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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사고

    '빨대'에 웃음짓던 홍만표, 부메랑 되나?

    [이 사람의 키워드] 2009년 홍만표 수사기획관의 일화

    7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초구 대검찰청에 출석해 조사를 받고 있는 가운데 조사실이 위치한 대검 11층 창문에서 홍만표 당시 대검 수사기획관 웃고 있는 모습. (사진=자료사진)

     

    "저를 둘러싼 각종 의혹에 제가 감당할 부분은 제가 감당하겠습니다. 다만 저 외에, 사건 의뢰인이랄까 제 주변의 가족들이 저로 인해서 많은 상처를 입었습니다. 제가 그 부분도 모두 감당을 하고 제가 모든 걸 감당하고 그렇게 가겠습니다."

    특수통 검사에서 백억대 자산가로 변모한 홍만표 변호사는 가족과 주변사람들을 챙겼다.

    지난 27일, 자신이 근무하던 검찰청 특수부 조사실에 피의자로 끌려오면서 그는 가족들의 상처를 더 이상 헤집지 말아달라고 에둘러 요청한 것이다.

    2011년 검찰을 떠나면서도 "이제 한 가정의 아버지로 남편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한 홍 변호사였다.

    그래서였을까. 바람 잘 날 없는 검사 생활을 끝내고 함께 평온과 여유를 맛보려던 가족들에게 칼날이 들여지는 게 영 내키지 않았을 것이다.

    이미 언론은 홍 변호사 개인 비리를 넘어 그 부인과 처남의 재산 증식 의혹까지 탈탈 털어내고 있는 중이다.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변호사 폭행에서 시작된 사건이 여기까지 온 데는 그야말로 먼지떨이식 의혹 제기가 큰 역할을 했다.

    검찰과 언론은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얽힌 뿌리를 캐냈는데, 대개 언론이 보도하면 검찰이 암묵적으로 인정을 하는 식이다.

    물론 큰 줄기는 수사권을 쥔 검찰이 캐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수사의 기밀성 원칙'을 뚫고 언론이 시시콜콜한 수사 상황을 앞다퉈 중계방송할 수 있었던 건 이른바 '빨대' 때문이다.

    ◇ 빨대 보며 웃던 홍만표, 7년 후 빨대들의 먹잇감으로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 로비 의혹에 연루된 홍만표 변호사가 2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언론계에서 '빨대'란 은어는 숨겨진 취재원을 말하는데, 그 빨대의 존재가 가장 논란이 됐을 때가 故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 무렵이다.

    수사가 한창이던 2009년 5월 9일, 당시 홍만표 대검찰청 수사기획관은 기자들에게 색색의 빨대 한묶음을 꺼내보였다.

    '검찰 수사를 방해한 빨대를 찾기 바란다'는 편지와 함께 경상북도에 사는 한 여성이 대검찰청으로 보낸 것이라 했다.

    빨대를 들고 온 까닭을 설명하며 그는 소리내 웃었지만 그로부터 14일 후 그 빨대들의 장난에 노 전 대통령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600만 달러를 수수했다는 의혹을 넘어 '명품 시계를 받았다 문제가 되자 논두렁이 버렸다'는 식의 거짓 전언 그리고 이를 냅다 기사로 써버리는 언론의 보도 행태가 초래한 결과였다.

    홍만표 변호사는 이때 "노 전 대통령 측이 기분 나빴을 것을 충분히 이해한다. 검찰 관계자가 그런 말을 흘렸다면 인간적으로 형편없는 빨대다"라고 했지만, 끝내 이를 색출해내지는 못했다.

    오히려 그는 "언론이 먼저 알고 있으니 부인을 못 하겠다"며 빨대-언론의 공작에 장단을 맞췄다.

    오죽 속상했던지 노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맡았던 문재인 의원은 저서 '운명에서 "검찰이 자신 있는 부분은 공식브리핑으로, 다른 부분은 '수사관계자'로 또 다른 어떤 부분은 '익명의 검찰관계자'로 내보냈다, 검찰이 줄곧 피의사실 공표를 해왔지만 수사기획관이라는 사람이 노골적으로 매일 오전 오후 브리핑한 예는 없었다"고 일갈했다.

    그 수사기획관이 이제 '파렴치 변호사'로 몰려 빨대들의 먹잇감이 됐다.

    어쩌면 7년 전 웃으며 바라봤던 빨대가 이제는 홍 변호사에게도 흉물스럽게 느껴질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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