간이 잊어주고 기억이 잊어져야 잊을 수 있다는 걸 이야기하는 곡이죠. 시간이, 기억이 우리를 잊을 때까지 덤덤히 기다리자고 하는."
보드카레인 앨범 참여를 계기로 인연을 맺은 모델 장윤주는 이번 앨범 소개글을 직접 쓰며 의리를 과시했다. 장윤주는 '에필로그'에 대해 "촉촉하고 부드럽고 편안했다. 지금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미소를 짓게 하는 곡이었다"며 주윤하와 주윤하의 음악에 대한 무한애정을 드러냈다.
주윤하 자신도 이번 앨범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 그는 "'카인드'는 그동안 사운드적으로 아쉬웠던 부분이 모두 해결된 앨범"이라며 기뻐했다.
"제작여건의 한계 때문에 시도하지 못했던 부분이 많아요. 이번엔 좋은 파트너를 만났고, 덕분에 이전보다 훨씬 좋은 녹음실에서 작업할 수 있었죠. 그런 면에선 상당히 자신감 있어요. 제 음악을 꾸준히 들어주신 분들이라면 주윤하가 지금껏 표현하고자했던 사운드가 이런 것이었구나 하고 느끼실 겁니다."
팬들은 주윤하를 '음악 모범생'이라고 부른다. 솔로 활동을 시작한 2011년부터 지금까지 매년 새 앨범을 발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도를 주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음악 모험생'에도 가깝다. 그는 "주윤하라는 사람이 확고한 입지를 구축하는 아티스트가 되어가는 과정을 바라보는 것 자체로 즐거웠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굉장한 뮤지션으로 성장할 자신이 있다"며 "주윤하라는 뮤지션의 색이 더욱 짙어질 수 있도록 2집 활동을 전방위에서 활발히 펼칠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숨 가쁘게 흘러가는 디지털 음원시장에서 한 방을 터뜨리는 것도 물론 좋겠죠. 그런데 전 꾸준함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려면 지구력이 필요할 테고, 끊임없는 결과물을 내야 하겠죠. 보드카레인 시절부터 착실히 나름의 영역을 구축해왔고, 계속 지켜봐 달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주윤하라는 뮤지션이 순간의 인기나 성공을 좇는 아티스트가 아니라는 걸 보여드리겠습니다."
한편 주윤하 정규 2집 '카인드'는 아날로그적인 감성과 접근법을 중시한다는 그의 판단에 따라 4월 29일 CD로 먼저 발매됐다. 5월 6일 디지털 음원 7곡을, 이어서 5월 13일에 추가로 2곡을 공개하며, 나머지 한 곡의 오픈 일정은 아직 정하지 않고 있다. 주윤하는 6월 18일 서강대메리홀에서 단독 공연을 열고 신곡 무대를 선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