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자금 지원을 위한 국책은행 자본확충 문제가 정부와 한국은행의 현격한 입장차로 진통이 예상된다.
특히 한은은 구조조정을 위한 국책은행 자본확충에는 적극 협조하겠지만 부실기업 구제금융의 책임을 떠안는 형식이 돼서는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부실기업에 지원할 구제금융의 재원 조달은 정부 재정의 몫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그러나 국회를 통과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부실에 대한 책임 규명 등에 대한 논란이 불가피하다. 뿐만 아니라 재정건전성에도 악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기획재정부는 부담스럽다.
대신 보다 손쉬운 방법으로, 한은이 돈을 찍어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에 구제금융을 지원하도록 압박하고 있다.
여기에 장기간 저물가가 지속돼 발권력을 동원할 수 있는 명분과 여지가 커지면서 중앙은행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논리가 힘을 얻게 됐고, 이른바 '한국판 양적완화'라는 용어로 국책은행에 구조조정 자금을 지원하는 방안이 논의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문제는 구제금융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정부는 한은이 돈을 찍어 국책은행에 출자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산업은행 이대현 정책기획부문 부행장은 지난달 "한국은행이 산은에 구조조정자금을 지원하게 된다면 자본을 확충해주는 방식과 산은이 발행하는 산업금융채권을 매입하는 방식이 있으며, 구조조정을 도와주기 위한 것이라면 자본확충이 돼야 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한은은 구조조정을 위해 필요한 지원은 하겠다면서도 꼭 발권력을 동원해야 하는 급박한 상황이라면 향후 돈을 회수할 수 있는 대출 방식이 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 5일 ADB(아시아개발은행) 회의 출장 중 기자들에게 "중앙은행이 손해를 보면서 국가 자원을 배분할 권한은 없고, 한은법상 확실한 담보가 있어야 발권력을 동원할 수 있다"며 " 손실을 최소화한다는 원칙에서 보면 아무래도 출자보다는 대출이 부합한다"고 말했다.
무상으로 국책은행에 돈을 주는 방식이 아니라 담보설정 등을 통해 돈을 돌려받을 수 있는 대출 방식이 바람직하고, 이것이 발권을 위한 법논리나 중앙은행의 원칙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이는 중앙은행이 특정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모든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가는 발권력을 동원할 권한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실제 한은법에도 확실한 담보가 있는 경우에만 발권력을 동원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특히 한은이 부담을 느끼는 것은 돈을 찍어 출자할 경우 아무런 이유 없이 국책은행의 손실 책임을 중앙은행이 모두 떠안게 된다는 점이다.
정부는 국회동의 과정을 피하면서, 부실기업 구제 금융에 따른 손실책임을 떠넘길 수 있어 한은의 출자방식을 선호하지만 중앙은행의 원칙과 국민정서를 고려해야 하는 한은으로서는 이를 섣뿔리 수용하기 어려워 해법을 찾기까지 난항이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