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암사의 나스메 소세키(1867-1916) 장편소설 전집이 4차분 '마음', '한눈팔기', '명암' 출간으로 마침내 완간되었다.
◈'마음'
‘나’는 가마쿠라의 한 해수욕장에서 ‘선생님’을 만나 한눈에 알 수 없는 매력을 느낀다. 그러나 선생은 타인과 거리감을 두고 ‘나’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나’의 적극적인 태도로 두 사람은 마음을 터놓는 사이가 되지만 ‘나’가 아버지의 병환 때문에 고향에 내려가 있는 사이 선생은 ‘나’에게 유서를 보내고 목숨을 끊는다. 선생의 유서에는 왜 그가 스스로 마음의 문을 굳게 닫게 되었는지가 담겨 있었다. 선생은 학생이었을 때 친구인 K와 둘이서 하숙집의 딸을 좋아했는데 친구를 속이고 그녀를 가로채었다. 이를 알게 된 K가 자살하자 이후 선생은 줄곧 절망에 빠져 살게 되었다.
소세키는 '마음'을 통해 타인과의 관계에서 오는 자괴감, 근대를 지탱하던 ‘시대의 윤리’ 등 인간이 가지고 있는 심연을 묘사했다. 그리고 자기 안에 심연을, 즉 자아를 가진 인간으로서 타인과 마주하기 위해 함께 끌어안아야만 하는 고독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지닌 고독의 괴로움, 변화를 감내하는 불안감. 이는 근대의 막이 열리던 시기에 급속하게 사람들에게 찾아온 인식 변화이며, 이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기조이기도 하다. 소세키는 '마음'에서 스스로를 포함하여 인간 존재 일반을 증오하는 선생님이라는 인물을 통해 현대의 우리 모습을 투영했고, 나아가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 인생의 의미, 그리고 ‘개인’이라는 큰 문제의 해답을 위한 안내자가 되어준다.
'마음'은 모두 세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장에서는 ‘나’와 선생님이 처음 만나 관계가 발전되는 과정을, 두 번째 장에서는 아버지가 위독하여 고향에 내려가게 된 ‘나’와 가족 간의 관계를 그렸다. 그리고 세 번째 장은 선생님이 자신에게 찍힌 과거의 낙인과 그것이 스스로에게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에 대해 고백하는 ‘유서’로 구성되어 있다.
내 눈은 그의 방 안을 한번 둘러보자마자 마치 유리로 만든 의안처럼 움직이는 능력을 상실했지. 그 자리에 못 박히고 말았네. 그런 상태가 질풍처럼 나를 통과한 뒤 나는 다시 아, 큰일 났다, 하고 생각했지.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검은빛이 내 미래를 관통하고 한순간에 내 앞에 놓인 전 생애를 무섭게 비추었네. 그리고 나는 덜덜 떨기 시작했지.
_ 본문에서
◈'한눈팔기'
겐조는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낯이 익은 한 남자를 우연히 만난다. 집에 돌아와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는 어릴 때 자신을 입양했다가 다시 파양시킨 양부였다. 그는 이후로도 겐조의 집에 찾아와 주기적으로 돈을 청하고, 싫은 기억밖에 없는 양모까지 만나게 된다. 게다가 겐조에게는 양부 외에도 천식을 앓는 누이, 형편이 어려운 형, 그리고 가세가 기울어 보증을 서달라는 장인도 있다. 겐조의 주변에는 금전적인 도움을 청하는 사람밖에 없어 줄곧 쓸쓸함을 느끼지만 그 자신도 도무지 솔직하지 못하고 냉담한 사람이기에 주위 사람들을 밀어내기만 한다. 모순으로 가득 찬 겐조는 늘 고독을 느낀다.
'한눈팔기'는 나쓰메 소세키의 문학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소세키가 ‘슈젠지의 대환’을 겪고 곧 죽음이 다가올 것임을 직감하게 되었을 때 자신의 인생 경험을 가감없이 녹여낸 사소설이기 때문이다. 그가 첫 소설인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쓸 때인 1904년 무렵을 배경으로 소세키와 주인공 겐조의 삶이 유난히 닮아 있어 당시 작가의 생애와 문학 세계를 이해하는 데에 주요한 바탕이 되는 작품이다. 나아가 일상생활 속에 혼재하는 갈등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인간의 심리를 치밀하게 묘사함으로써 당시의 대표적 지식인 나쓰메 소세키의 무력함이 드러난다.
겐조의 마음속에는 죽지 않은 아내와 튼튼한 갓난아기 외에 면직 당할 것 같으면서도 아직 당하지 않고 있는 형이 있었다. 천식으로 죽을 것 같으면서도 아직 죽지 않은 누나가 있었다. 새로운 일자리가 들어올 것 같지만 아직 들어오지 않은 장인이 있었다. 그 밖에 시마다도 오쓰네도 있었다. 그리고 자신과 이 사람들과의 관계가 모두 아직 정리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도 있었다.
_본문에서
◈'명암'
쓰다와 노부는 이제 막 결혼한 신혼부부임에도 도무지 거리감이 좁혀지지 않는다. 쓰다는 아내의 눈빛에 아무 이유 없이 돌연 거부감을 느끼기도 하고, 노부는 남편을 자신에게 끝없는 희생만 요구하는 ‘까다로운 남자’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두 사람은 서로에게 이해를, 사랑을 갈구한다. 쓰다는 쓰다대로 아집에 사로잡혀 아내는 물론이고 어릴 때 자신을 키워주다시피 한 작은아버지 일가와도 화목하지 못하고, 노부는 또 노부대로 결혼하기 전에 함께 살았던 고모네 가족에게 자기 부부의 허물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한다. 그 밖에도 줄줄이 등장하는 쓰다의 옛 연인 기요코나 친척, 지인들은 모두 서로의 마음을 알지 못한 채,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해 인정하고 인정받기 위해 고투한다. 인간의 실존을 둘러싼 문제가 응축되어 작품 전반에 긴장감이 흘러넘친다. 이러한 절박한 상황이 작품이 끝날 때까지 계속되면서 소세키는 관계의 지옥이라는 것을 작품의 주제로 삼아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명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저마다 힘껏 사랑받기 위해 노력한다. 가슴이 답답할 정도로 서로를 잘 모르면서도 사랑받고 인정받기 위해, 즉 상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들의 욕구는 끝까지 채워지지 않는다. 소세키는 그들의 심리를 치열하게 묘사하고 감정선을 세밀하게 좇아나간다.'명암'은 다른 소세키의 작품들과는 다르게 주인공 한 명의 심리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다양한 등장인물들의 관점을 드러내어 다면적인 세계를 형성했다. 작품 속에서 마주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생기는 오해, 기대의 차이, 그리고 그것이 인간관계에 미치는 영향들이 현대인들의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고독감을 어루만진다.
사람 사이에 몇 번이나 되풀이된 과거의 장면이 쓰다에게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 무렵의 기요코는 쓰다라는 이름의 한 남자를 믿고 있었다. 그러므로 모든 지식을 그에게 의존했다. 온갖 의문의 해결을 그에게 요구했다. 알 수 없는 자신의 미래를 내걸고 그에게 기댄 것처럼 보였다. 따라서 그녀의 눈은 움직여도 조용했다. ……자신이 있기에 이 눈도 존재하는 거라는 생각까지 했다.
_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