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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학술

    요즘 소설에서 공감과 연민을 엿보다

    강유정 비평집 '타인을 앓다'

     

    평론가 강유정의 비평집 '타인을 앓다'가 출간되었다. 이번에 출간된 '타인을 앓다'는 공감과 연민을 키워드로 이 시대 한국 문학의 동시대성을 규명한다. 이번 평론집에는 2008년부터 2015년까지 쓴 글 중 31편이 실렸다.

    이 책의 1부에서는 2000년대 이후 소설들에서 발견되는 특징을 통해 우리 사회의 동시대성을 규명한다. 1부 ‘불면의 꿈’에서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통용되고 있는 소설의 ‘재미’를 분석하는가 하면, 젊은 작가들의 눈이 머무르는 지점과 그들이 탐구하는 대상과 목적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한편 최근 한국 소설은 재미없다는 평가에 대한 비평적 입장, 동시대소설의 주요한 서사 소재로 자리 잡은 재난 서사에 대한 분석뿐만 아니라 2000년대 한국의 출판 시장이 만들어 낸 기획형 상품, 즉 이적 · 차인표 · 구혜선 등 이른바 ‘연예인 소설’에 대한 분석을 통해 우리 시대의 사람들이 욕망하는 것을 포착하기도 한다.

    각론에 해당하는 2부에서는 윤고은, 황정은, 김사과, 박솔뫼 등 2000년대 중반 이후에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선보인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디테일하게 살핀다.

    '타인을 앓다'는 문학 작품 읽기를 취미로 삼는 독자부터 직업적으로 작품을 읽는 ‘문학인’들까지, 2000년대 이후 소설의 경향과 작가들의 고민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비평집이다.

    책머리에서

    나의 두 번째 평론집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단어는 타인, 고통 그리고 연민이다. 정리해 두고 보니, 지난 8년의 시간 동안 매달렸던 게 이 단어에 들어차 있다. 그런데, 막상 타인의 고통에 대해 연민한다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이며 또한 내게 허락된 능력일까라는 의구심과 절망에 빠져 버렸다. 그래서 글을 모아 두고도 서문을 쓰지 못했다. 타인의 고통에 완벽한 공감을 느끼는 것이 연민이라면 과연 나는 타인을 진정으로 연민했던가? 하지만, 다시 한번 프레모 레비의 글을 읽어 본다. 그의 글은 나에게 작은 면죄부를 허락한다. 그의 말처럼 우리가 모든 이의 고통에 괴로워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이미 인간이 아닌 성인일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고통을 함께하려는 그 시도이다. (중략)

    비평집의 제목인 '타인을 앓다'는 2014년에 '세계의 문학'에 실었던 평론의 제목이기도 하다. 타인을 앓는 것, 문학을 읽는 것과 문학을 하는 것의 의의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믿는다. 타인을 앓는 것, 깊은 공감을 통해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자 하는 것, 그게 바로 미련하지만 두터운 문학의 길일 것이다. 이해하고자 애쓰는 내가 먼 곳의 다른 고통과 소통하는 초월적 인식의 공간, 그게 바로 문학의 공간이다.

    책 속으로

    최근 젊은 작가들에게서 발견되는 동시대성은 타인의 고통에 대한 감성적 도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들은 세상을 증오하거나 배격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에 연루된 채 그것을 깊이 받아들이고 공감의 언어로 재구성해 낸다. 동시대의 고통받는 신체들을 재구성한 인물들이 그 상처를 통해 현재를 증명한다. 상처에 대한 주목과 그것의 묘사는 동시대 작가들의 중요한 미학적 덕목이자 도덕적 문제이기도 하다. 동시대의 젊은 작가들의 눈이 머물고 긴 묘사로 서술되는 부분은, 타자의 상처를 발견하는 순간이다. -17쪽

    최근 한국 소설에서 나타나는 가장 눈에 띄는 경향 중 하나가 바로 정보의 개연성 있는 재구성이다. 브리콜라주 혹은 지식조합형 소설이라고도 불리는 이러한 경향에서 강조되는 것은 바로 개념적 상상과 구축이다. 정보와 지식이라는 수식어에서 짐작할 수 있다시피 이러한 경향의 소설에서 가장 배제되는 것은 바로 물리적이며 육체적인 경험이다. 정보나 지식은 이념이며 머릿속으로 상상하고 재조립하는 것은 일종의 무형의 것들이다. 상상의 접속이 현실적 체험의 사실성을 상회하는 것이다. (중략) 이러한 최근의 소설들이 재미없는 이유는 단 하나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 대한 객관적 반영이 부족하고 주관적 판단이 없기 때문이다. 판단 부재를 상상으로 메꿀 때, 독자는 몰입하지 못한다. -47쪽

    재난의 서사는 재난을 상상하지 않고는 불안을 견딜 수 없는 강박증 시대의 마스터플롯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작가들이 종말과 재난을 연결 짓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소한 대리 표적으로 감춘 일상적 불안의 실체를 벗겨 낼 때 사실 그것은 도망할 곳 없는 현재이며 결국, 생존이란 숭고함을 잃은 채 벌거벗은 공포를 견디는 것뿐이라고 말이다. -62쪽

    황정은의 글을 잃다 보면 최근 젊은 작가들의 소설에 나타나는 한 경향에 대한 답이 숨어 있는 듯싶다. 최근 20대 작가들의 소설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단어 중 하나는 “그냥”이라는 말이다. 이 “그냥”이라는 부사는 역설적이게도 소통에의 갈망과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88쪽

    최근 20대 작가들의 소설에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는 인물이 추상적이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대개 ‘K’나 ‘J’ 같은 이니셜로 명명된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들이 이름만 불분명한 게 아니라 직업이나 하는 일도 구분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략) 어렵다, 라는 최대한 유보적인 판단은 도대체 이 소설 속 인물들의 진짜 문제가 무엇이고 어떤 갈등을 겪고 있는지 ‘공감하기 힘들다’라는 말이기도 하다. -91쪽

    2000년대에 등단하고 본격적인 글쓰기를 시작한 작가들에게 발견되는 특질 중 하나는 무엇인가를 앓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동시대를 분리 장애를 앓는 결핍의 시대로 판단한다. 이들에게는 공통의 상처나 기억이 없다. 흥미로운 것은 권력적 중심에 대한 기억이 없음을 자유가 아닌 결핍으로 받아들이는, 이 젊은 작가들의 태도다. -140쪽

    동시대 소설의 욕망은 그런 점에서 소비의 욕망, 인증의 욕망, 그리고 이탈의 욕망으로 요약될 수 있다. 2000년대 이후 한국 문학의 주류가 된 소설은 탈출이 불가능한 후가 자본주의 사회 시장 이데올로기 속의 ‘문학’이라는 명제로 조명될 수 있다. -2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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