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제19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가 열리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일하는 국회법'과 '행정부 마비법'의 충돌인가. '유승민 사태'로 불린 지난해 7월 국회법 파동의 데자뷰(deja vu)인가?
19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통과된 '상시 청문회법'을 둘러싸고 정치적 논란이 뜨겁다. 당장 박근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여소야대가 된 20대 국회 개원 초반부터 여야간 정쟁으로 시끄러워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여기에 새누리당 내부적으로는 친박과 비박의 계파갈등이 더욱 노골화할 전망이다. 비대위 구성문제로 코너에 몰린 정진석 원내대표가 국회의원 신분이 아닌 관계로 빚어진 원내지도부 공백상황이 또다시 청와대를 자극한 결과가 된 셈이다.
'상시 청문회법'은 19일 본회의 표결에서 재석 222명에 찬성 117표, 반대 79표, 기권 26표로 통과됐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야당을 제외하고 찬성표를 던진 의원들의 면면이 시선을 끈다.
정의화 의장과 새누리당 탈당파인 유승민, 강길부, 안상수 의원, 그리고 당내 유승민계인 조해진, 이종훈, 민병주, 윤영석 의원 등이 그들이다. 사실상 이들의 찬성표가 법안 통과에 결정적 요인이 됐다.
새누리당 친박계를 중심으로는 "정의화 의장 주연, 유승민 의원 조연의 국회법 반란", "공천 탈락에 대한 보복 반란", "국회법으로 당한 유승민계가 국회법으로 복수했다"는 등의 평가가 나오고 있다.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이 언급한 이른바 '배신의 정치'의 연장선에서 향후 탈당파 의원들의 새누리당 선별 복당의 기준이 될 수도 있다.
제19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가 열린 19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와 무소속 유승민 의원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그러나 무엇보다 '상시 청문회법'에 청와대와 새누리당내 친박계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박근혜 대통령의 조기 레임덕과 연관돼 있다.
왜냐하면 말그대로 수시로 상임위 차원의 청문회가 열리게 되면 정부 시책과 잘못에 대한 국회의 견제와 감시가 강화되고, 더욱이 여소야대의 정치지형에서 20대 국회가 개원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존 국회법에서 청문회는 법률안 심사를 위해 의원 3분의 1의 요구가 있거나 중요 안건 심사를 위한 과반수 요구, 그리고 국정감사 및 국정조사에 필요한 경우에 열리게 돼있다.
하지만 개정안에 따르면 중요 안건은 물론 상임위 소관 현안이면 과반수 의결로 청문회 개최가 가능해 관련 증인, 참고인 불러 현안 조사를 할 수 있게 된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 어버이연합 지원 의혹, 세월호, 정운호 게이트 청문회가 잇따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청와대 내부적으로는 상시 청문회법에 대해 거부감을 나타내면서 '행정부를 마비시키는 법안'으로 즉시 개정돼야 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또 이 법안은 20대 국회 운영에 관한 법률인데 19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졸속으로 처리된 만큼 20대 국회 개원 즉시 개정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다. 청와대는 내부 회의를 거쳐 조만간 공식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새누리당 김도읍 원내수석부대표는 "3권분립 원칙에 반하는 법개정에 대해 용인할 수 없고, 20대 국회가 개원하자마자 법률안에 대해 반드시 재검토가 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맞서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는 20일 "상임위 차원의 청문회를 남용하지 않을 것이며, 너무 우려하지 말라"면서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반발을 의식한 듯 수위를 조절했다.
그러면서 "가습기 청문회, 어버이연합 청문회는 하나의 상임위가 아닌 여러 상임위에 걸쳐 있는 현안이 많다"며 "상임위별 청문회는 정책 청문회로 진행하고, 권력형 비리 등은 국회 차원의 특위를 만들어서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반면에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20대 여소야대 국회에서는 각 상임위 청문회를 통해 정부의 잘못된 시책에 대해 강력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공세를 예고하며 더민주와 온도차를 보였다.
법안을 상정한 정의화 국회의장은 "관료들이 더 철저하게 국민을 위한 정책을 펼치고 정해진 정책들을 공공을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하는 데 이 법안이 필요하다"고 맞대응했다.
관심은 박근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여부에 모아진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6월 국회의 정부시행령 수정권한을 강화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적이 있다.
헌법 제53조에 따르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법률안은 정부로 이송돼 15일 내에 대통령이 공포하거나 재의를 요구하지 않으면 법률로 확정된다.
그런데 이번의 경우는 대통령의 거부권(재의요구) 시한내에 19대 국회 임기가 끝나는 것이 변수가 되고 있다.
즉, 박 대통령이 19대 국회 임기가 만료되는 오는 29일까지 법안을 공포하지 않고 사실상의 거부권을 행사하게 되면 법안은 자동폐기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29일 이후 공포시한까지 닷새가 남아 있다.
따라서 이 때 박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20대 국회가 임기를 시작한 이후여서 20대 국회가 재의결해야 하는 것인지, 19대 국회 임기가 만료된 만큼 폐기된 것인지에 대한 법률검토가 필요하게 된다.
대통령의 법안 거부권 행사 여부에 따라 정국의 풍향이 달라지게 되겠지만 여소야대 20대 국회에서 청와대 의지가 관철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다만 한가지,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의 기능 가운데 하나인 행정부에 대한 견제와 감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청와대가 '행정부 마비법'이라고 주장하더라도 많은 국민들은 '일하는 국회법'으로 받아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상시 청문회법'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4.13 총선에서 나타난 민심을 다시 한 번 거스르는 우를 범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