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관리 등용 시험인 과거제도는 처음 수나라에서 귀족들의 세력을 억누르고 천자의 권위를 강화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중국에서는 관리 등용을 선거(選擧)라고 일컫는데, 시험에는 여러 종류의 과목이 있었으므로 ‘과목에 따른 선거’, 그것을 줄여 과거(科擧)라는 단어가 만들어졌으며, 이 제도는 시대가 변하고 이민족의 왕조(몽골족이 세운 원 왕조와 만주족이 세운 청 왕조 등)가 들어서서도 폐지되지 않고 청 대(淸代)까지 1,300여 년을 이어온다.
귀족 세력을 억누르려는 목적이 있었다지만, 신분제 사회에서 가문이나 혈통이 아닌 개인의 능력을 중심으로 인재를 뽑았다는 사실은 그 제도에 깔려 있는 매우 진보된 사고방식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특히 답안지를 채점하는 과정에서 심사자는 수험자를 알아차릴 수 없도록 답안지의 사본(등사 담당 관리들이 수험생의 답안지를 베껴 심사관에게 전달)만 가지고서 점수를 매겨야 했다. 수험생의 이름이 쓰인 부분은 풀로 봉해 알 수 없고 오직 좌석 번호만 보여진다. 물론 과거를 치를 수 있는 자격에는 일정 정도 한계가 있었다. 자신을 포함하여 할아버지, 아버지가 특정 천직에 종사했던 적이 있으면 안 된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이 경우만 제외하면 사농공상을 따지지 않았다. 시험에만 합격하면 누구라도 관리가 될 수 있었다.
중국의 과거제도가 수나라에서 처음 만들어질 당시 유럽은 봉건 제후가 할거하던 시기였으며, 과거제도가 완비되는 송 대에 유럽은 곳곳에서 전쟁을 치르던 때였다. 학문이 보급되고 그 학문적 성과를 이룬 뛰어난 인재를 선발한다는 생각은 동일한 시기에 유럽에서는 상상조차 못하던 일이었다. 문치주의가 발달했던 시대답게 송나라는 과거를 통해 관료가 된 이들이 정치를 좌지우지했다.
신간 '과거, 중국의 시험지옥'은 송 대에 체제가 잡힌 뒤 가장 완성된 형태로 발달한 청 대의 과거제를 다룬다. 무엇보다 많은 사료가 남아 있고 수필이나 소설 등 다양한 자료가 남아 있어 과거제도와 관련된 에피소드도 풍부하다. 시험장의 풍경과 시험을 치르는 수험생의 심리, 답안을 심사하는 과정, 거기에 더해 시험 비리와 관련된 갖가지 이야기들, 합격자 발표식의 장엄한 모습 등 과거제도에 대한 역사적 연구를 넘어 풍성한 이야깃거리를 가득 전해준다.
저자 미야자키 이치사다는 과거제도의 실상을 아주 세밀하게 서술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의 이상과 현실, 이점과 폐해, 중국사에 미친 영향도 조목조목 서술한다. 주관을 섞지 않고 있는 그대로 서술하겠다는 의도로 써내려갔으나 맺음말에 이르러서는 과거에 대한 평가를 날카롭게 내놓고 있다.
저자가 생각하는 과거제도의 큰 특징 중 하나는 교육을 수반하지 않는 관리 등용 시험이었다는 점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중국의 학교교육이 부실해질 수밖에 없었다고 진단한다. 지방과 중앙에 국립학교를 세우긴 했으나 정부는 학교와 교육에 큰돈을 들이지 않고 민간에만 맡겨둔 채 오로지 유능한 관리를 어떻게 뽑는가에만 관심을 기울였다. 그러면서 여러 복잡한 시험 절차와 공정한 평가제도를 갖춰 나갔다.
그러나 아무리 공정함을 기한다 해도 폐단은 있는 법. 수백 년을 이어져오면서 부정이 생겨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문제는 기강을 바로잡고 시험장 분위기를 일신하는 등 여러 조치를 취했음에도 근본적인 개혁을 이뤄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시험과 시험 사이에 추가 시험을 계속 늘림으로써 지붕 위에 또 지붕을 얹는 꼴로 개혁이 진행되었을 뿐이었다. 청나라 과거에서 제일 마지막 시험인 진사에 합격하기 위해서는 몇 차례의 학교 시험을 통과하여 생원 자격을 획득하고 난 뒤 본격적인 과거 시험을 일곱 단계(과시→향시→거인복시→회시→회시복시→전시→조고)나 치러 합격해야 했다. 그리하여 20대에 진사의 영광을 얻는 사람은 굉장히 운이 좋은 것이고 30대도 늦지 않은 나이로 인식되었다.
교육제도의 쇄신 없이 운영되는 인재 선발은 시대가 발달하고 사회가 진보하는 속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 인재가 경서의 암기나 시와 문장을 얼마나 잘 짓는가에 국한된다면, 밀려드는 서구의 발달된 문물에 대적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저자는 노신의 '공을기(孔乙己)'라는 소설 속 주인공을 소개하며 과거 시험에 목숨을 건 늙은 지식인의 비참한 생활 모습을 통해 과거제도의 말로를 보여준다.
천년도 훨씬 전에 중국에서는 이미 시험지옥 현상이 나타났다. 젊은이들은 시험에 온통 인생을 걸었다. 40만 자가 넘는 경서를 통째로 외우고, 수천, 수만 명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관리가 되기 위해 과거의 좁은 문을 향해 들어갔다. 몇 년이고 몇 십년이고 시험에만 목매달았다. 그도 그럴 것이 과거에서 합격하는 것은 최고의 영광과 명예를 얻는 일이자, 가장 유리한 직업을 갖는 것임을 뜻하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1,300여 년을 이어온 과거는 1904년의 시험을 마지막으로 완전히 폐지되었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나 중국의 과거제를 연구한 일본인 학자 미야자키 이치사다는 자신이 살고 있는 1960년대 일본에도 중국의 그 옛날 과거제도와 비슷한 시험지옥을 젊은이들이 겪고 있다고 말한다. 좋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그에 걸맞는 대학에 진학하려 하고, 그 대학에 입학할 가능성이 높은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그 고등학교를 위해 중학교를, 그 중학교를 위해 초등학교를, 심지어 유치원에까지 경쟁이 확대되는 사회라고 개탄한다.
저자가 이 책을 펴낸 1963년 이후 또 반세기가 지난 한국의 오늘날 모습도 중국·일본의 시험지옥과 다를 바 없다. 선행학습이니 뭐니 하면서 아이들은 이런저런 학원에 끌려다니고 있다. 비단 청소년뿐인가. 대학생도 마찬가지다. 입시 지옥을 넘어서면 취업 시험의 지옥이 기다린다. 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개혁을 해나가야 할까? 지금의 우리도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저자는 50여 년 전에 일본의 시험지옥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정말로 교육에 열성적이라면 좀 더 교육을 소중히 하는 국회의원과 나라의 수장을 뽑아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